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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Oct 05. 2023

치매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짓궂은 하루(17)

치매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명절에 맛보는 유쾌, 통쾌, 상쾌


강력반 형사인 제부가 처가 나들이를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5년 만에 찾아왔다, 새까만 얼굴에 배불뚝이가 돼서. 언뜻 보면 덩치 큰 조폭이다. 오빠네는 아버지 산소에 다니러 갔는데 차가 막히는지 예상보다 늦게 돌아온다 한다. 구원군 없이 엄마와 내가 몇 년 만에 보는 제부와 데면데면하고 있으려니 오랜만에 찾아온 제부에게 불편한 마음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듯도 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앉아있는 동생을 봐서라도 뭔가 할 요량으로 승진 축하를 마구 해 주었다. 과하게 웃고 눈도 동그랗게 뜨고. 잘은 모르겠으나 고졸에 말단 경찰에서 시작한 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라는 것만 귓등으로 들은 바 있어 반복해서 폭풍 축하를 하던 중이었다.      

동생은 명절 가족모임에 아들 둘과 또는 혼자 와서 너스레를 떨었는데, 오랜만에 제부와 함께 와서인지 동생도 어색하게 앉아 있기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속 승진을 한 제부가 가정에 어지간히 소홀히 한 데다 집에서도 취조실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니 미움과 원망이 가득할 테지만 제부 앞에서는 말투나 태도가 영락없는 현모양처다. 자매들끼리 앉아 제부 흉을 보다가도 제부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세상 달라져서 “지금 이 순간 친정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당신의 배려 덕분이에요”라며 따뜻한 말을 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면 돌변해서 “저번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를 신호탄으로 그동안에 일을 마구 쏟아냈다. 어이없는 일이라며 입을 삐죽이며 시작한 말은 함께 웃고 맞장구치면서 지나간 일이 돼버렸다. 동생은 그렇게 흘려보낸 만큼 숨통이 트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이런 집이 있다. 동생네는 명절 음식을 과하게 하는 시댁 덕에 녹두는 직접 갈아 치자물들여 넉넉히 부치고, 고추 속에 고기 다져 넣은 고추전, 깻잎에 고기 붙여 깻잎 전, 배추, 열무 뽑아 김치 담그고, 쌀 빻아 송편 빚는 등 논밭에서 손수 기른 농작물로 공정이 까다로운 음식들을 며칠 걸려 마련한다. 또, 줄지어 오는 손님들을 위한 상차림, 상물림, 음식 들려 손님 배웅하기 등 연휴가 짧은 해에도 일주일은 꼬박 시댁에서 이런 일들을 한다, 동생 혼자서.

재수학원에서 만난 제부와 27살에 결혼을 했으니 시부모 눈에는 어리숙한 학생의 모습으로 보였는지 사사건건 잘하니 못하니 타박을 받으며 명절 연휴를 보내는 게 동생의 일상이다. 3년 전에 아랫동서가 들어왔는데 베트남에서 온 갓 24살.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주방 일에서 제외되었고 게다가 동서가 하는 건 모두 잘한 일이고 예쁘다고 한단다. 동생이 받아보지 못한 귀한 대접을 받는 동서가 부럽기도 하지만 딸벌되는 동서가 딱히 밉지는 않은데, 시부모가 대놓고 편애하는 건 참기 힘들고 서운하다고 우리에게 자주 내비쳤다. 막내로 귀염만 받고 살았는데 결혼해서 밖으로만 도는 제부, 그 이유를 동생 탓이라 타박하는 시부모 등쌀에 우울증 약을 10년 넘게 달고 사는 동생이다.

시집가서부터 바람 잘 날 없었는데 이제는 동서와 비교까지 당하니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동생에게 엄마는  “네가 참아라 어쩌겠냐 자식들 생각해서 참고 살아야지”만을 한결같이 되풀이했다. 20년 넘게 동생이 들어온 말이다. 그러니 엄마는 내편 한번 안 들어주고 맨날 참으라 하냐고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이번엔 달랐다.     

한참을 승진 축하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는데 엄마가 불쑥

“그러느라고 마누라를 내팽개쳐놓고 다녔구먼, 혼자 승진하려고.” 

사위 어려운 줄만 알던 엄마 입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지청구에 제부는 표정이 굳었고 동생과 나는 순간 놀란 눈을 마주치고는 더한 말을 쏟아내려는 엄마를 말릴 겸 화제를 돌렸다. “동서가 아기를 낳는데 이름이 일용이래. 이름 재밌지”하는 순간 또 한 번 엄마 입에서 터진 말

“그래도 맏며느리를 천대하면 안 되지 어린 며느리가 아무리 예뻐도”

동생과 나는 동시에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제부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우리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도 사위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구나. 마음 고생하는 막내딸을 많이 애달파하셨구나를 느끼며 말이다. 이번에는 막내가 치매 엄마에게 위로를 받는 순간이다. 엄마는 치매가 걸리기 전, 얼마나 많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었던 걸까? 엄마가 하고 싶었던, 꼭꼭 동여매두었던 감정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날이었다.

엄마는 산소에서 돌아온 오빠에게 ‘사위한테 그런 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엄마 편을 들었다. 사이다 팩폭이라고.



사진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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