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54호 (2024년 2월호)
코너 : DUGOUT Story
인터뷰이 :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
일자 : 2024년 1월 9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사직야구장
내가 처음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2007년. 베이징올림픽으로 한국 야구의 중흥기가 찾아오기 1년 전이다. 당시 난 LG팬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LG 야구를 보기 시작했고, 덕분에 10년(2003~2012) 동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던 LG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 속에서 야구를 봤더랬다. 나름 10년 중 6년이나 함께 한 LG 암흑기의 산 증인인 셈.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포스트시즌은 '남들의 잔치'일 수밖에 없었고, 매년 정규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가을야구 전용 응원팀'을 고르는 게 일상이었다. LG의 야구가 가을까지 이어지진 않더라도 시즌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야구를 지켜보는 게 나름의 도리였기 때문이다.
두산, SK, 삼성....등등의 여러 강팀들이 후보군에 올랐지만, 유독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은 팀이 있었다. 바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끌던 롯데 자이언츠였다. 야구에 입문한 2007년만 해도 LG와 함께 가을야구를 구경만 하던 팀이었지만,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부터 롯데는 2012년까지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신흥 강팀으로 떠올랐다. 비록 당시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무서움 없이 화끈한 공격야구를 펼치던 롯데는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던 팀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거진 10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2024년. 당시 롯데 라인업을 채우던 이들은 하나둘 팀을 떠났고, 그중 오직 한 사람만이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DUGOUT Behind> 열일곱 번째 주인공,
우승이라는 마지막 대업을 위해 달려나갈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다.
이날은 내 생애 첫 부산 출장이었다. 작년 여름에 에디터팀끼리 여행을 간 김에 직관을 하고 오긴 했지만, 미디어 관계자(?)로서 사직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글만 끄적이는 것보다는 현장을 뛰어다니는 게 확실히 도파민이 생기는 일이기에, 이번 출장이 그저 신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전준우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선수이기도 했고.
(법인카드의 가호 속에) KTX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부산. 부산은 지방 출장 중에서도 가장 일정이 쉽지 않은 편에 속한다. 일단 거리가 거리인 만큼, 당일치기로 다녀온다는 게 썩 반갑지는 않다. 심지어 이날은 오전에 인터뷰 일정을 하나 더 소화하고 가야 했기에, 그 빡빡함이 배로 늘어난 터였다.
정오에 부산고등학교에 들러 인터뷰를 마치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사직야구장에 도착했다. 일정이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탓에 체력을 반 이상은 쓴 상황이었지만, 희한하게 야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드나들기 힘든 입구로 들어간다는 쾌감과, 야구장이 주는 특유의 설렘 덕분이었을까. 인터뷰를 세팅하는 과정에서 앞서 소진한 에너지가 전부 회복됐다. 이 정도면 난 야구 자체보다도 야구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건 아닐지.
"언제 불러주실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항상 인터뷰도 잘 해주시고, 출연하고 난 다음엔 기록도 좋았던 기억이 나요. 나올 때마다 좋은 기운이 있었으니 오늘도 기대됩니다."
개인 운동을 마치고 나서 인터뷰를 위해 곧바로 달려왔다는 전준우.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날 그의 패션은 마치 동네 형을 보는 듯한 친숙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성큼성큼 인터뷰룸에 걸어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에게서는 엄청난 아우라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의 광활한 어깨. 원래도 '어깨깡패'로 유명한 그이지만, 직접 보니 그 실물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동안 야구선수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들의 체격에 여러 차례 놀라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전준우의 어깨는 '진짜'였다. 어떻게 저렇게 양옆으로 딱 벌어질 수 있는건지 감탄하게 될 정도로.
"(주장을 맡은 후의) 마음가짐은 다르지 않습니다. 야구는 단체 운동인 동시에 개개인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종목이라, 팀 성적과 개인 성적 모두를 잘 챙겨야 한다고 봐요. 대신 주장이라면 팀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거기다 전준우는 올해로 17년차를 맞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기에, 처음 인사를 나누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때부터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술한 어깨에서 오는 물리적인 위압감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연차에서 흘러나오는 여유가 상당해서 그런지 모든 질문을 던질 때마다 조심하게 됐다. 일단 그는 올 시즌부터 다시 롯데 선수단을 대표하는 '캡틴'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내가 던지는 질문에 시원시원하고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마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오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래서 전준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인터뷰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더 잘해야 하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해야겠죠. 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떨어지면 안 멋있거든요. 멋있는 선배로 남기 위해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어요."
