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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K Feb 27. 2024

[DUGOUT 비하인드] 16.LG 트윈스 이호준 코치

FROM <DUGOUT MAGAZINE> 153호 (2024년 1월호)


코너 : DUGOUT Interview

인터뷰이 : LG 트윈스 이호준 코치

일자 : 2023년 12월 14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마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모든 글쟁이의 숙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업 시간을 단축한다고는 해도 글이 나오기까지 물리적으로 소요되는 최소한의 시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난 글의 질은 소요 시간에 절대적으로 비례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들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찍어낸 글의 퀄리티가 여러 의미로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은 늘 마음 같지 않다는 것. 간혹 극한에 이를 정도로 짧은 시간밖에 허락되지 않는다면, 글쟁이들은 창작의 고통에 버금가는 마감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턱없이 부족한 기한 속에 글을 써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슬픈 건 그 가운데에서도 글쟁이들은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내 에디터 경력이 일천했다면, 이날의 원고를 무사히 완성시키기 못했을 테다. 하지만 다행히 거진 2년의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원고를 완성해내는 속도와 노하우는 과거에 비해 매우 나아져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부터 원고 마감까지 대략 2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역대급으로 촉박했던 이 일정을 기한 안에 무사히 소화하기에 이른다. 이러고 나서 다음 호 기획회의까지 참석하는 스케줄이었으니, 이때의 일주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DUGOUT Behind> 열여섯 번째 주인공,

별명답게 '아부지'다운 매력을 뽐낸 LG 트윈스 이호준 QC코치다.



원고를 쓸 때 가장 품이 들어가는 단계를 꼽자면 역시 제목을 정할 때다. 그나마 기획기사는 글의 주제를 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제목을 뽑아내는 게 그리 어렵진 않지만, 인터뷰 기사는 제출 직전까지 제목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잦다. 어쩔 때는 원고가 다 완성됐음에도 제목이 안 나와서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날은 가장 제목을 정하기 어려웠던 원고였다. 이호준 코치와의 만남을 고대해왔던 데다, 어느 때보다 질문지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을 정도로 원고에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보다도 만족스러운 제목을 붙이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앞선 탓이었을까, 제목을 정하기까지 여간 많은 시간이 걸린 게 아니었다. 썼다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음에도 원고를 대표할 한 줄을 만드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결국 마감 직전에 이르러, 난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코치님을 떠올렸을 때 처음 드는 감정은 무엇이었나. 처음 그가 LG의 타격코치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와의 인터뷰를 담당하게 됐을 때, 그리고 인터뷰 당일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할 때, 난 과연 어떤 마음이 들었나.


돌이켜보니 '기쁨'이라는 감정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루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이 가득했지만, 결국 그것들은 기쁨으로 귀결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코치님과의 인터뷰 소식을 담은 인스타그램 멘션 첫줄을 망설임 없이 '기쁘다 호부지 오셨네'로 정한 것도 비슷한 대목이었다. 보통 인스타그램 멘션에 쓴 멘트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없지만, 이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재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코치님만 떠올리면 한없이 기뻤으니까.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인터뷰이와는 초면인 경우가 보통이지만, 이호준 코치님의 경우는 달랐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따라갔던 작년(2023년) 2월, 야간 훈련이 진행되던 실내 타격장에서 막간을 이용해 코치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환일기 17화 中


그렇게 약 10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서 만나게 된 것. 캠프 때 나름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만큼 코치님과의 재회가 더 반가웠다. 물론 캠프 당시 엘튜브 팀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내 존재감이 컸을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내심 날 기억하고 계실 수도 있진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스몰토크를 하는 타이밍에 슬쩍 여쭤봤는데...


"우와... 이거 어떡하지...? 미안해요 정말 기억이 안 나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미안해하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진심으로 기억해내려고 노력하시는 느낌까지 들어서 내가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부담을 드린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살짝 어색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행히 코치님도 적극적으로 질문에 답하신 덕에 활발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코치님이 남기신 말이 진짜 감동.


이젠 오늘부터 얼굴 절대로 안 까먹겠네!


이러니 코치님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더 키워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큰 성공을 일궈낸 코치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명의 어른으로서도 코치님은 존경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분이었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데이터 분석이) 언뜻 보면 단순한 정보 싸움, 숫자 놀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타석에서의 자신감도 이런 대목에서 오는 거거든요. 스스로가 준비돼 있으니까, 한층 확신과 믿음을 갖고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거죠. 그게 제가 타자들에게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바로 코치님의 철학이었다. 워낙 훌륭한 지도법으로 유명한 만큼 그의 가치관에서 배울 게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코치님과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학습'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 야구를 대하는 과정에서의 진정성, 그리고 여전히 배움을 계속해나가는 자세까지. 내가 살면서 추구하는 것들을 몸소 이행하고 있는 분이었다.

