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이 이 작품으로 상을 받았는데, 윤여정은 이 작품보다 연기를 더 잘한 작품이 많다. 특유의 천연덕스런 표정하며, 뒷부분에서 슬픔과 미안함으로 힘없이 손녀손자를 보는 표정 그리고 딸과 사위와 손녀손자가 함께 잠들어 있는 광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는 모습 등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다른 많은 영화에서 익히 보아오던 작품 속에 관객들을 온전히 빠져들게 만들던 윤여정의 빼어난 연기력이다. 내가 보기에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윤여정이 더 연기를 잘 한 것 같다. 그 영화는 겉으로 센데, 속은 마음 따뜻한 역할이라 다양한 표정과 느낌 등이 필요했던 역할이었는데, 윤여정의 능력치를 제대로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과 가족이 다투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역경을 이겨내는 작품이다. 남편과 아내가 때때로 의견이 달라서 대립하기도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돕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딸과 아들을 키우고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윤여정의 사위는 자신의 농장을 일구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한다. 물이 나오는 곳을 찾고 스스로 땅을 파고 그 물을 이용해서 농작물을 기르고 판로를 찾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남편의 계획대로 일이 잘 되지 않자아내가 그만하자고 말을 하니,
"아버지로서 뭐라도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고 말했다. 뭐라도 해내지 않아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가족을 책임지려 노력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시도하고 애쓰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또 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려 하고 애정을 표현할 줄도 아는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무섭기만 하고 불성실한 아버지 밑에 자라나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아버지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딱 내가 부러워하던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자식에게 뭐라도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저렇게 노력을 하지 않나. 애써 지은 농산물이 가득찬 창고가 불에 탄 후 끝이 나는데, 아마도 이 아버지라면 그 다음 해에 멋지게 성공을 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장면이 있다. 아들이 '숫병아리는 왜 가려내느냐?'고 묻자, '알도 못 낳고 고기도 맛이 없어 버려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은 쓸모가 있어야한다.'고 말을 하는 장면에서 '이 뭐지?' 했다. 가난해서 힘든 시절에 대개 사람들은 존재로서의 값어치를 생각을 못했었지. 그저 돈을 잘 벌어야 사람 구실한다고 생각했었지. 돈을 못벌면 다른 뭐라도 잘해야 존중받던 시절이었지. 나도 오랫동안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지. 그래서 이 장면이 딱 기억에 남는 것이겠거니. 그래도 이 장면은 없었으면 좋겠다. 인디언 영화에서 보여주던 자연의 신비와 은혜를 알려주는 장면이 대신 들어갔으면 더 좋았겠다. 비옥한 땅을 찾아냈고, 그 땅에 농사 지어서 가족을 먹여살리려는 사람이라면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윤여정은 아픈 손자를 돌보기 위해 미국 딸네집으로 간다. 한국에서 한국의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돈도 한 뭉치 들고 간다. 아마도 살던 집을 팔았거나 했겠지. 미나리 씨도 들고 간다. 자신을 거부하는 손자를 따뜻하게 대하고 손자와 가까워지려고 서투른 영어를 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손자가 자신의 병때문에 불안해하자 할미가 지켜줄게하며 안심시키는 장면이 뭉클했다. 나는 누군가 저렇게 힘들어하면 안아주기는 하지만 말을 못한다. 당췌 말이 안나온다. 지켜줄게라고 하다니... 마음 속 사랑을 저렇게 말로 온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할머니라서 딸네집 식구들과 더 잘 어우러질 수 있었겠지. 창고에 불을 내는 큰 실수를 했지만, 그래서 너무 미안해서 비슬비슬 미나리 있는 쪽으로 집과 멀어지고 있을 때, 손자가 달려가서 할머니 앞을 가로막고 설 정도로 한 가족이 되었다. 그 손자는 자신이 심장병이므로 뛰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잘 지키던 아이인데,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서 할머니를 가로막았다.
윤여정이 들고간 미나리는 미국에서 잘도 자랐다. 그 미나리는 창고에 불을 낸 직후에 사위가 가서 따오는데,
아마도 이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당장 납품해야할 농작물이 없을 터인데 아마도 사위는 미나리라도 납품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건너가서 미국에서 뿌리내리고 무성하게 자라난 미나리가 결국 정착에 성공하는 이 가족을 비유한 영화의 장치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 역시 '미나리'인 것이고.
힘든 삶을 긍정의 눈으로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대단히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서 실패도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돕는 가족이 있어 끝까지 노력하며 사는 거지, 뭐 인생이 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