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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너티뷰 Feb 14.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필요하다

X ambassadors, [The Beautiful Liar]

[The Beautiful Liar], by X ambassadors. 2021



“이상해. 분명히 평론가 평점도 좋고, 팬들 평가도 좋았고, 나도 정말 좋게 들었단 말야. allmusic에서는 2021년 최고의 앨범 30에도 선정됐는데…,”

 

“락밴드가 노래나 잘 팔아야지. 예술병 걸려서 이게 뭐야?”

 



 만약 당신이 X ambassadors를 몰랐다면, [ORION]을 먼저 들었으면 한다. 가장 정제된 앨범이기도 하고, 취향을 덜 탈 킬러 트랙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처음 들었던 앨범이다.


  농담이 아니라, 다른 앨범들은 시작으로 추천하기엔 진입 장벽이 상당하다. 첫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VHS]도, 지금 이야기할 [The Beautiful Liar]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보컬인 샘 해리스는 얼터너티브를 포함한 현재의 모든 록/팝 시장에서도 손에 꼽히는 역량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보컬리스트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났던 [Belong]-EP와 싱글 [JOYFUL] 같은 곡들을 좋아했지만, (가능하다면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평론가와 내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평점이 좀 낮더라…,



 왜 앨범 이야기는 안 하고 자꾸 다른 곡들을 추천하는 건지 궁금하다면, 그만큼 [The Beautiful Liar]가 쉽사리 이야기하기 어려운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남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만화나 맛집처럼 진입장벽이 있다는 말이다.




밴드의 멤버들, 왼쪽이 케이시 해리스. 중앙이 샘 해리스. 형제다.




 [The Beautiful Liar]는 이전에 내가 처음 리뷰했던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두 앨범과 같은 ‘콘셉트 앨범’으로서, 맹인 소녀와 그녀의 그림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오디오 북으로 들려준다는 형식을 취한 앨범이다.


 샘 해리스의 형제이자 키보드를 담당하는 케이시 해리스가 시각 장애를 가진 것(그들의 활동 사진들을 보면 선글라스와 시각 보조 지팡이를 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을 생각한다면, 소녀와 그림자의 이야기는 밴드 멤버들의 자전적 고백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https://youtu.be/i1N45HbtcH8

[Beautiful Liar]의 뮤직 비디오.


 이야기는 소녀와 그림자의 첫 대면으로 시작한다. 지팡이를 들고 선글라스를 쓴 소녀가 도시를 거닌다.


교차로에서든, 위험한 골목에서든, 에스컬레이터에서든 사람들의 표정들은 전부 같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당연하게도, 소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빌딩의 옥상 위로 올라가는 소녀는 뛰어내릴 결심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커진 소녀의 그림자가 그녀의 추락을 막는다.



 첫 번째 챕터의 트랙 중 하나인 [My own monster]의 “made myself a new best friend”라는 가사와 곡의 전체 서사를 볼 때에, 그림자는 주인공인 소녀(앞서 말했듯 샘 해리스와 케이시 해리스의 페르소나 격 인물이다)가 만들어낸 방어 기제의 인격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알게 된다면 “내게 거짓말을 들려 달라”는 첫 트랙의 화자가 바로 ‘그림자’라는 것 또한 자연스레 인지된다.


첫 챕터의 두 곡 만에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다니, 이렇게 보면 의외로 참 친절한 앨범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주 자아와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방어기제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비슷한 주제-질병적 심리불안과 그 극복-를 가졌던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my blood’ 뮤직 비디오, 혹은 그들의 앨범 전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워낙 이야기했던 주제가 비슷하기에, 심지어는 트웬티 원 파일럿츠가 이 주제와 콘셉트 앨범의 구성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뤘기에, 둘을 비교하면서 평가하는 것은 내게 굉장한 부담이 된다.


[블레이드 러너]를 평가한 다음 바로 [매트릭스]를 비교하는 기분일까.




 그러나 소비자들은 대개 창작자들만큼이나, 혹은 더 기시감을 쉽게 알아차리는 위치이고, 나 또한 그랬다.


