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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희 Dec 28. 2024

JOH 조수용 ㅣ Creative = Active

능동적으로 일의 범주를 정하는 태도에 관해


(목차)

일의 감각
    - 얼마 전, 눈에 들어온 책이 있습니다.
    - JOH로 살아가겠다는 다짐
    - 결국 오너십, 아이덴티티, 그리고 Active

매거진 B
     - B와의 만남, 그리고 변화
     - Balance를 담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B'



JOH 조수용 (출처, 매거진 B)




일의 감각



얼마 전, 눈에 들어온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일의 감각>. 주황색에 표지도 없는 책이었죠. 작가소개는 표지 없이 책 겉 표면과 일체형으로 만들어 깔끔했습니다. 책 뒷면에는 보통 책의 추천이나 출판사의 후킹 문구가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뒷면에는 목차를 그대로 표면에 각인한 게 다였죠. 책 표면은 그립감이 느껴지는 종이 재질이었습니다.


처음엔 깔끔하고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는데, 자꾸 손이 가는 디자인이랄까요. 독자에 면밀히 공감하는 책이랄까요. 책 속에 들어가면, 필자가 중간에 글 내용을 보충하는 방식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날개 형식이 아닌, 글 바로 밑에 위계와 색상을 달리해 '코멘트'의 느낌을 잘 살립니다. 아래에 둥근 화살표 이모지를 넣어 잘 보이기도 합니다.


책 <일의 감각>


해당 책은 매거진B의 대표 퍼블리셔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수용님이 에세이입니다. 책 하나라도, 독자 중심적인 건 그에게 당연하고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모든 일이 그는 진심이자 삶이기 때문이죠.


가령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초록 검색창, 눕는 사람의 입장에서 설계한 네스트 호텔, 한남동의 복합 문화 공간 사운즈 한남, 밥과 국의 본질을 파고드는 일호식 레스토랑 등. 책보다 훨씬 거시적인 공간과 사물에서 조차 그가 일하고 사유하는 방식은 일치합니다.




JOH로 살아가겠다는 다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명명한 이유는 위의 내용과 맥을 같이합니다. 그는 영역과 범위의 경계를 넘어 자기다운 일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용자와 자신이 만든 브랜드/서비스가 제공하는 감각의 일치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이름에서조차 정체성을 생성합니다.  


"왜 JOH가 아닌 CHO로 표기해야할까?"

매번 출국하는 공항에서, 영문 이름을 작성하는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고민합니다. 발음상 CHO로 하면 '초'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대학생 때 여권을 만들면서 CHO 대신 JOH라고 써냈습니다. 이 일은 세상의 상식이 아닌 자신의 상식대로 삶을 살아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죠. JOH는 조수용님의 영문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식을 담아낸 회사명이기도 합니다. 자신과 같거나 철학의 결이 비슷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모인 브랜딩 컨설팅 조직입니다.


JOH는 여러 일들을 해왔습니다. 레스토랑, 가방, 잡지, 건축 등 말이죠. 이 모든 사업은 조수용님이 2010년 IT회사를 떠나며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온 결과물입니다. 그 동안은 특정 조직에서 다른 오너의 order를 처리하고 결과물을 쫓아왔다면, JOH는 자신이 오너가 돼 자신의 요구사항을 생성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조수용님은 2010년 36세 당시 N사를 퇴사하며 뒤늦게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말이죠. 하지만 몇 개월 쉬면서까지도 답을 못 내리는 상황이었다고 조수용님은 회고합니다. "디자이너가 뭘 해서 돈을 벌지?"란 질문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결국 "디자인 컨설팅"이라는 정답만 매번 존재했죠. 이 정답의 프레임을 뭉개고 조금 더 자신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아래와 같은 질문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만약 100억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할까?"

위 질문은 스스로에게 약간 과감해질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솔직한 답을 구할 수 있죠. '돈'이라는 재화를 삶과 독립적으로 바라보고 오로지 자신의 관점과 취향에 따른 '나'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제는 아니겠지요. 다만 스스로를 관조하는 마음으로, 선택의 자유도를 높여줌에 따라 심정과 시선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좋은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 결말처럼요.


조수용님은 위 질문으로 JOH를 창업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시도합니다. 취향과 비즈니스를 긴밀히 엮어 오프라인 중심적으로 서비스를 전개하죠.


일호식 두 번째 매장과 간판 (출처: JOH & Company)


일호식의 2011년 오픈 당시 첫 메뉴는 현미밥과 국이었습니다. 일호식은 '매일 먹는 좋은 식사'라는 문장을 현실화한 브랜드인만큼, 간소하지만 좋은 재료에 시간을 들인 맛의 컨셉트를 가졌었죠. 일호식의 간판은 한자, 영어, 한국어가 모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디자인입니다. 가정식이지만 여러 퓨전을 즐길 수 있는 의도가 보이는 디자인이죠.


