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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Sep 06. 2023

모두가 함께 하지만 따로.
소외되는 게 두려운 세상.

<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7)

기술은 그 어느 시대보다 발전했습니다,
다만 그 기술을 유익하게 사용할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여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생각해보니 미국 어학연수 이후 21년만이었다. 세월 참 빠르다고 말하기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 21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과 내가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21년 전 미국에서는 나도 20대였기에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파티도 하고 여행도 하는 등 재미난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그들과 어울리기는 어려웠다. 내 사고방식이 오래된 아저씨라 힘겨웠을지도 모르지만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하더라도 생각과 경험의 차이는 분명했다. 어느새 내 옆에는 40대의 멕시코 아저씨가 늘 함께 있었는데, 그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우리는 7주 동안 짝꿍이 되어있었다. 이런 세월의 차이 외에 가장 인상적인 차이점은 20년 전에는 없었던 스마트폰이다. 20년 전과 2023년의 어학 연수와 비교를 해보면 스마트폰이 학습 분위기를 엄청나게 바꾸어 놓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 편하게 말하자면

 - 학생들은 즉흥적이었고 그들의 호기심은 휘발성이 강했다. 20년 전 전자사전도 귀했던 시절에는 모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선생님이었다. 혹은 같은 반 친구가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선생님이든 함께 공부하는 친구이든 공통적인 것은 사람과 대화를 통해 공부를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23년의 교실 분위기는 궁금한 것은 즉각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물론 선생님께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선생님 설명이 한번에 이해가 안되면 스마트폰의 번역기나 사전으로 바로 궁금증을 해결했다. 

-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칠판이나 프로젝터를 사용해 수업을 하는데, 이는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을 필기하던 20년 전의 학생들과 2023년의 학생들은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사진 촬영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칠판에 학습 내용을 적는 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다른 짓?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 쓰고 나면 칠판을 촬영하면 그만인 것이다. 정말 편해졌다. 심지어 모든 학생이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다. 한 두명만 촬영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사진을 공유해준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대부분의 학생은 다른 짓을 매우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좋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20년 전과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 내가 발견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한가지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SNS로 인해서 집중에 많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인데,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은 방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지금 고객님이 원하는 환경에서 공부하시는 것은 어려우실 거예요.”

어학연수를 어디에서 받을지 고민하면서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몇몇 유학원과 어학원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상담을 해주던 담당자들이 입을 모아서 한 말이 어린 친구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만큼 영어 공부를 할 수 없을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들의 솔직한 의견이 고마웠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학만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잘 다녀온 것 같다. 그곳에 내가 없었더라면 결코 느낄 수 없던 값진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기존과 다르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호기심을 갖을 수 있었기에 만족스러웠다.



“TED에서 소셜 미디어와 관련된 영상을 한 개 보고,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하세요.”

이런저런 담당자의 우려와 응원 속에 6월 마지막 주,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했다. 내가 등록한 어학원은 한 세션이 6주로 구성되었고 내가 도착한 6월 말은 세션의 마지막 주였다. 다음 세션을 위한 레벨 테스트가 있었는데, 어학연수 이틀차인 나에게 테스트는 불필요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3명의 새로 온 학생에게는 15분 분량의 동영상 한 편을 보고 내용을 정리하는 과제를 주었다. 

나는 트리스탄 해리스의 TED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을 동의했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간단히 영상 내용을 정리하고 내가 왜 SNS 활동을 중단했는지 설명하는 짧은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하였고, 다음날 이와 관련해서 선생님과 상당히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선생님도 분명히 나와의 대화를 즐겁게 나누었다. 늘 10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40대 또래를 만났으니 다르게 느껴졌을테니까 말이다 ^^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14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 그 속에 앉아 있는 40대 중반의 아저씨, 그리고 그 아저씨와 또래의 선생님. 

전 세계에서 영어를 배우겠다고 모여든 아이들은 선생님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소셜 미디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지금 그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임에도 IT 기업의 최대 목적인 <끌어들이기와 머물게하기>에 이들은 충실히 반응하고 있었다. 