 한 번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전과 다른 점을 더 열심히 찾게 된다. 이것이 좋지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X ambassadors는 트웬티 원 파일럿츠와 상당히 달랐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가 세 개의 앨범을 하나의 치밀한 세계를 통해 엮었다면, 이들은 이야기에 집중해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https://youtu.be/-PmyfmhDTsI

[adrenaline]의 뮤직비디오. 시청에 주의 바람.



 두괄식으로 이야기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The beautiful liar]는 분명히 칭찬할 것이 비판할 것보다 훨씬 많은 앨범이고, 실제로도 훌륭한 앨범이다. (평론가들의 호평 때문이 아니다)



 먼저 음악적인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 정확히는 그들의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다.


 X ambassadors는 샘 해리스의 음역대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의 정체성을 지녔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만드는 데에 훌륭한 요령을 가지고 있는 밴드다.


 그리고 [VHS], [ORION]을 거치면서, 이번 앨범에서 그들의 스타일이 완성됐다고 느낀다.




 그런지 락, 브릿팝의 색을 가진 초기의 얼터너티브 뮤지션과는 달리 신세대의 얼터너티브임을 강조하는 듯 10년대 이후 R&B와 일렉트로니카의 색채를 짙게 띄고, 보컬은 더욱 매혹적인 방향으로 신시사이저와 얹어졌다.


 킬링 트랙도 많았다.

 [adrenaline], [Okay], [Reincarnated]는 앞서 말한 스타일의 완성이 어떤 모습인지 확실히 알려주는 트랙이었고, 이전 앨범들의 [BOOM]이나 [Unsteady]와 같은 히트곡들과 견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트랙이었다.




 이제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이 앨범은 ‘락 밴드의 최신 발매 앨범’ 보다는 ‘음악적 요소가 들어간 오디오북’에 가깝게 감상하게 된다.


 물론 본인들이 의도한 대로 창작물이 수용된다는 것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가장 첫 번째로 평가해야 할 성공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바로 이 앨범이 가진 ‘양날의 검’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였다. 왜? 킬링 트랙도 많고, 이야기도 설득력 있고 나름 이해하기도 쉽게 잘 풀어냈고, 뭐가 문제야?




 앨범은 전체적으로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트랙으로 명시된 챕터는 두 개이지만, [A BRIEF WORD FROM OUR SPONSORS--]트랙 이후의 주제 변경으로 볼 때에 세 챕터로 나눠야 하지 싶다).


 앞서 말했던 소녀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한 후 변화하는 과정의 첫 챕터.

 ‘Enter The Shadow’로 시작되는, 매우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곡들과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광고의 연속인 두 번째 챕터.

 [love is death]로 시작되며 그림자와의 결별 혹은 그림자가 주 자아에 소거-융합되는 마지막 챕터가 그것이다.



https://youtu.be/J1i9PAqFgPk

어둡고 어지러운 두 번째 챕터에서 듣게 될 [palo santo].

 


 이 세 가지 챕터의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다양한 간주들이다. X ambassadors는 그들의 첫 앨범인 [VHS]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간주(interlude) 트랙을 자주 이용하는 밴드다.


 사실 간주를 사용하는 시도야 많은 아티스트들이 앨범에 서사와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애초에 간주의 역할이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면),

 [The Beautiful Liar]와 같이 이를 매우 강조하는 앨범은 그리 많지 않다.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과했나?라고 느끼게 된다. 사실 이걸 간주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두 번째 챕터의 시작부터 [Love is death] 이전까지의 여섯 곡 중 다섯 곡이 1분가량의 간주 트랙이니까!


 내가 두 번째 챕터를 처음 들었을 때에 혼란스러운 느낌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16곡이나 되는 앨범이라길래, ‘고봉밥이다!’ 생각하고는 최소 한 시간 정도를 생각하면서 듣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내레이션까지 합쳐서 36분 만에 끝났을 때…,


 그 혼란스러운 느낌이 확실히 의도한 바이기에 실수나 실패는 아니지만, 과연 누군가가 다시 이 앨범을 들을 때 이 챕터를 다시 듣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보통 하나의 정규 앨범에서, 허리 부분은 가장 중요하기 마련이다.


