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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ipark Nov 02. 2023

까페 카라멜로

가진 것에 감사하기


예전에 몽클레르 회계감사를 간 적이 있다. 그곳 탕비실에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네스프레소 기계가 있었다. 눈 발이 날리던 계절인 터라 커피도 그냥 캡슐로 먹었는데, 그중에는 바로 이 까페 카라멜로가 있었다. 아메리카노인데 카라멜향이 물씬 났다. 내가 좋아하는 향을 즐기는데 칼로리가 0이라니, 그때부터 네스프레소 머신을 집에 꼭 두기로 했다. 잠을 2-3시간 자던 시절이라 하루에 6잔씩 마셨다. 마지막 날에는 다시 못 먹는 게 아쉬워서 억지로 더 마시기도 했다. 내 마음속에서 까페 카라멜로는 언제나 완벽한 커피였다.


그 후로 이상하게도 돈을 꽤 벌면서도, 여전히 대학생 시절처럼 좀스러운 나는, 정작 십수만 원이면 사는 이 커피머신의 비용 대비 효익에 대해 5년을 넘는 기간을 검토하게 된다. 커피라면 집 앞 스타벅스에 가는 편이 운동도 되고, 카페인이라면 에너지드링크를 사두는 게 낫다는(?) 결론으로 결국 나는 까페 카라멜로에 대한 집착과 이별을 하게 된다.


최근에 합류한 회사에는 몽클레르보다 6배는 큰 대형 기업용 네스프레소머신이 있다. 합류 초반 “여기에는 카라멜로가 없네요. 그거 맛있는데”라는 나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이제 까페 카라멜로가 라인업으로 들어왔다.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향과 맛인데 손이 자주 가지 않는다. 떠나고 나야지만 소중한 것을 깨닫는 일을 이 나이가 되도록 매일 느끼고 매일 후회한다.


오늘 잘 안 먹던 까페 카라멜로를 사랑하기로 했다. 절대로, 절대로 두 번 다시는 용서하지 않기로 굳고- 굳고- 굳게 다짐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했다. 오래된 옷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오늘은 엄마에게도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가진 것을 사랑하고, 떠난 것도 사랑하며, 타인에게 친절할 것,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친절할 것. 말은 최대한 아끼되, 진심으로 다정할 것. 수년 전  겨울 마신 까페 카라멜로가 문득 주는 찰나의 교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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