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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Dec 18. 2023

눈처럼 둥글둥글 불어나고
부풀려지는 이야기의 세계

소중한 한 해를 정리하는 이야기


대학 친구들과 너무나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했던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는데 생업에 바쁘다 보니 연말이 되어서야 다녀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즐겁고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는데, 친구들과 자유롭게 마음껏 옛 추억과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오고 가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을 가자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에피소드를 만들자'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때부터 만나기 시작했으니 우리의 인연은 25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물론 최근에 있었던 일도 서로 나누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즐겁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20년 전의 대학생활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를 만들기 위해 여행을 가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이야기의 소스가 다양해야 언제 만나도 재미있을 테니까.


★ 늘 과장하며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것이 취미인 우리들


우리의 에피소드는 특별할 것은 없다. 늘 일상에서, 혹은 여행에서 있을 법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그 일상 속 특이할 것이 없는 사건이 우리의 기억 속에 즐겁게 자리잡게 되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친구 중 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 사건에 살을 입히고 입혀서, 조금 더 과장된 형태로 사건을 이야기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건이 재미난 에피소드로 탄생하게 되고, 그 에피소드에는 간단한 별칭이 붙여진다. 이런 식으로 몇 번에 걸쳐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별칭이 입에 붙게 되면 우리는 그 에피소드를 추억삼아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처음엔 당황하던 친구도 어느새 불어난 이야기에 두 손을 다 들고 이야기 부풀리기 놀이에 동참하게 되는 우리만의 특별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인원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는 에피소드를 꽤 만들어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들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발전시키고 유지해온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습관이다. 꼭 전달해야 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도 있지만, 재미나는 이야기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여전히 우리가 가짜 뉴스나 찌라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쓰여질 수 있는 재료들(대나무, 종이 등)과 쓰는 기술들(붓, 펜, 인쇄술 등), 그리고 문자가 발전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기록을 남기는 형태가 더욱 활성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전달할 때 이야기의 형식을 좋아하는 것은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처럼 시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다.


반드시 후대로 전달되어야 했던 중요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쉽고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을지를 누군가가 많이 연구했을 것이고 그래서 인류는 문자, 종이, 펜, 인쇄술 등과 같은 기술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이 내용을 전달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말을 하는가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에 누군가는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차이를 발생시키는 사람은 분명히 영향력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즘 시대에 정보의 습득 방식이 다양해졌다고 해도 구성진 이야기만한 것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발전시켜온 소중한 전달의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기술은 상징잘 구성된 스토리, 이 두 가지이다. 전달하는 내용을 기억하기 쉽게 하는 방법으로는 이 두 가지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바가 적어 이곳에서 무엇이 맞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능력은 없지만, 상징과 이야기가 아주 잘 활용된 사례는 종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다른 분야에도 많이 활용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말투만 바뀌어도 분위기가 바뀐다


말투를 조금 바꾸어 볼까요? 

우리는 이야기의 힘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좋은 이야기이더라도 아주 담백하게 직선적으로 표현으로만 전달하는 것과 이야기를 통해서 내용을 전달받는 것에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지요. 교훈 한 줄을 딱 읽어주기 보다는 옛날 이야기 속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래동화나 우화가 탄생한 이유이지 않을까요? 다른 나라의 이야기까지 읽고 있는 우리가 아닙니까. 따끔한 충고보다 할머니 품에 안겨 듣는 옛날 이야기 속에서 전해듣는 충고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같은 이유겠지요. 


멋지고 유익한 내용을 전달할 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수준도 달라집니다. 잘 구성된 스토리의 구조, 적절한 사례와 우화, 목소리 톤이나 연기 등을 자연스럽게 활용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런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부럽습니다. 


어떻습니까? 말투를 조금만 바꾸어도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요? 만일 이 글을 앞에서부터 소리내서 읽는다면, 차이가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올해 저는 위빳사나 명상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을 2번 참여했습니다. 그 명상 과정 중에는 설법 시간이 있는데요, 이 시간을 통해 고엔카 선생님은 명상에 필요한 기본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설법이라서 강의처럼 진행할 수도 아니면 설교를 하듯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고엔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설법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1시간이 훌쩍 넘는 설법 시간이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예요. 설법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지했고 배움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아주 옛날, 모두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기호들과 설화의 형태들이 생겨났겠구나.'