“주변을 보세요. 이것이 제가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Distracted? Let's make technology that helps us spend our time well> 출처: TEDx Talks

트리스탄 해리스는 IT 엔지니어로 사람들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도록 알림 기능을 개발하는 등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던 기술이 일상적인 삶에 유해할 수 있음을 깨닫고, 지금은 이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영상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상당 부분 동의를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대다수의 테크 기능이 사람들을 원하는 플랫폼에 찾아오고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에 있다는 SNS 다양한 서비스 뒤에 숨겨진 비즈니스 전략을 알린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솔직히 요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테크 기술을 속도감 있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어학연수에서 <SNS 커뮤니케이션>이란 선택 과목을 들을 때 <TikTok (틱톡)>에 영상을 올리는 과제를 함께 했던 19살 멕시코 친구는 2분도 지나지 않아서 너무나 멋진 영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의 놀라는 표현에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SNS 플렛폼과 기능은 늘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든 기술의 목적은 언제나 같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더 끌어들일까.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나와 함께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수 세기에 걸친 공통의 고민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모여야 상권이 발달하고, 상권이 발달해야 돈이 돈다는 것은 뭐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일 테니 말이다. 지금은 그 모여야 하는 곳이 가상의 공간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영화 <인턴>을 보면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이 인터넷 기반의 의류 기업에 취업한 첫날 한 직원이 종을 울리는 장면이 나온다. 


'2,500개의 좋아요가 저렇게 신나서 알릴만한 내용인가?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지?'

벤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한 사람으로, 실제 공간에서 전화번호부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새롭게 일하게 되는 회사는 가상의 공간에서 의류 제품을 유통시키는 회사이다. 매장이 없기 때문에 가상의 공간인 인스타그램에 2,500개의 좋아요가 눌러졌다는 것은 그만큼 방문한 고객이 많았고 그들이 제품을 칭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IT 기반의 기업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계속해서 머물게 하기 위한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머물게 했는지가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개발자들은 어디 한군데 몰입되어 있는, 편하게 말하자면 미쳐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나는 그들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원하지 않는 형태로 시간 낭비를 하도록 기술을 개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인간다움과 호기심, 그리고 기술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려는 순진한 의도를 존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공식과 함께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기술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그 기술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당신이 기술이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세요!'

그들은 항상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수익을 만들어 내도록 고안되었는지, 이것만으로 기술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새로운 테크/기술도 비즈니스적인 접근도 모두 존중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기술을 가진 사람과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항상 같은 것을 목표로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러한 기술을 지금은 전세계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다만, 우리가 새로운 SNS 플랫폼 혹은 새로운 기술을 만나게 되면, 잠재적인 ‘사용자’로서 내가 새로운 기술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초대되어 그들이 원하는 만큼 머무는 <Reaction>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우 적극적인 형태로 ‘선택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번에 새롭게 배운 줄임말이 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무엇인가를 내가 놓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을 표현하는 줄임말 표현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뭔가 기분이 불편하다. 그래서 “아~ 뭔데 뭔데”라며 궁금해서 뛰어가 무리 속으로 파고든 경험 말이다. “나도 알려줘”라며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면 무언가 나만 소외된 것 같은 불안한 그런 느낌 말이다.


수많은 IT 기업들은 그들이 개발한 기술로 우리를 얼마나 원하는 곳에 머물도록 조정할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사용자인 우리가 그들이 플랫폼에서 무엇을 하든 그들은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그들의 공간에서 오래 머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들 기업은 FOMO이라는 신조어가 보여주는 사람의 심리를 아주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 마치 “이 공간을 벗어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거야. 소외되는거라고!”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은 실시간 업데이트를 지금 확인하라고 계속해서 알려준다. 스크롤바를 계속해서 내려보라고 유혹한다. 지금 내가 업데이트를 확인하지 않으면 남들은 다 볼 새로운 소식을 나만 모르고 지나갈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옆에 있는 친구가 그거 봤냐며 말을 걸어오면 억누르고 있던 호기심이 폭발한다. 나만 모를 수 없는 노릇이다. 


