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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06. 2023

한국 컨설팅의 역사

글로벌 컨설팅 역사의 압축판

# 글로벌과 한국의 컨설팅 역사


제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글로벌 컨설팅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를 서술하기 어려운 역량 부족의 문제가 첫 번째였고, 글로벌 컨설팅사 대비 우리나라 컨설팅사에 대한 문헌이 너무 적다는 자료 부족의 문제가 두 번째였습니다. 비교적 잘 정리가 되어 있는 해외 컨설팅의 역사와는 달리,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미완의 숙제입니다.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개정판을 내면서 포함시킬지, 별도의 책으로 다룰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언젠가는 집필할 생각입니다. 이번 글에서 한국 경영 컨설팅의 역사를 큰 틀에서 정리해 보고, 차츰 세부적인 사항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초안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를 다룬 연구물이 없어서 학문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는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가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서 태동기, 발아기, 확산기, 안정기의 4개의 시기를 거치며 성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시대는 해당 시기에 등장하거나 주도하던 컨설팅사가 어디였는가를 기준으로 구분하였습니다.


# 한국 컨설팅의 태동기  (1950~1960년대)


첫 번째는 태동기로서 1950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기간입니다. 경영 컨설팅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최초의 컨설팅사가 설립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컨설팅사는 1957년에 설립된 한국생산성본부(KPC), 1962년에 설립된 한국표준협회(KSA)와 한국능률협회(KMA)입니다. 사명에 포함된 키워드인 '생산성', '표준', '능률'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테일러의 후예들입니다. 글로벌 컨설팅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컨설팅사인 효율성 엔지니어링 컨설팅이 한국에 수입된 경우입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1968년 9월 1일 국내에서 처음 개최한 '제1회 국제사무기계화촉진전시회'


미국에서 시작된 효율성 엔지니어링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에 재건과 산업부흥이 필요했던 우리나라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한국 1세대 컨설팅사들은 1960년대까지 업무 생산성 향상에 분명히 기여를 했고, 지금까지도 법인이 남아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컨설팅 시장에서 이들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현시점에서 영향력 있는 컨설팅사는 1970년대부터 등장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 한국 컨설팅의 발아기  (1970~1980년대)


두 번째는 발아기로서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기간입니다. 외국계 회계법인이 한국에 진출했고, 회계감사와 더불어서 경영컨설팅 업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부터 외국 은행의 한국 지점 설립을 허용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 외국 은행이 들어온 것은 1967년 이후로서 체이스맨해튼 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 스탠더드 차타드 은행 등이 지점을 개설합니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들 외국계 은행은 외화가 필요한 국내 기업과 은행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중요한 창구였습니다.


외국계 은행의 회계처리를 위해서 글로벌 회계법인의 한국 진출이 허용되었고 Big 4를 중심으로 해외 회계법인이 한국에 진출합니다. EY의 전신인 아더영이 1967년에 서울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로 모든 Big 4가 한국 시장에 진출합니다. 1969년에는 KPMG의 전신인 PMM이 서울 사무소를 개설했고, 1971년에는 PWC의 전신인 쿠퍼스 앤드 라이브랜드가 라이부란 회계법인을 설립했으며, 1975년에는 딜로이트가 안권회계사무소와 제휴해서 한국에 진출합니다.


이들 Big 4는 초창기에는 회계감사에 치중했지만 차츰 회사 설립, 인수합병, 세무처리 등 경영 자문업무의 비중을 늘려나갑니다.


# 한국 컨설팅의 확산기 (1990~2000년대)

 

세 번째는 확산기로서 1990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기간입니다. 외국계 전략 컨설팅사가 한국에 진출하며 일반 대중들도 경영 컨설팅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IT자회사와 컨설팅사가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전략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1987년에 처음으로 한국 기업 대상의 컨설팅을 시작합니다. 맥킨지 도쿄사무소가 LG그룹에게 경영 컨설팅을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1991년에는 26명 규모의 서울 사무소를 개설합니다. 베인 앤드 컴퍼니도 1991년에 국제무역경영연구원과 제휴하여 서울에 사무소를 개설했으며 보스턴 컨설팅그룹도 1994년에 한국지사를 설립합니다.