어반 리조트 사운즈 한남과 매거진 B


사운즈 한남은 복합문화 공간입니다. 일호식을 포함한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 스토어, 서점, 그리고 매거진 B 오피스가 있는 공간입니다.



에드백 백팩과 에드백 (2012) (출처 : JOH & Company)


심플하지만 실용성 있는 백팩의 컨셉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모든 기능이 견지한 제품입니다. 가운데 있는 에드백은 매거진 B 에디터들이 사용하는 가방이라는 설정으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어깨에 매거나 손으로 들 수 있는 가방이기에 줄의 절묘한 길이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회고합니다. 현재까지도 조수용님은 에드백 백팩을 대체하는 가방을 발견하지 못해 지금까지 들고 있는 가방이라고 하죠.



네스트 호텔 (출처 : 네스트호텔, 익스피디아)


네스트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TV 자리를 오션뷰가 대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호텔의 기능, 즉 도시를 벗어나 사용자의 '여유와 쉼'을 극대화한 의도라고 볼 수 있죠. 룸의 동선 역시 사용자를 고려해 일체형으로 디자인을 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로 저희 집 역시 거실의 한 쪽 벽면이 모두 거대한 창문이며 계절에 따라 2층 높이에 위치한 나무들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합니다. 위 호텔에 영감을 얻어 보지도 않는 TV를 정리하고, 소파를 자연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돌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식탁과 분리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고 모두가 밖을 보며 ‘쉼’을 만끽하는 애정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네스트호텔은 2014년 오픈과 동시에 국내 최초로 ‘디자인호텔스 Design Hotels’ 멤버십 호텔로 등재돼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디자인호텔스는 전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글로벌 호텔 플랫폼으로, 엄격한 자체 선정기준에 부합하는 50여개국 270여개 호텔에만 멤버 자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http://johcompany.com/


JOH의 더 다양하고 심도 있는 프로젝트는 공식 홈페이지(링크)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기획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사용자가 느끼는 니즈, 고객에게 전달한 밸류와 콘셉트, 이에 대한 기획 의도와 대응, 구체화 등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고 있죠. 이 글을 차분히 읽는 재미로 요즘을 지내고 있는데, 여러모로 담백함과 섬세함을 배울 수 있는 글감입니다.

네스트호텔, 프로젝트 백그라운드 (출처 : JOH & Company)





결국 오너십, 아이덴티티, 그리고 Active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조선일보 2016년 조수용님 인터뷰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호텔은 계속 지을 건가요? 영종도의 네스트 호텔이나 여의도 글래드호텔 같은 곳은 컨셉이 정말 분명하더군요. 두 곳 다 디자인 호텔로 선정됐지만 일각에선 건축가가 아닌 디자이너가 어떻게 호텔을 짓느냐 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체인 호텔이라고 하는 곳도 알고 보면 부동산 투자사가 유치해서 넣는거죠. 실제 본사의 서비스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도 아니고. 라이센스 계약 끝나면 간판도 바꿔 달고. 그래서 호텔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을 때, 저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가까운 이 '업'을 제품 개발하듯 바꿔서 해봤어요.

이 제품을 어떻게 쓸까. 이름은 뭐로 짓고 기능은 무얼 넣고, 디테일과 가격 등등. 그래서 저는 제가 작업한 호텔을 '디자인했다' 그러면 굉장히 불편해요. 디자인은 아주 작은 부분이거든요. 본질은 제품 개발이나 사업 계획에 가깝고 디자인은 생각이 정리되면 간단하게 나오는 결과물이에요. 가령 영종도엔 갈대가 많으니까 갈대를 엮은 개념으로 '네스트'를 만든다거나."



사업을 위한 생각의 기초는 어떻게 만들어갑니까?
"일을 시작할 때, 제일 피해야 할 게 있어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사람들은 이걸 좋아할거야'라는 접근법. 가령 카페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요즘 애들은 드립 커피 좋아하지 않나? 인테리어가 중요하지 않나? 너무 뒷골목이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간판도 중요하다며? 이러다가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이상한 엣지만 주게 돼요.

저는 이렇게 해요. 내가 카페에서 언제 좋았지? 내가 그때 무슨 기분이었지? 아! 그때 메뉴판이 이래서 좋았구나. 그때 음악이 없어서 새소리가 들렸구나. 오로지 내가 좋아했던 순간을 끝까지 구체화하고 단단하게 정리해요. 그게 '브랜딩'이에요. 그런 다음은 이것저것 안중요한 걸 빼요. 불필요한 걸 빼고 나면 오히려 남다른 캐릭터가 생겨요."








