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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Jan 03. 2024

HR 컨설팅 업계의 복잡한 재편 과정

작지만 유서 깊은 HR 컨설팅의 역사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를 쓰며 자세히 다루지 않은 분야가 있습니다. HR, 마케팅, 구조조정이 대표적입니다. 세 분야의 공통점이라면 MBB와 Big4의 지배력이 '그나마' 약해서 해당 분야에 특화된 전문 컨설팅사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다는 점과 전통적인 컨설팅과 프로페셔널 서비스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 컨설팅이 발전해 온 전반적인 흐름에서 약간 빗겨 난 감이 있어서 다루지 않았는데 이번 글에서 HR 분야의 컨설팅 역사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흔히 컨설팅사를 전략, 오퍼레이션, IT로 구분합니다. 과거부터 맥킨지, BCG, 베인, 롤랜드버거, LEK 등을 묶어서 전략 컨설팅사라고 하고, 딜로이트, PWC, KPMG, EY 등을 뭉뚱그려서 오퍼레이션 컨설팅사라고 하며, 액센추어, IBM 등을 묶어서 IT컨설팅사라고 해왔습니다.

다만 이 구분법이 현재에도 유효한지는 의문입니다.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적었듯이 2000년대 이후 크로스 오버가 트렌드이기에 전략 컨설팅사가 오퍼레이션을, 오퍼레이션 컨설팅사가 전략과 IT를, IT컨설팅사가 전략과 오퍼레이션으로 영역을 확대해서 별도의 영역 구분이 큰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출신 성분을 기준으로 나누기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현재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컨설팅사를 분류하는 또 다른 기준은 업무입니다. 기업의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마케팅, 물류, 생산, 세일즈, HR, 경영관리 등의 단위 업무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여러 업무 중 직원을 처음 고용해서 배치하고 운영하며, 마지막에는 퇴직 처리까지 하는  HR 업무에 대한 컨설팅의 역사는 가장 오래된 영역 중의 하나로 경영컨설팅의 시작과 같이했습니다.


유서깊은 HR 컨설팅의 다양한 영역


# HR 컨설팅의 출현과 확대


저는 경영컨설팅의 시작을 1900년대 초반에 등장한 공장장의 생산성 관리를 위한 과학적 관리법으로 봅니다. 과학적 관리법은 작업자의 주관적인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분석해서 개선하는 방법론입니다. 과학적 관리법을 적용해도 결국 일은 작업자가 하는지라 작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장치인 '실적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성과급'이 과학적 관리법의 필수 요소이기에 성과급을 포함한 보상제도 설계, 작업자의 근태관리, 생산성 개선을 위한 직원훈련 등이 초기 HR컨설팅의 주요 영역이었습니다.


1900년대 중반부터 기업의 규모와 사업 분야가 커지면서 공장장의 자리를 전문 경영자가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영자 선발, 성과관리, 인센티브 지급 등으로 HR 컨설팅의 영역이 확대됩니다. 이 무렵에 설립된 부즈앨런해밀턴, 맥킨지 등의 컨설팅사도 경영자 헤드헌팅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았습니다.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전투적인 노사 분규가 끊이지 않으며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법제도가 강화되었고, 노무관리, 복리후생, 퇴직금 등이 HR 컨설팅의 영역으로 편입됩니다.

복리후생, 퇴직금은 제도 설계에 그치지 않고 실행으로 이어져야 하기에 이들 HR 컨설팅사는 복리후생을 위한 보험 가입, 퇴직금 펀드 운용 등 프로페셔널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합니다. 왓슨와이어트, 타워스페린, 헤이그룹, 휴잇 어쏘시에이트, 머서 등 HR에 특화된 컨설팅사가 전통적인 자문뿐만 아니라 보험설계/판매, 복리후생 서비스 등도 함께해 온 이유입니다.


1990년대부터 IT컨설팅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HR 컨설팅의 영역도 확대됩니다. 기존에 제공하던 HR제도 설계, 복리후생 서비스에 덧붙여서 HR 시스템 설계, 구축 등 HR을 위한 IT솔루션 서비스 시장이 더욱 커집니다. 다만 HR 솔루션 시장에서는 HR특화 컨설팅사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듯합니다. IT컨설팅에서 영향력이 큰 Big4나 IT서비스회사가 HR솔루션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습니다.


# HR 컨설팅 5인방


HR컨설팅에서 전통적으로 손꼽혀온 브랜드는 5개입니다. 1940년대 전후에 설립된 왓슨와이어트, 타워스페린, 헤이그룹, 휴잇 어쏘시에이트, 머서는 2010년대까지 HR컨설팅의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다만 2010년대에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으로 이합집산이 일어납니다. 왓슨와이어트와 타워스페린이 합쳐져서 윌리스타워스왓슨이 되었으며 헤이그룹과 휴잇 어쏘시에이트는 각각 콘페리, 에이온에 합병됩니다.


# 윌리스타워스왓슨 = 왓슨 와이어트 + 타워스페린 + 윌리스


1878년에 설립된 왓슨(R. Watson & Sons)과 1943년에 설립된 와이어트(The Wyatt Company)는 1995년에 제휴를 맺고 왓슨 와이어트 월드와이드(Watson Wyatt Worldwide)라는 브랜드를 시장에 선보입니다. 제휴 이후에 미국에서는 왓슨 와이어트 컴퍼니(Watson Wyatt & Company), 영국에서는 왓슨 와이어트 유한회사(Watson Wyatt LLP)로 운영하다가 2005년에 두 법인이 합병을 합니다. 합병 법인명은 브랜드와 동일하게 왓슨 와이어트 월드와이드(Watson Wyatt Worldwide)를 사용했습니다.


