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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할배 Feb 13. 2022

오리걸음으로 내무반까지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2

위병소 옆에는 꽤 넓은 공터가 있었다. 몇몇 기간병들이 우리를 정렬시켰다. 150명이 좀 넘을 듯 한 대규모의 젊은이들이 쉽게 열을 맞추어 설 리가 없었다.


"4열 종대 헤쳐 모엿!"    


아까 시간 내에 입대하라던 멘트의 그 정중함의 자리에는 욕설이 자리 잡았다. 지시봉이 난무하고 군홧발이 날면서 몇 차례 '헤쳐 모여'를 반복한 후에야 겨우 열이 맞춰졌다. 마이크를 든 하사가 좀 높은 곳에 올라가 악을 썼다.    


"개새끼들, 너희들은 본인의 존엄한 입을 너무 수고롭게 했다. 지금부터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뒤로 돌앗!"


"저 뒤에 전봇대가 보이나? 지금부터 선착순 3명을 끊는다. 뛰어갓!"    


전봇대는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있었다. 난 왜 이런지 모른다. 권력에 순종적인 나는 정렬 지시에 충실히 따르느라 앞에서 세 번째 줄 정도에 섰다. 그러니, 뒤로 돌아서 저 전봇대까지 뛰면 그냥 꼴찌 근처일 수밖에 없다. 헉헉거리며 몇 바퀴를 뛰었는지 모른다. 뒤에 처져 기간병들의 지시봉에 후둘겨 맞으면서.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그 하사는 다시 4열 종대로 정렬을 시켰고, 장정들의 줄 맞추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내 자리는 이제 저 뒤편이 되었다.    


"지금부터 내무반까지 오리걸음으로 행진을 한다. 열이 흐트러지면 다시 원위치할 것이다. 열을 잘 맞추도록."


"뒤로 돌앗. 오리걸음 앞으로 갓."    


뒤로 도니 내 자리는 다시 선두에 가까웠다. 온갖 잡놈들이 뒤섞여 오리걸음을 하는데 줄이 맞을 리 없었다. 뒤에서는 밀고 조교는 줄 흐트러졌다고 지시봉 함부로 휘두르고... 여럿이 모일 때는 그저 중간쯤이 좋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4시 정각에 훈련소 정문에 들어와 5시 20분경에 정문에서 약 2,3백 미터  떨어진 내무반에 힘겹게 도착하였다.    


내무반은 양쪽에 마루 침상이 깔려있고, 통로 중앙에는 금방 떼어낸 듯, 난로 설치했던 자리가 두 군데 뻘건 녹물 흔적을 남겨둔 채 썰렁했다. 뒷문 벽 쪽에 매트리스가 키보다 높게 양쪽으로 쌓여 있었고, 침상 뒤편의 2단으로 짜여진 나무 구조물은 관물대였다.     


급하게 차출된 식사 당번들이 석식을 배급받아 왔다. 커다란 들통 두 개에 밥과 국이 들어 있었고, 들통 뚜껑에는 허연 깍두기가 담겨 있었다. 장정 개개인에게는 냄비만한 그릇 두 개와 그것을 덮는 뚜껑 하나씩 배급되었다.     


쌀밥에 멀건 국 한 그릇, 그리고 깍두기 큼직한 거 세 쪽이 전부였다. 아직 1식 3찬이 공식화되기 이전이었다. 맛없어도 다 먹어 둬야 견딜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뜬내 나는 밥과 소금국을 힘겹게 다 먹었다.    


식사 후 우리는 훈련화 한 켤레와 내의, 팬티, 셔츠, 훈련복 두 벌씩과 모자 하나를 배급받아 그 자리에서 갈아입었다. 훈련복 바지는 무릎을 엉성한 솜씨로 기웠는데, 덧댄 천은 뒷주머니를 뗀 것이었다. 바지 둘 다 뒷주머니가 없었다. 입고 온 사복은 신문지에 포장해서 주소를 적어 제출했다. 집으로 우송한단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제대를 하는 그날까지 여러분들의 신체는 국가가 관리한다. 먹고, 입고, 잠자고 훈련받는 일체의 비용은 국가가 책임진다. 따라서 사제 물건은 모두 수거하여 집으로 우송할 것이다. 현금도 마찬가지다. 3,000원 이상의 현금 소지는 허용하지 않는다."    


"현금을 포함해서 면도기, 손톱깎이 등 사제물품은 모두 내놓는다. 소지했다 적발될 경우 응분의 댓가를 받을 것이다. 알겠나?"    


나는 이런 공포 분위기를 이겨 내고 지시를 어기기에는 너무나 소심했다. 더구나, 정문에서 선착순, 오리걸음을 하면서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이미 충분히 겁을 먹고 있었다. 소지하고 있던 2만 3천 원 중 2만 원을 면도기, 손톱깎이와 함께 제출하고야 말았다. 뼈아픈 실수였다.         

 


□ 후기

내무반 입구에는 공용 손톱깎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저녁 9시마다 있는 내무검사에서 가끔씩 손톱 검사를 했다. 적발되어 지시봉으로 손톱 끝을 맞는 고통이 만만치 않았기에 늘 짧게 유지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내무반의 공용 손톱깎이로는 손톱을 깎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세게 눌러도 줄만 생길 뿐이었다. 깨진 날카로운 병조각으로 손톱을 다듬다가 시간에 쫓기면 시멘트에 문질러야 했던 것도 이제 와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 매 앞에 장사는 없었습니다. 한쪽은 매를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관습적으로 부여받았고, 다른 한쪽은 매를 맞을 의무밖에 없다고 암묵적 교육을 받은 상태였으니까요.     

처음 아무리 소리 질러도 꿈쩍 않던 무질서가 선착순 몇 번과 날으는 군홧발에 금세 정렬이 되었습니다. 폭력의 효능은 대단했어요. 떠들어 대던 입을 침묵시켰고, 각양각색의 행동을 열을 맞추도록 통일시켰거든요.    

군대만 이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는 물리적 제제에서 조금 멀어졌을 뿐, 지위나 직급, 직업, 재력, 권력이 무기가 되어 구성원을 옭아매고 옥죄고 있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속에 눈물짓는 서민이나 군홧발에 밟히는 졸병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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