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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강제(?) 조퇴

by 아생


“안녕하세요. 지금 어르신께서...” 엄마가 다니는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엄마의 괴성이 백그라운드로 깔려있는 걸 보니 조퇴 싸인입니다. 이날도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서 목청을 다해 어르신들을 불안하게 하고 직원들의 접근을 막으며 악담을 퍼붓고 있었을 겝니다.

20분 거리에 있는 센터로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시동을 끄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괴성이 귀를 찌릅니다.

행패 부리는 엄마를 세 명의 직원이 둘러싸고 여섯 눈동자가 투명유리 현관문 밖을 내다보며 보호자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상황을 떠올리니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슬몃 웃음이 납니다.

막무가내인 엄마가 악동 같아서.


두 팔 벌려 “엄마”하고 달려가니 오만상을 쓰고 있던 엄마 얼굴에 웃음이 배어나옵니다. 직원들이 안도의 숨을 쉬고, 엄마를 차에 태웠습니다. 이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면 될 터, “매번 죄송한데 전화를 안 드릴 수 없어요. 그래도 따님을 보면 진정되시니까. 한동안 잠잠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봐요.”라는 직원의 말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늘 대기 상태니 문제 생기면 편하게 전화 주세요”라 말하는 중에도 엄마의 악다구니는 센터 주차장에 당당히 울려 퍼집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엄마의 어깨는 굳어있고 이마에 핏줄이 돋아나고 어금니로는 분노를 씹어 뱉고야 맙니다. 오른손을 뻗어 한껏 경직돼 있는 엄마의 손에 살포시 얹어봅니다. 대번에 뿌리치더니 제게도 욕을 퍼붓습니다. 다시 말 없이 운전에 집중합니다. 엄마의 악다구니는 대충 ‘가만히 안 두겠어 내가 참을 줄 알아? 분이 안 풀려 안 풀려어어~’식으로 목청껏 높은 톤으로 계속되는 사이사이 눈에 보이는 대로 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습니다. 아이가 동화책을 읽듯이 차분하게 또박또박.

이를테면 가만히 안 두겠↗ oo주유소. 분이 안풀↗oo요양원. 마음에 있는 말도 해야겠고 차창밖으로 빠르게 스치는 글씨도 읽어야겠고 나름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욕과 간판 읽기를 대여섯 번 반복하고 나더니 창밖을 응시합니다. 격양된 톤 사이에 읽었던 차분한 간판읽기가 감정에 거리를 두는 효과가 있었나봅니다.


기대하고 묻습니다. “엄마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여전히 고함치듯 올라가는 톤으로 길게 답합니다. “그래에~.”


그게 뭐냐고 물으니 그냥 화가 난다고 합니다. 누가 화나게 했냐 자세히 말해보라 재차 묻고 오빠가 가서 혼내주라고 할까 하면 절대 말하지 말랍니다. 일하는 사람 오라 가라 하면 안 된다고, 당신이 해결하겠다고. 여전히 씩씩 대며 간간이 말을 잇습니다.


집에 도착하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 기분이 어때?”

시간이 약이었던 걸까요? “좋아 좋아.”라고 답합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심리학 교수인 카토 신지는 ‘치매와 마주하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치매에 걸리면 감정적으로 되기 쉽다고 하지만 특히 잘못된 언동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을 때 주위사람이 이 행동에 대해 설득, 명령, 질책등을 하면 감정이 자극되어 공격적인 행동이나 흥분상태를 유발하기 쉽다.”라고.


그런데 엄마는 설득, 명령, 질책은커녕 눈빛만 곱지 않게 스쳐도 버럭 하는 날이 늘어가니 센터에서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공감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 해결할 힘을 얻는다 하니 당신이 옳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바라볼 밖에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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