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그렇게나 그런 어마어마한 상태에 놓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20여년을 학교 생활을 해왔으니 뭐 일이야 이골이 난거라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학사 생활의 첫 시작은 그런 자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나쁠 건 없었다. 자만이었지만 자부심이기도 했다.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머리를 찧으며 나는 울부짖었다. 그래 그렇게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끝없는 서류와 끝없는 민원과 끝없는 상사의 갑질 속에 나는 고통과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너무 처절하게 표현한 거 아니냐고?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 때 내 마음과 상태가 그랬다는 거다.
눈물은 하릴없이 흐르고 학폭 사무실에 혼자 앉아 밥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운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일을 버리고 도망가는 건 교사로서의 양심에 도저히 맞지 않았다. 학교폭력이라는 상황에 휘말린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몇일 병가라도 내었을것을. 미련곰탱이처럼 꾸역꾸역 책상을 떠나지 못했다. 출석개근거지교사였다. 그래도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몸과 마음은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그렇게 책상을 의지삼아 한참을 울던 내 눈 앞에 한 잔의 커피가 건네졌다. 형편없는 뱃속은 꼬르륵거리고 배를 채워주지 못한 주인님이 야속이나 한 듯 요동쳤다.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을 대충 훔치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크림층과 함께 한번에 마셔보세요, 아주 괜찮을 거예요. 요즘 이게 핫하다고 하더라고요. 퇴근하는 길에 사왔어요. 장학사님, 이거 먹고 힘내요." "에? 예, 예" 커피는 꿀맛이었다.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조금 자그마한 잔에 진갈색의 커피 색과 하얀 크림은 경계선에서 부딪히며 나에게 아주 잠깐이지만 영겁의 달콤함을 선사해주었다.
"얘, 뭐냐? 왜 이렇게 맛있음?" 울던 얼굴이 어색한 웃음으로 단숨에 야누스가 되어버렸다. 머쓱해진 나는 주무관님을 쳐다보았다.
"울지말고, 또 울지말아요. 다른 사람들이 흉봐요. 장학사라는 사람이 울면 어떻게 해요."
좀 더 로맨틱한 말을 기대했던 나는 주무관님의 직설에 잠시 정신이 들었다.
주무관님이 가고 나는 다시 힘을 내었다. 밀린 서류와 학폭사안 접수를 했다. 한껏 당분이 충전된 나는 그 날 이후로 화는 낼 지언정 울지는 않았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안되었던 주무관님이, 한 참을 가야만 살수 있는 그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찾아, 어렵고 힘들게, 남들이 빡칠만한 초보 운전의 주차를 해놓고, 퇴근길을 다시 돌아, 나를 위한 한잔을 사다 준 것이었다.
그 샥라떼 한 잔은 내 마음 속 깊이 남아 다른 이를 위한 배려의 씨앗이 되었다. 적어도 그 샥라떼 한 잔 건네지 못할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장학사 5년차. 여전히 정책 사업은 힘들고 학교와 도교육청과 여타 기관들과의 협업은 어렵다. 그래도 내 옆의 직장 동료들을 향한 따뜻한 공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거대한 하이러키 사회에서, 냉정한 행정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도 노력한다. 신념은 나를 지켜줄 것이다. 갑자기 무슨 신념이냐고? 그저 당충전 라떼 한잔의 신념말고 뭐가 더 우리에게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