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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할배 Feb 12. 2022

하필, 생일날 입대라니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1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이 싫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성격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미지근함은 나를 보는 형님들만의 시각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이런 나의 성격, 생활 태도가 너무 싫었다.    


졸업하자 곧바로 교육청을 찾아 교직 발령 연기원을 내었다. 입영일이 3월 23일이니 발령받고 며칠 근무하다 군대에 가는 것은 아이들과 학교에 못할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수였다.    


아버지는 뵙지도 못하고, 아들 다섯 모두 군대에 보내는 것을 억울해하시는 어머니에게만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은 서울에 계셨었다.


군대 다녀올게.   


3월 20일에 시골에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서 마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라면 끓이다가 3월 23일에 36사단이 위치한 안동을 향하여 버스에 올랐다. 누구도 배웅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 날은  내 생일이었다. 하필 생일날 입대라니? 꼬여도 더럽게 꼬인 입영이었다. 생일엔 늘 어메가 고봉의 쌀밥 속에 계란 하나 넣어 줬었는데, 아침을 라면으로 때우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안동 버스터미널 근처 이발관에서 장발이 잘려 나갈 때, 뜬금없는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쩌겠는가? 머리야 또 자라는데, 뭘. 오후 4시까지 입영이란다. 하늘이 흐려 눈이 올 것 같았다. 겨울을 났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팔랑이는 포플라 잎사귀 끝을 때리는 바람 끝이 차갑다.     


36사단 정문 앞 공터에는 오후 3시 정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입영 시간에 늦을세라 나는 2시 조금 넘어 정문 앞에 서둘러 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드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눈빛의 여인들 숫자도 엇비슷했다. 엄마, 애인들이었나 보다.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은 차가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문 위병소 옆에는 몇 명의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우리를 인솔할 기간병들인 모양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입영 시간인 오후 4시에 가까워지자 한 기간병이 핸드 마이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말투는 정중했다.    


"장정 여러분, 빨리 입영하시기 바랍니다. 4시가 넘으면 미입대로 처리됩니다. 장정 여러분, 빨리 입영하십시오."    


장정이란다. 김동리의 '귀환 장정'이라는 소설이 떠오르며 괜히 섬뜩해진다. 때와 흙과 기름과 오줌에 절은 누더기를 걸친 두 국민병의 모습이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른 것이다.    


같은 멘트가 몇 번 더 나오고, 4시 5분 전쯤 되자, 밍기적거리던 '장정'들이 와르르 훈련소 정문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우리는 6주 동안 사람 사는 바깥 세계를 볼 수 없을 것이다.  

      



<<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  고분고분  듣고 수굿하면  견딜 것도 없는 곳이라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담담히 받아 들고 있었는데 몸이 다르게 반응하더라니까요. 36 정문 앞에서 부끄럽게도  의지와 관계없이 자꾸만 몸이 떨렸습니다.     

추위 탓으로 돌리려 했지만, 아무래도 시멘트 벽돌 담장 위에 엉성하게 쳐진 철조망이나 으스스한 위병소 풍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발령 연기원 제출을 실수라고  것은 제대  교직에 들어갔을  그로 인해 현실적 불이익을  분야에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발령  하루라도 근무하다가 군에 가면  경력이 모두 교육경력으로 계산됨을 알려 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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