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우할배 Feb 04. 2022

땟국에 절은 아이

추억이 아름다운가요 #1

'묵은 때를 벗긴다.'라는 말을 느닷없이 떠올리며, 그때는 정말 묵은 때를 벗겼다는 생각에 씁쓰레한 웃음을 머금어 봅니다.     


설이 다가오면 목간통이 있는 우리 옆집 영수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청년들은 날을 잡아 십리 길을 걸어 읍내 목욕탕으로 나가지만, 요금을 내기 어려운 아이들은 마을에 유일한 영수네 목간통을 이용했습니다. 하긴 몇 개월 동안 씻지 않은 아이들이니, 읍내 목욕탕에서는 돈을 낸다 해도 주인이 입욕을 거절했을 것 같습니다만.     


또래별로 사용 순서를 정해 5~6명씩 무리를 지어 그 집 목간통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 목욕이라는 분기 행사를 위해 각자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일부는 목간통을 닦고, 어떤 사람은 물을 길어 목간통을 채우고, 또 일부는 장작불을 지펴 물을 데웁니다. 쇠로 된 목간통의 크기는 지금으로서는 잘 가늠이 안 됩니다만 어린 눈에는 엄청 컸습니다. 초등학생 두어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었고, 앉으면 목이 잠길 정도였으니 지름 1미터 어름에, 깊이도 그 정도는 되었을 거 같습니다.    


정말 묵은 때를 벗겨냈습니다. 4개월 정도는 충분히 묵었을 겁니다. 목간통에 벌레처럼 때가 물 위에 떠다니면 여러 번 손바닥으로 건져내었습니다. 몇 시간에 걸친 설맞이 행사가 마무리되면 집에 돌아와 새 옷을 갈아입어 봅니다.     


어머니가 좁쌀 한 말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걸어가서 봉화 대목장에서 사 온 검정 학생복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사 주는 옷이었지만, 설빔을 받지 못하는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내일 설날을 위해 다시 벗어, 바지에 줄을 잡으려고 이불 밑에 잘 접어 깔고, 구르지도 못하고 곱게 잘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슬며시 들어가 봅니다.    


겨울이 깊어지면 손은 터서 갈라지고 머리에는 쇠똥이 덕지덕지 앉습니다. 선생님이 손톱 검사. 이빨 검사, 손발 때 검사를 하는 날은 왜 그리 자주 찾아오는 걸까요. 걸리지 않고 넘어갔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무사히 넘어갔던 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하시기만 한 작은아버지가 놀다가 들어온 내 모습을 보고서 안방을 향해 나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를 우얘 이키 두니껴?"라고.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마구간 소죽 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소여물을 푸고 난 뒤 아직도 뜨뜻한 소죽 솥 남은 물에 손발을 담그게 했습니다. 그리고 갈라 터진 손을 불려 때를 벗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데워 소똥 덕지덕지 들러붙은 머리를 감겨 주었지요. 다음 날 호랭이 담임 김×× 선생의 무서운 눈초리에서 처음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학교가 무섭지 않은 첫날이었습니다.    



<< 작은아부지, 그때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말씀 못 드렸습니다. 비록 하루지만 작은 아부지는 못난이 조카가 걱정 없이 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에야 인사 올립니다. 고마웠어요. 삼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