1934년에 설립된 타워스 페린 포스터 앤드 크로스비(Towers, Perrin, Forster & Crosby)는 처음에는 재보험과 생명 사업부를 운영하다가 연금, 재보험 중개 및 직원 복리후생 제도로 전문 영역을 확대합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의료, 보상, 조직 컨설팅으로 서비스를 확장했으며, 1987년에 사명을 타워스 페린(Towers Perin)으로 변경합니다.


2010년에 왓슨 와이어트와 타워스 페린이 합병해서 타워스 왓슨이 되었고, 2016년에는 세계 3위 보험중개업자인 윌리스와도 합병하여 사명을 윌리스 타워스 왓슨(Willis Towers Watson)이 출범합니다. 합병 당시 양사의 매출액은 유사한 수준으로 윌리스 3.8조 달러, 타워스 왓슨 3.6조 달러였습니다.

 

현재 윌리스 타워스 왓슨의 사업 영역은 HR컨설팅과 보험중개의 2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HR컨설팅에 해당하는 건강/재무/커리어(Health/Wealth/Career)에서 5.3조 달러, 보험중개에 해당하는 리스크/중개(Risk/Broking)에서 3.5조 달러를 벌어들여서 2022년 매출액은 8.9조 달러에 달합니다.


# 헤이그룹을 인수한 콘페리


1943년에 설립된 헤이그룹( Hay group)은 HR 컨설팅 영역을 개척한 회사로 평가됩니다. 헤이그룹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의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던 시기에 가장 먼저 ‘직무(Job)’와 '직무평가'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습니다. 헤이그룹의 창업주인 에드워드 헤이는 직무 가치에 따라 평가를 하고 또 그에 맞춰 보상하는 직무평가방법(Job Evaluation)을 만들어 냈는데, 이 평가 방법은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과를 이끄는 원천으로 강조되던 ‘역량’이란 개념도 가장 선도적으로 1960년대부터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탤런트 관리(Talent Management)'라는 개념도 헤이그룹이 1970년대에 고안해 낸 것으로,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일을 해야 성과가 나온다는 걸 전제로 누가 어떤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관리하는 체계를 정립했습니다.


1969년에 설립된 콘페리(Korn Ferry)는 ‘이그제큐티브 서치 펌(Executive Search Firm)’으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이그제큐티브 서치 펌은 흔히 '헤드헌팅'이라는 용어로 알려진 비즈니스로 기업에서 원하는 CEO나 고위 임원을 선발해 소개하는 사업입니다.


한때는 고수익과 고성장을 누리던 헤드헌팅 시장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성장이 정체되자 콘페리는 사업 다각화를 꾀하며 2006년부터 HR, 조직문화, 리더십 컨설팅 회사들을 인수합니다. 결국 2015년에 헤이그룹 인수에 성공하며 단숨에 HR 컨설팅 분야에서 입지를 다집니다. HR컨설팅에서의 인지도는 헤이그룹이 압도적이었지만 사업 규모는 콘페리가 훨씬 컸습니다. 헤이그룹을 인수할 당시 콘페리의 매출액은 1조 달러를 넘으며 헤이그룹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 휴잇 어쏘시에이트를 인수한 에이온


휴잇 어쏘시에이트(Hewitt associates)는 1940년에 설립된 HR 컨설팅사로 120여 개 국가의 500여 사무소에서 컨설팅, 아웃소싱, 보험 중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무렵까지는 보험 설계와 개인 금융 서비스를 주력 사업으로 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며 기업 대상의 연금 설계와 복리후생 서비스 제공으로 확대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컴퓨터 도입에 맞춰서 복리후생 프로그램 설계와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하여 1990년에는 2억 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복리후생 관리 및 컨설팅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2001년이 되자 기업 공개를 발표하고 2002년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습니다.


2010년 7월 12일, 시카고에 본사를 둔 보험 중개사인 에이온(Aon Corp.)은 현금과 주식을 합쳐서 49억 달러에 휴잇 어쏘시에이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합병 초기에는 에이온 휴잇이라는 브랜드를 쓰기도 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에이온으로 단일화된 것 같습니다.


에이온은 세계 2위의 재보험 중개회사입니다. 위험관리 서비스, 원보험과 재보험 중개업, HR 컨설팅, 특종 보험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컨설팅보다는 보험 중개의 매출 비중이 큰 회사인데 휴잇을 인수한 이유는 콘페리와 같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에이온은 2020년에 윌리스 타워스 왓슨도 인수할 뻔했습니다. 에이온과 윌리스 타워스 왓슨이 모두 합병에 동의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면 단숨에 업계 1위로 뛰어올랐을 파격적인 빅딜이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 컸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우려한 독과점 문제를 제기한 미국 법무부의 반대를 넘지 못했고 결국 합병은 무산되었습니다.


# 한국의 HR컨설팅


앞서 살펴본 왓슨와이어트, 타워스페린, 헤이그룹, 휴잇 어쏘시에이트, 머서는 모두 한국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글로벌 인수합병 전에 한국에 진출해서 사업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법인명은 합병에 맞춰서 변경되었습니다.


다만 HR 컨설팅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기에 컨설팅 바닥에서도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와 달리 단일 영역만 하는 컨설팅은 점차 줄어들고, 여러 영역을 묶어서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HR에 특화된 이들의 경쟁력이 과거만큼 통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구나 가격 경쟁력이 높은 소규모 부띠크 HR컨설팅사와 프리랜서 컨설턴트가 상당히 많이 활동하기에 HR컨설팅 시장의 단가는 글로벌 컨설팅사가 수익성을 맞추기에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고객사에게는 이들의 브랜드가 여전히 매력적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은행, 보험사 등의 금융권과 통신사 등 대기업의 HR컨설팅 프로젝트에서 여전히 이들의 이름을 꾸준히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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