호텔에는 누구랑 간 거야?
남편의 일정으로 만나지 못하는 주말이었다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8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 수 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곧이어 카톡이 왔다
피곤해서 일찍 잔다는 내용이었다
'금요일에 이렇게 일찍 잔다고?'
옅은 의심이 지나갔지만
재차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카드사용 내역을 보고 온몸이 떨려왔다
일찍 잔다고 했던 그날
새벽 1시 카카오택시 탑승내역이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실은 동기와 약속이 있었다며
너는 아픈데 내가 놀면 미안해서
거짓말을 한 거라고 했다
그럴 수 있었다
남편은 젊었고 내가 함께 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몇 주 뒤, 남편과 근교 드라이브를 갔다
내 컨디션이 괜찮아 오랜만에 나선 길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오르자,
조수석 손잡이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버려도 되는 쓰레기일까 싶어 펼쳐본 순간,
손가락 끝부터 떨려오며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파주? 여긴 언제 갔다 온 거야?'
동기 만나느라 다녀왔다는 남편의 답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빠르게 스캔된 톨게이트 이름과
날짜 그리고 시간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마음을 괴롭혔다
파주에 간 건 며칠 전 저녁 7시였는데
카톡을 되돌아보니
그날은 늦게까지 야근을 한다고
내게 먼저 자라고 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통행증이
왜 조수석에 있었을까
톨게이트 통과할 때 받은 그 종이를
남편이 조수석의 누군가에게 건네줬고
그 누군가가 구겨서 버려둔 걸까
그 누군가는 누굴까?
끝없는 의문에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명확하게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다스리기 힘든 불안감에 휩싸였다
수술을 앞두고서
그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수술하면 생길) 깊은 절제 흉터가
가슴에 새겨지기 전에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너 무리하면 안 되잖아'라며
배려 같은 말로 에둘러 거절했다
'그럼 호캉스라도 하면 어때? '
내가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남편은 시간 여유가 안될 것 같다며
확실하고 여지없이 거절했다
그렇게 동기와, 또 동기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지런했던 남편에게
나와 함께 보낼 밤은 없었다
그는 선택적으로 바빴다
그리고 이 외에도 주기적으로 드러난 흔적들.
홍대 L7호텔의 주차요금 결제내역
그리고 역삼동 호텔 투숙 내역 앞에서
나는 더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남편은 나 아닌 누군가(동기라고 했다)와 호텔에서 묵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급히 가게 된 것뿐이라고 변명했지만
연이은 거짓말과
의심할만한 충분한 시그널 앞에
나는 더 이상 담담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때의 나는
이어지는 항암치료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덩어리로 겁이 많았고, 그래서 더더욱 나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시기였다
나를 보호해야 했기에 더 캐묻지 못했다
다그치며 파헤치지지 못했다
감당 못할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 사람은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