본인을 롤 모델로 뽑는 후배가 늘어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전준우의 답변. 16년이라는 연차와 쌓아올린 업적을 감안한다면, 그처럼 되고 싶다는 선수들이 생기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연차와 성적만으로 누군가를 '닮고 싶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은 이, 특히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들이 누군가를 롤 모델로 거론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가시적인 성과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본보기와 리더십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말해서 닮고 싶은 '멋'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 대목에서 전준우는 멋지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가 아닐까 싶다.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그리고 리더로서, 전준우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서 후배들 앞에 나서야 하는지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바로 롤 모델로서의 '멋'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쌓아올린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그걸 유지해야 한다는 걸 마음 속에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공식 유튜브인 '자이언츠TV(이하 자티비)'를 보다보면, 평소의 포스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전준우는 꽤나 웃수저(?)다운 면모를 보이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후배들을 휘어잡는 '큰형님' 같은 포스를 보이기는 하는데, 그 모습조차도 그저 예능의 한 장면 같다. 특히 특유의 사투리로 자티비에 진심이 되는 모습이 백미. 야구장에서뿐만 아니라 구단 유튜브 안에서조차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의 출연을 독려하는 모습은, 어째서 그가 롯데의 주장인지 단번에 이해하게 만든다.
"저도 후배들한테 카메라 앞으로 나가라고 해요. 지금은 자기 PR 시대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티비) PD님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저한테 협조 좀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곤 하세요."
"새 감독님도 오셨고, 선수들도 ‘이젠 우리가 (우승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각오가 머릿속에 각인이 돼 있어요. 거기다 주변에서도 저희가 꼭 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다 보니까, 어느 때보다 마음가짐이 남다릅니다."
숱한 롯데 선수들이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 그건 바로 우승. 1992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하고 있는 롯데 선수들에게, 우승은 반드시 오르고 싶은 고지다. 특히 롯데 다음으로 오랜 기간 우승을 하지 못했던 LG 트윈스가 2023시즌 정상에 올랐기에, LG와 마지막 우승이 단 2년밖에 차이나지 않던 롯데로서는 더욱 가슴이 쓰렸을 테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에 임하는 전준우의 각오는 새삼 결연하다. 그동안 그와 함께 야구를 해온 많은 동료가 롯데에서의 우승을 완수하지 못한 채 팀을 떠났고, 그들 중 누군가는 다른 팀의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롯데의 원클럽맨으로서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준우이기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커리어엔 꼭 우승이라는 명패가 걸리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있다.
아무래도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꽤 겪어서,
앞으로는 우여곡절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때 난 그의 바람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그의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선수생활을 지켜본 입장이기에,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꽤 겪었다는 전준우의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으니까. 그의 바람대로 '롯데 그 자체'인 전준우의 이야기의 끝은 꼭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끝까지 낭만과 의리를 지키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준우에게는, 그 해피엔딩을 맞이할 충분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만났던 전준우는, 2023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오지환과 참 닮은 점이 많다. 동료가 하나둘씩 떠나는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는 점부터, 오랜 기간 우승이라는 숙원을 갖고 있는 팀의 주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은 채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다는 점까지. 지금도 이날의 인터뷰를 돌려보면, 마치 1년 전 연장계약을 통해 (비록 이 계약은 2023시즌이 끝난 후 FA 계약으로 갱신되기는 했지만) 종신 LG를 확정한 오지환이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원고의 제목을 'Last Legacy(마지막 유산)'로 정한 것 또한 그 서사를 담고 싶어서였다. '8888577'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중반의 암흑기, 그리고 그걸 청산했던 '로이스터 시대'를 지탱한 멤버들은 롯데 팬들에게 낭만과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새 막내격이었던 전준우만이 남았고, '그 시절'의 마지막 유산마저 선수생활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앞으로 주어질 4년(혹은 그 이상)의 시간. 그 사이에 '전준우의 롯데'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고 미련없이 '그 시절'과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수 있기를, 그리고 롯데팬들이 이 마지막 유산을 떠나보내는 순간이 미련과 후회가 아닌 후련함으로 가득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