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은 주고 싶어도 참깨!
의령 정곡 이부자집 참기름
입덧은 차츰 사그라들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어느 오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동실 한 켠 보이는 참깨통. 이상하게도 참깨가 먹고 싶어졌다. 뚜껑을 열고 냅다 한 숟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고소한 참깨의 향이 훅 올라왔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뽀도독 한알씩 깨어 먹으니 깨맛이 꿀맛이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오니 다시 깨가 먹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임신중 먹고 싶은 음식으로 참깨를 찾게 되었다.
한국산 올리브유, 참기름. 아니 참기름이 아니라 챔기름이라 찰지게 불러야 하는 게 더 정감있다.
참깨를 퍼먹던 어미탓인지 큰 애는 유독 참기름을 좋아했다. 무슨 음식을 해주던지 참기름을 들이부었다. 토핑처럼. 어느날에는 "엄마 참기름을 걍 마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맛있는 걸요?" 라며 참기름을 예찬하였다. 아들이 원하는 거, 참기름 그거 뭐시라꼬라며 나는 참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다 쟁였다. 그래서 그런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고 하더니 재래시장을 들를때면 꼭 방앗간 그 앞에 짜놓아둔 참기름 병에 눈이 갔다. 집에 사둔 참기름이 반만 남을라치면 또 한병을 가져다 그 옆에 놓아두었다.
의령의 한적한 마을 길. 정곡. 삼성 이병철의 생가지가 있어 때때로 관광객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부자집 참기름, 망개떡'이라는 간판이 눈에 보인다. 지나칠 수 없다. 냉큼 참기름 두어병을 샀다. 참기름을 어떻게 한 것인지 집에서 두고 먹는 내내 마지막 한방울까지 고소한 향내가 한참을 갔던 그 참기름. 가게 한쪽 이제 막 갓 내린 듯한 참기름들이 열맞추어 손님을 기다린다. 참기름 한 병 건네고 싶은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공직에 있어서 그런지 선물 하나가 쉽지 않다. 관계는 얽히고 설켜 '나 좀 잘 봐주세요'라고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선물을 주고 싶은 상대방의 직급과 직위가 머릿속을 왔다갔다하며 복잡해진다. 참기름병을 다시 내려놓는다. 위로도 아래로도 손을 내밀기가 속된 말로 상그럽다. '에이 걍 안주고 안받기가 가장 좋겠구먼.' 마음 한 켠 씁쓸하다. 뉴스에서는 1억을 호가하는 어디어디산 와인 선물세트를 들여놨다며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어서도 받아서도 안되는 선물세트만 잔뜩 보여준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 명절에는 기름병 하나 나누는 게 그렇게 좋다. 집집마다 분주한 명절 장보기도 좋고 아파트 꼭닫힌 전자도어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기름 냄새도 좋다. 차례를 지내지는 않아도 꼭 나물 몇가지와 전을 한다. 먹을 사람은 빼빼 말라 입이 마른 남편 하나인데도 말이다.
그나저나 올해 추석은 너무 덥다.
(협찬 받은 거 아닙니다. 내돈내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