매거진 B



B와의 만남, 그리고 변화

첫 만남은 우연히 들린 compact freedom 카페였습니다. 아기자기한 공간에 사장님의 취향이 구석마다 깃든 주택 개조식 카페였죠. 저녁 6시에 방문했는데 8시가 되기까지 공간을 탐색했습니다. 8시가 마감 시간이었기에, 서둘러 같이 온 일행과 함께 나갈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때, 사장님의 반응이 사뭇 달랐습니다.


"잠깐만요, 얘기나 좀 하실래요?


보통은 빨리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피곤함이 가득한 표정이길 마련인데, 사장님은 온화환 표정으로 대화를 원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카페를 둘러보는 마음이 궁금했다고 하네요. 사장님에게도 보통의 손님은 항상 있었습니다. 같이 온 일행과 떠들다가 사진만 몇 장 찍고 가는 손님, SNS 업로드를 위해 짧은 영상만 찍다가 가는 손님 등 말이죠. 카페에서 응당 취해야 할 자세는 없습니다. 옮고 그름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공간 자체에 대해 애정을 가진 손님은 매번 반가웠다고 합니다. 공간에 왔으니, 공간을 향한 무한한 애정. 그 당연하지만 자연스러운 반응들이 그리워 보였습니다.


ISSUE NO.35 Helvetica (출처, 매거진B)


그렇게 2시간 동안 서로의 삶, 그리고 카페를 만든 배경, 타이틀 의미, 꿈, 의도에 대해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 옆에는 소규모 브랜드들을 아카이브하고 소개하는 룸이 있었는데, 커피를 매개로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사장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죠. 여러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장님의 마음은 당시 중앙에 있던 서재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서재에 바로 B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ISSUE NO.35 Helvetica가 B와의 첫 만남이었죠.


오피스 제주, 제주에 위치한 리모트 워커들을 위한 work&stay 공간


이후로 "이 공간 좋은데 어떤 곳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B는 항상 해당 공간에 위치했습니다. 공간 특성에 따라 여러 B들이 있었습니다. 로스터리 카페에서는 매거진 F의 Coffee가, 평소 자주 가는 공간에서는 B의 Bali, 그리고 work&stay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스 제주에서는 B의 Vitra 등이 있었죠. 생각해보면, 항상 공간이 지향하는 가치가 B라는 수단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B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내다가, B를 인지한 후에는 공간 자체가 재구성되는 느낌이랄까요. 그 느낌은 주변의 모든 물질과 공간을 재해석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매거진 B (출처 : JOH & Company)


Balance를 담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B'

이후 B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매력적인 공간을 사로잡은 B는 어떤 매체일까 말이죠. 결론적으로, B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브랜드를 다루는가'입니다. 그 어떤은 바로 '균형'입니다. 그래서 B는 Balance의 앞 글자입니다. 이러한 Balance는 아래 4가지 속성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됩니다.


Practicality  실용성

Beauty  심미성

Price  가격

Philosophy  철학


따라서 B가 조명하는 브랜드들은 위 4가지 속성을 가진 것들이라 할 수 있죠. B는 이를 사면체 브랜드라고 명명합니다. 사면을 가진 브랜드는 균형감을 이루고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바꾸는 브랜드라고 정의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이 중 가장 중요한 속성은 역시 '철학'입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이 가장 현실적인 속성이라고 느껴집니다. 이유는 철학 자체가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브랜드/서비스를 바라보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메이커가 사용자에게 세상을 선물하는 일이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죠.


나아가 위 '관점'은 사용자가 제품과 브랜드를 바라볼 때와 메이커가 스스로 전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일치할 때 더욱 확장해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브랜드/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이 가능해집니다. 즉 철학은 브랜드/서비스의 시작이자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이 아닐까요?



B의 대표 Publisher인 조수용님은 철학 속성에 관해 아래와 같은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세 요소만으로는 입체적인 브랜드가 되지 못합니다.
여기에 철학이라는 점을 찍어야 브랜드가 입체적이 됩니다.

철학이 꼭지점을 만들면,
나머지 세 요소 중 하나가 조금 모자라도 브랜드를 앞으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즉 가격이 비싸도, 실용성이 좀 떨어져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도
철학이 있다면 브랜드는 완성됩니다.

(중략)

철학을 조명하는 것,
그게 바로 <B>의 관점이고 <B>가 가진 철학은 바로 그 '관점'입니다.

• 일의 감각 chapter 4 브랜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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