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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끝이 아님을.

by 아생

두어 시간 집중호우로 경기북부권은 삽시간에 도로와 3호선 역사가 침수되고 집으로 가는 길목마다 차단되고 어찌어찌 돌아서 귀가했으나 다음날 집을 나서려니 자동차 배터리는 방전됐는데 긴급 출동한 차량이 마을에 진입을 하지 못해 난감했던 한 주였다.


그리고 87세 엄마가 다니는 노인주간보호센터 알림 밴드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마음이 셀렌 한주이기도 . 엄마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진인데 거의 1년 만에 보는 모습이다.


엄마의 마이크 사랑은 각별하다.

추억 놀이가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해서 형제들 앨범에서 모은 엄마 사진이 백여 장, 그중에 엄마가 마이크 잡고 있는 사진이 십 여장이나 될 정도니까. 노래 한가닥 뽑을 수 있는 자리면 엄마는 빠지지 않고 나섰던 거다. 자식 넷 누구도 물려받지 못한 재주인데 구십 가까운 나이에도 마이크 사랑은 주변에 미움을 살 정도다.

노인주간보호센터 노래교실에서 몇 소절씩 마이크를 돌려가며 부르는데 엄마 순번에 와서는 요지부동이라는 거. 그러니 요양보호사가 옆에 어르신에게 마이크를 넘겨야 하니 달라하면 그때부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지. 이런 소동을 몇 번 겪더니 엄마가 한 소절 부르면서부터 고함치고 욕을 해대 마이크를 뺏지 못하게 했다는 거다. 그러니 어쩌겠나. 애당초 마이크를 주지 않을밖에.


노래하는 걸 멀리서 지켜만 보다가 1년 만에 돌아온 마이크를 잡은 엄마의 상기된 얼굴은 3년 전 대퇴부 골절 수술 후 6개월 만에 혼자 워커를 잡고 걷던 엄마의 모습을, 코로나 시절 외부인 접근제한 표시로 입원병동 입구에 빨갛게 칠해져 있던 경계선 너머로 건네다 보며 울음을 삼켰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무릎을 곧추세웠고, 치매가 폭력적인 성향이 우세한 쪽으로 진행 되고 있지만 순번을 기다리는 인내와 내손에서 마이크를 순순히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있음을 엄마는 받아들였다. 뇌기능 저하로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사진 속 엄마의 표정에선 과거의 영광을 찾은 듯 뿌듯함으로 충만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언뜻 미국의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고. 끝이 끝이 아님을, 섣불리 내가 끝이라고 한계 지었을 뿐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무엇에 삶의 가치를 두었든 그것이 상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다 주저앉는 순간,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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