웃으실 때 정말 매력이 철철 넘치시는 이호준 코치님

그 까닭에 여러 답변이 인상적으로 남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이것. '약점'을 대하는 코치님의 자세였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지만, 흔히 그걸 보완하려다 기존의 장점이 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부족한 것을 메꾸려다 자칫 갖고 있던 경쟁력조차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 그래서 난 평소에 약점을 보완하지 않더라도 원래의 무기를 더욱 강화하는 게 낫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코치님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장점을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무기를 확실히 가져가겠다고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해서 100% 완벽한 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각 리그에서 탑 클래스에 속하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나가요. 만약 본인이 최고의 반열에 들고 싶다면, 두 가지를 모두 잡는 게 필수적이라고 봐요."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두 가지 토끼를 잡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문득 생긴 궁금증. 리그 최상위 레벨의 타자로 성장한 홍창기는 장타력이 몇 안 되는 약점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과연 이호준 코치는 이 부분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을까?


"이건 살짝 다른 얘기에요. 일단 창기 스스로가 홈런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안타를 치거나 출루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홈런은 단점이 될 수 없다고 봐요. 그리고 이 친구의 타석에서 홈런이 안 나온다고 해서 팀의 구상이나 계획이 흐트러질 일도 없으니까요."


설령 다른 타자들보다 장타를 때려내지 못해도, 그건 홍창기에게 약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말은즉슨, 어떤 것이 보완이 필요한 '약점'이 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 이를테면 글쟁이로 자리잡은 내가 공학자들처럼 미적분을 계산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건 약점이 되진 않는다. 내 비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능력치가 없다고 해서 그 계획이 흐트러질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분명히 내 계획을 망칠 수 있는 약점이 존재한다면, 그건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저그런 사람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내 자신에 대한 철저한 자기객관화와 자기반성이 필요하겠지.

영상 21분 30초부터

그리고 코치님은 인터뷰 후 며칠 있다가 촬영한 '볼카운트' 영상에서도 이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셨다. 영상으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어찌나 놀랍고 반갑던지. 이 질문에 관해 얘기를 나눈 게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이렇게 코치님이 한 번 더 강조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나누곤 했어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늘 기억하고, 공부해왔거든요. (중략) 그래서 언젠가 감독이 된다면 해야 할 일을 꼭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새기고 살 거예요."


이날은 에디터 생활 처음으로 '코치' 라는 직함을 단 분과의 만남이라, 다른 때보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보통 코치/감독님들은 선수들에 비해 답변이 풍성한 것도 있고, 긴 경력을 갖고 있는 만큼 색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로 기대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호준 코치와의 만남은 이러한 기대를 분에 넘칠 정도로 충족시켰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앞서 언급했듯 배운 것도 많았고,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됐다. 그동안 내 가치관에 영향을 준 인터뷰를 골랐을 때 단연 Top 3 안에 들어갈 정도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면 인터뷰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됐는데, 이날의 사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코치님은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주신 건 물론이고, 손수 팻말까지 같이 들어주셨다. 굉장히 친밀하게 포즈를 잡으셔서 그런지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코치님 품에 안긴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거기다 사무실 직원 중에 코치님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한 분 한 분 다 저런 구도로 품어(?)주셨다. 조금 주책을 부려본다면, 인자함과 자상함을 시각화하면 코치님이 아닐까 싶을 수준. 괜히 별명이 호부지였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죽는 날까지 야구판에 있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그 정도로 (야구란)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할 동반자예요. 가족이죠, 가족."


지금까지 야구라는 외길만을 따라온 이호준 코치. 선수로서도, 코치로서도 그의 인생엔 '성공'과 '성과'라는 단어가 함께했다. 그리고 올해, 그의 이름 앞엔 '타격코치' 대신 'QC(Quality Control)코치'라는 새로운 직책이 붙었다. 단순히 타격 파트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팀 전반에 걸쳐 운영과 지원을 담당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언젠가 감독을 꿈꾸는 그에게, 한 단계 성장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


이미 큰 성과를 이룬 그이지만, 여전히 그의 야구 인생엔 여러 차례 승부처가 있을 거로 예상한다. 그 가운데에서 이호준 코치가 승리를 거둘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처럼 그의 존재감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일들이 많기를 응원해본다. 익히 알려진 속설대로, "인생은 이호준처럼" 사는 거라고 했으니!


"남은 야구 인생 역시 계획한 대로 이끌어갈 거고, 그 과정에서 분명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겠죠. 하지만 아마 성공이 더 많을 거로 예상해요. 그리고 그 끝이 왔을 때, 꼭 웃으면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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