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앞둔 모든 고3 수험생과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화장실 한번을 다녀올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 안으로 아이들의 자소서를 봐주어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수시모집 자소서 마감 기한이 일주일 앞이다. 내가 아니면, 내가 한 번 더 아니면 누가 봐주어야 하나. 방광염에 걸리도록 시간을 쪼개어 분초를 다투며 소위 자소서를 완성하였다. 그렇게 교사와 아이들을 괴롭히던 자소서는 종멸하였다.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생기부 안에서 다 못다한 말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였다. 아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그들이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공부를 그리고 활동을 진정성있게 하였는지를 대학은 알아주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 사춘기를 이겨가며 이성의 유혹과 그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움’을 외면해가며 피와 땀을 흘렸는지를 들어주어야 했다. 그렇기에 대학은 지원한 아이들을 다 받아주어야 했다. 선발이니 선별이니 하는 말 따위는 사라져야 했다. 그들은 그 노력 자체로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아야 했다. 적어도 그들과 함께 자소서를 작성했던는 나는 그걸 잘 알았다. 너무도.
인문계고등학교의 담임과 3학년 부장을 맡으며 대학의 설명회를 좇아다녔다. 입시 정보를 놓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지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입시를 공부했다. 아이들이 치러야 하는 수능도 그 출제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석사도 땄다. 그래서 수능 출제 위원으로도 지원했다. 장장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출제와 검토에 위원으로 참여해가며 평가와 교과 전문성을 갖추고 아이들을 도왔다. 입시라는 전장에서 아이들이 그저 의미없는 피를 흘리지 않도록 내가 먼저 나섰다. 그렇게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을 같이 준비했다.
이제 대학 진학이라는 전장의 치열함이 저물어 간다. 줄어든 학생수라는 외적 변수으로 인해 저마다 다양한 적성에 맞추어 학생들은 대학을 갈 수 있다. 다른 건 없다. 그런데 어째 다들 의대 앞에 줄을 섰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의사라는 사람이 주는 안온함이 크다는 것도 잘 안다. 없으면 어떻게 될까도 너무 잘 안다. 그래도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의사가 될 수는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다 다르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고 그 학점으로 졸업을 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라는 정책이 내년이면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좋은 정책과 제도를 늘 고민한다. 나쁜 방향의 정책을 고민하는 정부는 없다. 사람들은 선하다. 그래도 한 가지만 바란다. 교육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내가 말이다. 그저 지독한 사춘기 시절인 고등학교 3년간은 우리 아이들이 원없이 그들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를. 그렇게 찬란히 빛나는 시간으로만 기억될 수 있기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며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