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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납작만두 Mar 08. 2022

연습 (feat. 독수리 타자)

백수의 시간 활용_2

 부끄럽지만 2n년동안 나는 독수리 타자로 살았다. 컴퓨터 시간에 손가락에 맞춰서 하는 기본적인 타자 연습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궁금해서 켰다가 노잼이어서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단어들을 맞춰서 없애는 게임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타자법과 다른 나한테만 편한 독수리 타자를 고수하게 됐다. 손가락을 자판에 다 올려두고 빠르게 한 손가락만 이용해서 치다 보니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 비밀이었다. 사실 나도 모르고 살았다. 알게 된 건 초등학생 때 아빠 따라서 갔던 피시방에서 사장님이 타자 치는 걸 보시더니 아무도 몰랐던, 심지어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셨다.


 “얘는 독수리 타자네요.”


 띠용. 내가 독수리 타자라고? 나 이렇게 빨리 치는데? 그 당시 독수리 타자란 나에게 어르신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배우기 시작할 때 쓰는 타자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어른들의 속도로 아주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느리게 치는 타자. 뭐든 속도로 뒤지고 싶지 않고, 하루 컴퓨터 사용 시간만 12시간이 넘어가는 잼민이 시절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욕이나 마찬가지로 들렸다. 그때는 어어... 네? 하고 넘어갔지만 그 뒤로 오히려 고집부리며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솔직히 불편한 것도 없어서 바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독수리 타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남아돌아 나 자신을 돌아볼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부끄러워졌다. 피시방을 자주 가는 시기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노트북 들고나가서 과제하던 나이도 지나서 더 이상 남 앞에서 타자를 칠 일이 줄어든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독수리 타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긴 글을 따라서 쓰는 걸로 연습했다. 항상 오른쪽은 검지로만 모든 걸 치다 보니 다른 손가락을 쓰는 게 어색했다. 중지와 약지를 사용하려는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오타 없이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오른손만 독수리 타자인 줄 알았는데 왼손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분명 ‘ㅇ’을 눌렀는데 나오는 건 ‘ㄴ’이었고 띄어쓰기도 엉뚱하게 됐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어색하고 답답했다. 독수리 타자로 치면 400타가 넘던 속도가 한 글자 한 글자 손가락을 교정하며 쓰다 보니 230타 정도가 나왔다. 속도는 속도대로 느려지고 연습하면 할수록 손가락은 더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연습했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얼마나 해야 자연스러워질까. 2n 년 동안 독수리 타자 쳤는데 고칠 수는 있을까?... 애써 모르는 척하고 꺼내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초등학생 때도 써 본 적 없었던, 자리 연습을 켰다. 1단계부터 8단계까지 단계별로 있었고, 단계마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범위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자음 모음 하나씩 치는데도 오타가 계속 나왔다. 이렇게까지 해서 바꿔야 하나... 초등학생 때도 안 하던 자리 연습을 2n살 먹고 하는 게 맞는 건가. 현타가 왔지만 꾹 참고 자리 연습으로 마지막 단계까지 끝내고 단어 연습도 했다. 단어 연습이 끝나면 문장 연습. 그리고 긴 글 연습까지 하나씩 끝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제자리를 못 잡고 날아다녀서 어색하고 더 불편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예전보다 자연스러워져서 더 이상 독수리 타자가 아닌 손가락 최소 6개는 사용하는 타자가 만들어졌다. 속도도 완전 예전만큼 빠르다고 할 순 없지만 많이 빨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습관을 고치기가 더 힘들어졌다. 기존에 고수해오던 방식이 살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고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타자 연습은 특별히 많은 시간을 쏟고 머리에 지식을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짧은 연습으로도 변화할 수 있고 뭐든 연습하면 변화할 수 있구나. 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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