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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납작만두 Apr 06. 2022

카드의 배신

백수의 씀씀이

 백수는 돈이 없다. 근데 나는 카드가 있다. 물론 카드 값은 내가 다 내야 하지만 카드라는 물건이 묘하게 경제적인 안도감을 준다. 백수는 신용카드부터 없애고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백수 약 14개월 차 아직도 신용카드를 쓰고 있다. 분명 연회비 내는 달인 9월이 오기 전에 해지하려 했으나 백수의 시간은 직장인보다 배속으로 흐르는 게 확실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연회비를 한 번 더 냈고, 해가 바뀌어 있었다.   

  

 핸드폰 요금 7천 원 할인받기 위해 30만 원을 쓴다. 안 쓰면 24만 원이 아껴지는데 묘하다. 꼭 30만 원을 채워서 고작 7천 원을 할인받고 싶게 만든다. 지역 화폐의 혜택이 더 큰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신용카드는 실적을 채우고 싶다. 그래도 여태는 큰돈 나갈 일이 있어서 신용카드가 실적이 채워졌다. 평소에는 핸드폰 요금으로 6만 원이 고정으로 실적을 채워주고 있다. 그 외에는 내가 써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난달의 경우에는 새해라 운동을 해보자며 산 마사지 도구와 요가 매트, 돈 없을 때는 꼭 한 번에 같이 떨어지는 기초 화장품 제품들이 내 실적을 맡아줬다. 필요한 것만 산 거 같은데 어느새 실적은 20만 원을 넘겼다.     


 20만 원이면 10만 원만 더 써서 실적을 채워둘까… 밖에 나갈 일이 극히 드문 상태인데도 나는 다음 달에 카페 갈 생각과 영화관을 갈 생각으로 실적을 채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간 카페가… 작년 같은데…,      


 구경만 하러 갔던 홈플러스에서 5,000원짜리 재킷 하나와 29,800원짜리 티를 한 장 샀다. 실적까지 3만 원 정도 남았다. 사고 싶었던 우알롱 후드 조거 세트를 살까, 매일 무신사만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느새 1월이 하루 남기고 있었다. 고민하다가 백수인 내 위치를 떠올리고 마음을 접었다. 언니한테 맛있는 거 사주는 걸로 타협을 봤다. 수제 버거를 시켰는데 2만 원이 들었다. 배달비가 아까워 포장 주문을 했고, 만 원 정도 남은 실적을 만원 초반대 스포츠브라를 사는 걸로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징-      


[결제 무신사 스토어 11,000원 누적 317,290원]    

 

결제하자마자 날아오는 누적 사용 내역. 휴. 채웠다. 이렇게 실적을 야무지게 채웠다. 다음 달 핸드폰 7천 원 할인 또 받을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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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알았다. 우연히 실적 조회를 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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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이용금액 298,540원. 

충족 여부 미충족. 

실적 부족금액 1,460원     



……. 



천 사백 육십 원 미달……? 

나… 햄버거 왜 샀어…? 나… 스포츠브라 왜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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