'수천년 전 계몽에 앞장선 많은 리더들은 대부분 스토리텔링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잘 발휘하는 사람들이었겠구나.'




 물이 반만 남은 병 vs. 물이 반이나 남은 병


자기계발이나 리더십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어 익숙한 ‘프레이밍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물과 현상 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후속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념이예요. 이것을 설명하는데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예시가 물병에 담긴 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겨우 절반 남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절반이나 남은 것인지. 어때요? 한번쯤은 보거나 들어본 익숙한 부분이 있지요? 프레이밍 효과를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만일 물병의 사례가 빠진다면 어땠을까요? 


“사람은 어떠한 관점으로 현재를 보는지에 따라 많은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볼께요. 저 프레이밍 효과에 대한 개념과 긍정적인 효과가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이집트로 향하던 고고학 탐사팀의 비행기가 사막에 추락을 했습니다. 하늘의 도움으로 추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막을 걸어서 이동을 해야했어요. 그들은 각자 물병을 챙겨들고서 오아시스를 찾아 길을 떠났는데~” 


이와 같은 일화를 소개하며 결국 오아시스에 도착한 사람들은 물병에 남은 물을 아직도 이만큼 남았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일상 생활 중 물병을 보게 되면 프레이밍 효과라는 명칭은 기억이 나진 않더라도 이야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까요? 저는 일화 속에 담긴 내용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거든요.

이것이 스토리가 가진 힘인 것이죠.




★ 다 아는 이야기는 힘이 없을까?


고엔카 선생님은 이야기의 구조와 그 효과를 아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설법 중간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굉장히 오묘한 타이밍에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예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냥 편하게 들으세요.”


이러한 시작은 긴장을 풀어지게 하는 좋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억지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게 하고요.


<고엔카 설법 중>

옛날에, 어머니로부터 시장에서 기름을 한 병 사오라는 심부름을 떠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시장에서 기름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고 말았죠. 그래서 기름이 절반이 흘러버렸습니다. 그 아이는 집으로 와 울면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넘어지는 바람에 기름이 절반이나 흘러서 절반 밖에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다른 아이에게 기름을 한 병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시장에서 기름을 한 병 사오던 아이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냥 편하게 들으세요, 넘어졌습니다. 기름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어요. 얼른 병을 주어 들은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넘어져서 병을 땅에 떨어뜨렸지만 빠르게 주어서 절반이나 남겨 올 수 있었어요.’



기름이 반이나 없어져버린 첫번째 상황. 그리고 다른 아이에게 기름을 다시 사오라고 시키는 어머니. 그리고 시장에서 기름을 사오다 다시 넘어진 아이.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될 때, 사람들은 이미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어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어요. 고엔카 선생님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해주면서 청중의 관심이 흩어지는 것을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타이밍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너무 많이 접해서 뻔할 수도 있는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고엔카 설법 중>

위빳사나 명상을 배운 그 아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을 했어요. 

'어머니, 제가 내일 밖에 나가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그 돈으로 절반이 흘려 버린 기름을 채울 수 있어요. 지금은 절반이 없어 보이지만 곧 모두 채워진 한 병이 될꺼예요.'



명상을 꾸준하게 수행하게 되면 일상 생활에서 어떠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모두가 알만한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이었지요. 두번째 아이도 넘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 명상을 하면 긍정적으로 태도가 바뀐다는 것인가?’


그런데 반전이 있었죠. 긍정적 태도를 넘어서 변화를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이 내용을 그저 강의하듯 말을 했다면 수 개월이 흐른 지금, 저는 아마도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야기가 가진 힘인 것이지요.




★ 스토리텔링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드라마나 영화의 작가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말이죠.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다면 말입니다. 전문 강사나 프리젠테이터를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스토리텔링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분야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특정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작가처럼 표현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다채로운 삶을 위해서는 말이지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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