 8곡 정도의 앨범이라면 3~6번 트랙이 가장 중요한 트랙이고, 10곡 내지 12곡의 평범한 앨범이라면 4번부터 9번 트랙까지가 가장 중요한 허리를 담당하는 트랙이다.


 [The beautiful liar]의 경우엔 6번~12번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X ambassadors는 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통째로 간주로 써버린 것이다. 그냥 간주도 아니고, 자기 파괴와 절규, 하드록과 CM송까지 섞인 어지러운 간주가!


 앞서 말한 킬링 트랙들이 앨범의 시작과 끝에 몰려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앨범을 듣다 말고서 10분 정도를 혼란스럽게 보내는 셈이다. 과감한 결정이지만,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이 16곡의 앨범 중, 음원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다시 말해 완성된 곡으로서 들을 수 있는 트랙은 9곡뿐이다.


 나머지 7곡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트랙이다.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앨범의 절반이 간주였던 것이다.


 이 짧은 간주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서사와 분위기를 설명해 주는 코러스처럼,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이지 완성된 곡은 아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유지만, 분명한 것은 접근성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멤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더욱 개인적이고 민감한 주제인 정신적 장애와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면,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아마도 이 의도가 맞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내려면 많은 질문들이 필요하다. 분명히.




 익숙하지만 민감한 주제를, 다양한 시도로 실수 없이 풀어냈다. 정말 훌륭한 성취였다. 이것 또한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콘셉트 앨범이라도 결국 대중음악이 가지는 한계가 이 앨범을 ‘평론가는 좋아하지만 내가 들으려면 각오해야 하는 앨범’이 되게 했다. 여러 개의 정말 매력적인 트랙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https://youtu.be/5YMkp4R-nBw

[Okay]의 퍼포먼스 비디오.


 전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콘셉트 앨범이란 기본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개별적인 곡들을 통일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사실 필수적으로-서사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서사 구조를 취한다는 것은, 감상하는 이가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음악이 문예나 연극, 영화처럼 직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형식을 취할 수도 없거니와 서사 구조를 가질 때에 더더욱 소비자들은 듣는 시도 자체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해 노래 하나 들으려는 데 준비할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음악 시장은 모든 대중 예술 분야 중에서도 상당히 짧은 감상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수록, 메시지가 어렵거나 해석의 측면이 다양할수록, 층위가 복잡할수록 자연스레 감상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이것이 오늘날의 팝 시장에서(물론 대부분의 대중 예술 분야도 비슷하지만)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가 양극화되는 이유이며, 창작자들의 선택이 어려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 ambassadors는 이 선택을 했다. 자신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주제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고, 혼란스러움 속에 숨겨둔 의도까지 찾아낼 사람들을 위한 앨범을 만들었다.


 인기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입소문을 탈래야 탈 수가 없는 어려운 앨범을 만들었다. EP도 아니고 정규 앨범에서, 한 7~8집 정도 되는 중견 가수의 실험적 시도도 아니고 세 번째의 앨범에서 말이다.




 실제로도 다수의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The beautiful liar]는 차트인은커녕 자신들의 인기 트랙 순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의 음악 시장에서, 한 번의 앨범 활동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자. 한 번의 리드 싱글이 실패하기만 해도 커리어에 치명적인 시장이다.


 K-pop 시장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중음악 장르가 그렇다. 이들의 이런 선택은 누군가에겐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고, 분명한 실패였다.


 도대체 왜?라고 말한다면, 그들에겐 그만큼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참을성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간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에게, 자신의 그림자에게, 혹은 자신신의 형제에게 바치는 듯한 노래인 [Okay]에서, 가장 이전 앨범들의 분위기와 솔직함이 느껴지는 이 트랙에서 위로받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에 더더욱 이 앨범을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소중히 간직해야 할 앨범이다.


 단순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대가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서 만든 앨범이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앨범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The beautiful Liar]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각오하고 들어봐야 할 앨범들이 내 플레이리스트에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다. 이런 이야기들은 점점 더 줄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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