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엄마라는 집>
자식에게 필요한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다
첫장면이 영화 전체를 궤뚫는 내용이었네. 처음에 나는 딸과 나눈 대화인가 했는데 친정 엄마와의 대화였다.
영화는 이 대화를 나누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주인공은 종일 미술교사일 을 하고 퇴근 후에는 커다란 1인용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을 위해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딸과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친정어머니도 돌보려는 주인공은 집을 구하려 다닌다. 남편의 잡동사니가 다 들어가고 딸의 서재도 있어야 하니 넓어야 하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서는 분리수거가 쉬워야 하며, 부부가 나이가 많으니 계단이 많아도 안 되고, 화초도 키워야하니 햇빛이 들어야 한다. 주인공은 맘에 드는 집을 위해 은퇴를 미루고 돈을 계속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집 계약금을 잠시 빌려 간 제자는 연락이 안되고, 유학을 보낸 아들은 교수직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겠다 하고, 남편은 기대를 저버린 아들에 대한 실망으로 아들과의 소통 창구인 아내를 탓하고 이사갈 계획에 대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또 아내를 나무란다.
주인공은 요양시설에 있는 엄마를 찾아가서 엄마 옆에 눕는다. 친정 엄마와 예전 살던 곳을 여행하면서, 첫 장면에 나오는 대화를 친정 엄마와 주고 받는다.
"엄마의 꽃 가게를 내가 맡기를 바라셔서 파리에 미술 공부하러 못 갔죠."
"넌 네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 했어. 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 네가 유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내가 돈을 모았을 거야."
"근데 칭찬하신 적 없잖아요. 내 그림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배운 사람은 넌데 아직도 직접 결정을 못 하고 남에게 휘둘리는 거야?"
"이 나이 먹고도 엄마를 실망시킬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네가 다른 일 했다고 더 행복하진 않았을 거야."
그리고 주인공은 요양원의 엄마 옆에서 일어나서 엄마에게 "고마워요 이제 두렵지 않아요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하더니 집으로 향한다.
주인공은 집으로 와서 거실에 있는 1인용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직장을 그만뒀다고 집으로 들어왔던 딸은 집을 나가려는지 짐을 싸 놓고 자신의 옷이 어디 있는지 엄마에게 묻는다. 주인공은 "모른다."고 한다. 딸은" 엄마가 여기 있는 한 난 문제없어요." 한다. 엄마는 딸에게 옷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아들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남편이 오늘 생선요리가 있냐니까 "없다."고 한다. 달걀프라이를 주인공이 만들고 딸이 우동을 세 그릇 내 온다. 간단한 식사를 한다, 제자로 부터 전화가 왔다고 딸이 전하고 주인공이 모형 지구본 하나를 모형집에 놓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딱 주인공이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 내 또래라서 동지애를 느끼면서 영화를 봤네. 중국이 남자들은 밥을 도맡아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만 남자들은 안 그런가? 아니면 이 주인공의 남편만 별종인가? 지구 위에 남자들은 일상적으로 지 손으로 식구들 밥을 챙기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와우 그 시종을 왜 들어주고 있냐고요. 일 안한자 밥 먹지 말라는 격언이나 지껄인다고 행동이 달라지냐고요. 퇴직한 남편을 위해 매일 생선요리를 매일 준비하냐고요. 어쩌다 한 번이지. 참 갑갑하더군.
딸은 엄마에게 행복하냐고 묻고 엄마 자신의 삶을 살으라하면서도 엄마를 마구 부려먹더만. 또 그걸 부지런히 다 해 주는 엄마. 게다가 이 엄마는 그 딸에게 집을 사 주고 싶어하네요. 주인공이 비록 치매에 걸린 엄마이지만 엄마를 보면서 힘을 얻는 것처럼, 이 딸도 엄마를 믿고 살아갈 힘을 얻더구만.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이 '엄마라는 집'이었겠지. 주인공이 새로운 집을 구하러 이 집 저 집 다니지만 새 집은 못 구했고, 결국 주인공은 친정엄마라는 집에서 힘을 얻지. 또 주인공의 딸에게 엄마로서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지. 즉 주인공은 딸에게 물질적인 집을 사 주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는 것이지. 자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며 정신적 유산이라는 게지.
우리 딸들이 엄마가 우리한테 뭘 해 줄 수 있나 하고 장난스레 질문할때 나는 늘 세상을 보는 안목과 성실한 태도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쓰는 자세 등 돈으로 값어치를 정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물려준다고 당당하게 말을 했었지. 서울 집값이 치솟으면서 사실 나는 돈만 있으면 아파트 한 채씩 턱 사 주고 싶어졌지. 자식에게는 아파트보다 잘 버텨주는 엄마가 더 필요한 거야, 그러엄.
딸은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어려울 때 잠깐 엄마 집에서 지내다가 또 짐을 꾸려서 세상을 향해 걸어가더만. 같은 여자로서 다른 사람들 돌보는 일만 하면서 사는 엄마를 걱정하기는 하더만. 꿈에서 주인공은 장미꽃을 딸에게 주고, 주인공은 장미꽃을 친정 엄마한테 받는 것도 인상 깊었어.
엄마라는 집은 자식에게 있어 우주가 될 수도 있어. 그러나 그 우주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보기도 해야 해. 다 큰 자식들과 남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은 상대가 자립이 가능할 때 얼른 손 떼야지. 딸 자식의 집을 사 주고 싶어했지만 씩씩하게 잘 자란 딸은 스스로 잘 해결하고 있잖아.
나는 치매를 비롯한 중병에 걸리면 얼른 죽어야 한다는 쪽이었어. 건강하게 오래 살든가, 건강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부모가 오래 살아있는 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드는구만. 사람의 정이란 게 그 따스함은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더군.
이 영화는 제 2탄을 내가 만들고 싶구만. 스스로를 믿게 된 우리의 주인공이 펼치는 제 2의 인생 이야기라 흥미로울 것 같지 않나. 일단 은퇴를 해. 왜냐하면 그 제자가 돈을 투자해서주인공이 빨리 은퇴하도록 돕겠다 해서 돈을 빌려 가더니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났잖아. 아마도 돈을 받았을 것이니 은퇴가 가능했겠지.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지구본이 뭘 뜻하겠나. 지구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 농사 짓는다는 아들도 응원해 주고, 승승장구하는 딸도 지켜보는 거지.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시골에 집을 빌려서 독서하고 게으름 피우면서 인생을 노래해도 되구말구.
수고 많았어. 우리의 주인공 예란신. 잘하고 있어. 예란신뿐만 아니라 이제 은퇴를 바라보는 혹은 은퇴한 모두는 조금 부족했더라도 충분히 애썼잖아. 잘했어요. 수고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