머서 1991년, 모니터그룹 1993년, 아더 디 리틀 1994년, 왓슨와이어트 1994년, 에이티커니 1995년, 부즈 알랜 해밀턴 1996년, IBM Global Service 1997년 등 현재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외국계 컨설팅사가 이 시기에 한국에 진출합니다.


1990년대의 금융 시장 개방,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들 외국계 컨설팅사는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각종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외국계 컨설팅사가 참여하면서 권위와 규모를 확보할 수 있었기에 우리 국민들에게는 뼈아픈 역사였지만 이들 외국계 컨설팅사에게는 호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진출한 맥킨지, BCG, 베인 앤드 컴퍼니 등의 외국계 전략 컨설팅사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실제 컨설팅 사업의 규모로 따지면 이들보다 먼저 한국 시장에 진출한 Big 4 회계법인의 컨설팅 사업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eBusiness, ERP, SCM 등이 유행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시스템 구축에 나섰는데, Big 4 회계법인은 시스템 구축을 위한 프로세스 및 시스템 설계로 막대한 매출을 일으킵니다.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PWC컨설팅은 400명이 넘는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한창 잘나가던 Big 4는 엔론 사태 이후 된서리를 맞았는데, 이는 국내의 Big 4에도 영향을 미쳐서 PWC컨설팅이 IBM GBS에 매각되는 등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세가 다소 꺽이게 됩니다. 


이 시기에 또 하나 눈여겨볼 흐름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IT컨설팅사의 등장입니다. 대기업이 설립한 IT자회사는 규모를 키우며 IT컨설팅을 강화했는데 오픈타이드, 엔트루 컨설팅, 발텍컨설팅 등이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1985년에 설립된 삼성데이터시스템은 1997년에 삼성SDS로 사명을 변경했고, 2000년에 컨설팅 자회사인 오픈타이드를 설립합니다. 1987년에 EDS와 합작법인으로 출범한 LG EDS는 1991년에 엔트루 컨설팅을 설립하고 2001년에는 EDS 지분을 전량 매입하며 LG CNS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1998년에 출범한 SK C&C는 2004년에 발텍컨설팅과 조인트벤처 형식으로 컨설팅사인 발텍컨설팅코리아를 설립합니다.


대기업 계열 IT자회사의 컨설팅 사업 강화는 재벌의 후계 구도 작업을 위한 자금 마련이라는 다소 어두운 측면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룹사에서 폭증했던 컨설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있었습니다.


# 한국 컨설팅의 안정기 (2010년대 ~ 현재)


네 번째는 안정기로서 201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입니다. 세 번째 확산기를 거치며 대부분 틀을 잡은 컨설팅사들이 모바일을 비롯한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00년 엔론사태 이후 컨설팅과 거리를 두던 Big 4는 2010년대 중반부터 노골적으로 컨설팅 조직을 확대하며 컨설팅 시장에 복귀합니다. 객관적인 통계 자료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현재로서는 컨설팅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들 Big 4의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외국계 전략 컨설팅사도 전통적으로 하던 사업 전략보다 한단계 내려와서 프로세스 개선이나 시스템 설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사업전략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계열 IT컨설팅사는 다소 약화된 모습으로 대외 컨설팅보다는 내부 컨설팅에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오히려 IT자회사가 내부에 컨설턴트를 확보해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방식의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컨설팅사는 없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컨설팅사의 한국 철수는 있었습니다. 2017년의 액센추어 코리아, 2020년의 올리버 와이만 한국 지사, 2022년의 LEK 컨설팅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컨설팅 산업을 포함한 한국 경제 전반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과거만큼 빠르지 않기 때문에 컨설팅사 간의 경쟁도 양적 성장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 확보로 바뀌었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장 점유율도 확보하지 못한 컨설팅사는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물론 액센추어 코리아의 사례는 다른 복잡한 사정도 있습니다만 전반적인 흐름은 그러합니다.


# 글을 마무리하며...


개략적으로 훑어본 우리나라 컨설팅의 역사는 글로벌 컨설팅 역사의 축소판입니다. 다만 우리나라 컨설팅의 시작이 늦었으며 빠르게 성장해 왔기에 130여 년에 달하는 글로벌 컨설팅의 역사를 압축한 모양새입니다. 혹시 경영 컨설팅의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아래에 구독과 구매가 가능한 사이트 링크를 달아두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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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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