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컨 Feb 20. 2024

경영 컨설팅 회사, 나잘난 파트너의 고민은?

No project or Any project?

# 나잘난 파트너의 고민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10명의 컨설턴트를 거느리고 있는 나잘난 파트너가 있습니다. 나잘난 파트너의 회사는 5월에 회계 마감을 하는데, 나잘난 파트너가 세운 올해의 매출 목표인 30억 원에서 5억 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5월까지 3개월여 남았지만 당장 계약할 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마음이 급합니다. 지난달 파트너 미팅에서 '파이프라인이 별로 없어서 걱정된다며 실적 달성이 가능하냐'라고 물어보던 대표 파트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대표 파트너의 질문이 염려가 아니라 경고라는 사실을 나잘난 파트너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조직은 통폐합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지 오래되었습니다. 호기롭게 달성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두었지만, 당장 다음 주의 파트너 미팅에서 마주칠 대표 파트너에게 뭐라고 변명할지 벌써 걱정입니다.


벤치에서 일없이 2개월간 놀고 있는 컨설턴트 4명도 골칫거리입니다. 사무실에서 노느라 반질반질한 얼굴에 광택이 돌 정도던데, 나잘난 파트너의 이런 마음고생을 모르는지 휴가를 가겠다고 해서 짜증이 나던 참입니다. 옆 팀의 더잘난 파트너도 나잘난 파트너의 염장을 지릅니다. 최근 2개의 프로젝트를 연거푸 수주해서 투입할 컨설턴트가 없다며 우리 팀의 컨설턴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자기는 채용도 않으면서 아쉬울 때만 컨설턴트를 가로채가니 얌체가 따로 없습니다. 더잘난 파트너에게 컨설턴트를 빼앗기면 나잘난 파트너의 올해 목표 달성은 완전히 물 건너갑니다. 남 좋은 일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필코 5억짜리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더잘난 파트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다짐합니다.


나잘난 파트너는 핸드폰을 열어서 5억짜리 프로젝트를 점지해 줄 고객을 찾아봅니다. 어제 통화했던 왕가난 부장은 확실히 아닙니다. 무려 한 시간 동안 '당장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만 예산이 1억 원 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습니다. 왕가난 부장의 하소연이 1억 원으로 프로젝트를 해줄 수 없냐는 부탁임을 나잘난 파트너는 잘 알기에 듣기만 했습니다. 그저께 통화했던 왕얌체 상무도 가망이 없습니다. 제안서를 받은 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 결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회사에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무슨 일인지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승인을 받지 못했거나 프로젝트를 할 마음도 없으면서 제안서를 요청한 것이 분명합니다. 제안서를 급히 요청한 고객치고 프로젝트도 급하게 하는 경우를 나잘난 파트너는 보지 못했습니다.


# 순악질 전무의 유혹


나잘난 파트너가 낙담하며 핸드폰을 넣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순악질 전무의 전화입니다. 작년에 나잘난 파트너의 골치를 썩이던 트러블 프로젝트를 발주한 고객사 임원입니다. 3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지연시켜서 6개월짜리로 변신시킨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 장본인입니다. 순악질 전무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까탈스러운 지적질 때문에 프로젝트 기간은 갑절로 증가했고, 야근과 갑질에 시달린 컨설턴트들이 뛰쳐나가는 통에 현재 회사에 남아 있는 프로젝트 팀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나잘난 파트너도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순악질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느라고 작년에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컨설팅 경력 20년으로 산전수전 겪어본 나잘난 파트너도 혀를 내두르게 한 악질 고객의 최고봉입니다.


평소의 나잘난 파트너라면 무시할 전화입니다만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전화를 받습니다. 순악질 전무는 그동안 잘 지냈냐는 빈말과 함께 그동안 연락을 안 해서 서운하다고 책망을 합니다. 나잘난 파트너는 ‘네가 나 같으면 연락하겠냐’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며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며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순악질 전무는 자신이 영업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자랑을 한껏 늘어놓습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무찌르고 승진을 거머쥔 순악질의 자랑질과 모험담에 질린 나잘난 파트너가 없는 회의를 만들어 내려는 찰나였습니다. 순악질 부사장은 거만한 목소리로 프로젝트를 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예산이 마침 5억 원이라는 소리에 놀란 나잘난 파트너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습니다.


순악질 전무와 장시간에 걸친 통화를 마친 나잘난 파트너의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이 계약 한건이면 올해 매출 타깃은 충분히 달성합니다. 타깃 달성으로 두둑해질 인센티브는 생각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실적 달성을 쪼아대는 대표 파트너로부터도 해방됩니다. 사무실에서 놀며 기강이 해이해진 컨설턴트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에 수주했다고 우쭐대는 더잘난 파트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다니 짜릿합니다. 솔드 아웃이라서 아쉽지만 가용한 컨설턴트가 없다고 근엄하게 거절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순악질 부사장이 하려는 프로젝트는 만만치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게 아니라 말이 안 됩니다. 난이도와 범위를 고려하면 5억이 아니라 10억 원의 예산으로도 부족한 프로젝트입니다. 정상적인 예산의 절반으로 일을 시키겠다니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습니다. 순악질은 "나잘난 파트너라서 내가 특별히 프로젝트를 맡기는 거다"라며 으스댔지만 보나 마나 하겠다는 컨설팅 회사가 없어서 자신에게 연락한 것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업그레이드한 순악질이 주관합니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에 처음 하는 프로젝트라니 순악질이 어떤 놀라운 지옥도를 펼쳐 보일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건은 트러블 프로젝트 각입니다. 맥킨지 할아버지가 프로젝트를 해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 No project or Any project ?


앞서 늘어 놓은 이야기는 가상의 사례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잘난 파트너, 순악질 부사장도 완전히 가공의 인물입니다. 글을 읽으시면서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입니다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극단적인 상황과 인물을 상상해서 만들어 냈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은 꽤나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잘난 파트너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어쩌면 운이 좋아서 염려했던 트러블이 안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해서 프로젝트를 마다한다면 회사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이건 수주를 해야 매출이 발생하고, 매출이 발생해야 회사가 유지됩니다. 회사가 유지되어야 새로운 컨설턴트도 뽑고, 규모도 늘릴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없으면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니 가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설령 나쁜 프로젝트라도 프로젝트가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염려했던 트러블이 현실로 발생하면 재앙입니다. 당장의 매출에 눈이 멀어서 뻔히 보이는 트러블을 택하는 것은 회사를 말아먹을 수 있는 바보짓입니다. 계획보다 수행 기간이 길어지면 손실이 발생하고, 그 손실 규모는 전체 회사의 이익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질 수 있습니다. 트러블 프로젝트에서 상처 입은 컨설턴트는 높은 확률로 회사를 떠나기 마련입니다. 컨설턴트가 없으면 미래의 프로젝트도 못합니다. 나쁜 프로젝트는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잘 가려서 해야 합니다. 나쁜 프로젝트를 하느니 프로젝트가 없는 편이 낫습니다.


리스크를 각오하고 매출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매출을 포기하고 리스크를 예방하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경영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