2023년 여름, 두달 동안 내가 관찰한 모습은 한결 같았다. 어린 친구들은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수업을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내게는 이 모습이 IT 기업들이 FOMO를 자극하는 전략과 기술에 완전히 점령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계속해서 SNS 에 접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SNS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함께 듣는 학생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전세계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들과 항상 연락을 하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이다. 

'모두가 연결된 상태(Connected)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도대체 연결되었다는 것을 이들은 어떻게 정의를 하고 있을까? 실시간으로 서로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연결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요구 조건을 새롭게 파악한 새로 출시된 서비스가 있다. <BeReal>

새롭게 출시된 이 일상 공유 플랫폼은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달리 사진 편집 기능이 없다. 이러한 필요 이상으로 꾸며진 이미지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편집 기능 없이 현재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서 공유하는 서비스인 것이다. <BeReal>이 다른 서비스과 완전히 구별되는 기능은 플랫폼에서 예고 없이 알림을 보내고 사람들은 알림을 받은 당시의 모습을 바로 찍어서 공유를 한다는 점이다. 특이하게 촬영을 하게 되면 휴대폰의 전면과 후면의 카메라가 동시에 사진을 찍게 되어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모습이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 말 그대로 Live 사진이 공유되는 것이다. 

연결된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좀 씁쓸한 부분이 있다. 이런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교실에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화는 하지만 눈맞춤이 없다. 홀로 소외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가상의 공간에 머물고자 애쓰지만, 실제 옆에 있는 기회는 놓치고 있으니,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소셜 미디어에 빠져서 보낸 시절이 있었다. 하루 4시간씩 인스타그램에 빠져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를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무수히 많이 올라오는 지인들의 근황을 쫓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고, 그렇게 그들과 생생한 소통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그들의 소식을 놓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몇 시간씩 별 의미없는 곳에서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SNS 프로그램을 휴대폰에서 삭제했다.


나이가 40년 하고도 5년을 넘게 살면서 성숙하고 생각이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 오랜 기간을 살아오면서 나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SNS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고, 휴대폰이 없고 삐삐라는 작은 통신 수단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약속을 하고 잘 만났었다. 그 이전에는 편지를 통해 연결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새로운 문물을 거치면서 지금의 기술과 새로운 문화 속에 지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해 잘 포장된 전략에 따라 시간을 낭비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함께 한 그 친구들은, 그들은 어떨까? 그들은 태어나면서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생활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을 때는 이미 세상은 소셜 네트워크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화면을 보면 키보드부터 찾았다면, 이들은 화면에 손부터 대본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SNS가 없던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그들은 SNS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은 아닐까? 습관이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 무언가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들은 모르거나, 우리와 다르게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 어쩌면 소외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SNS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연결에서 벗어나본 경험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Instagram에 접속을 하고, TikTok으로 친구들과 세상을 만나며 3~4시간을 소비하고, BeReal을 통해서 랜덤으로 오는 연락에 따라 하던 일을 멈추고 나의 지금을 찍어서 공유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 그들은 어쩌면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SNS 활동과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차이를 발견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목이 마르면 물을 찾고, 배고 고프면 음식을 찾는 것처럼 눈을 뜨면 SNS를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 이 친구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무수한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도 모르겠다. 나도 새로운 기술들을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나는 기술의 사용 전과 후를 비교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른 결론은 그들에게는 비교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비교의 대상은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보기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그 세상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보는 경험은 꼭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내가 만들어 놓은 ‘선’,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의 밖으로 나와보는 경험, 

- SNS 연결에서 잠시 끊어져도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경험, 

-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험, 

그래서 잠시 쉬면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경험 말이다. 


너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가끔은 의심을 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믿는 것에서 한번씩 빠져나오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내가 더 지혜로워지는 한 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다만, 그 기술을 유익하게 사용할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지혜가 쌓이는 데에는 역시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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