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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Jul 02. 2024

컨설턴트 20 여년, 산출물 작성에 힘이 된 7개 도구

경영 컨설턴트의 일은 산출물 작성으로 귀결됩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작성할 분량은 다르지만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컨설턴트는 거북목 자세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장표질에 여념이 없을 겁니다.


혹시 먼 옛날의 경영 컨설턴트는 산출물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해 보셨나요? 경영 컨설팅은 20세기 초반에 시작했으니 PC가 없던 시절입니다. 당시의 문서 작성 도구는 펜 혹은 타자기였습니다. 아마도 컨설턴트가 필기로 적은 문서를 전문 타자수가 타자기로 옮겨 적는 식이 었겠지요. 일부 내용 수정이 필요하면 전체 문서를 다시 타이핑해야 하니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을 겁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니 사본을 만들기 위해서 먹지를 썼겠죠. 그림과 도표가 필요한 경우에는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 했을 겁니다. 보고서를 만들기도, 수정하기도, 배포하기도 불편한 시절에 컨설턴트로 태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지금은 PC로 문서를 작성하니 그 옛날의 불편함에 비할바 아닙니다. 파워포인트로 글, 그림, 도표를 작성해서 출력만 하면 됩니다. 요즘에는 종이 문서를 공유하지 않고 이메일로 주고받으니 출력의 번거로움도 사라졌습니다.


굳이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제가 컨설턴트 생활을 시작한 2000년 무렵과 비교해도 확실히 편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지난 20여 년간 컨설턴트 생활을 하면서 '유레카!'를 외치게 했던 7개 도구를 소개합니다. 순서는 선호도가 아니라 과거부터 최근까지 시간순입니다. 늙은 컨설턴트의 '라떼는 말이야~'일 수도 있지만 재미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 도구 1. 킨코스


2000년대 주니어 컨설턴트의 업무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은 문서 출력과 제본이었습니다. 선배 컨설턴트가 만든 제안서와 산출물을 취합해서 하나의 문서로 만들고, 프린터로 출력해서 제본기로 바인딩하는 업무는 언제나 주니어 컨설턴트의 몫이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문서가 얇으면 성의가 없다고 치부되던 시절이었기에, 다들 경쟁적으로 문서의 분량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주니어 컨설턴트는 두꺼운 문서를 출력해서 바인딩하느라 퇴근을 못하고 새벽까지 회사 출력실에 붙어있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출력해서 깔끔하게 제본하느냐도 주니어 컨설턴트의 실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도 킨코스가 진출합니다. 1995년에 1호점이 개설된 이후 삼성역, 여의도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파일만 전달하면, 깔끔하게 출력해서 제본까지 해주는 신세계가 열린 겁니다. 물론 USB에 파일을 담아서 킨코스에 전달하고, 출력물을 받아서 고객사에 배달하는 일은 여전히 주니어 컨설턴트의 몫이었지만,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을 정도로 편합니다. 비용을 아까워하는 짠돌이 파트너들은 여전히 주니어 컨설턴트의 노동을 요구했지만, 킨코스의 등장은 주니어 컨설턴트에게 복음 같은 일이었습니다.


# 도구 2. 빔 프로젝터


빔 프로젝터가 등장하기 전에는 PT를 어떻게 했을까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빔 프로젝터는 매우 비싼 물건이어서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발표 자료를 OHP 필름에 인쇄해서 오버헤드 프로젝터(OHP)라는 영사기에 한 장씩 올려놓고 설명을 했습니다. 발표자가 직접 OHP 필름을 바꾸기도 하고, 주니어 컨설턴트가 한 명 붙어서 발표자의 지시에 따라서 한 장씩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발표 자료를 OHP 필름으로 옮기는 작업은 몹시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일입니다. 프린터에 종이 대신에 OHP 필름을 넣어서 인쇄해야 했고, 인쇄된 OHP 필름을 한장씩 수거해서 종이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아야 했습니다. OHP 필름은 비닐이라서 서로 달라붙기 때문에 필름 사이에 A4지를 넣어서 분리해야 했습니다. 발표 자료의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필름을 찾아서 다시 인쇄해서 일일이 교체해야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빔 프로젝터가 대중화 되면서 인쇄, 제본과 더불어 주니어 컨설턴트 일거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OHP 필름 제작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 도구 3. 빨콩


빨콩은 IBM 노트북인 씽크패드에 달려 있는 빨간색 트랙포인트의 별명입니다. 처음 컨설턴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지급받았던 노트북은 HP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급받은 노트북이 IBM 씽크패드였고, 빨콩(트랙포인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노트북 자판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빨콩은 마우스를 대체하는 입력 장치입니다. 마우스를 손으로 움직이는 대신, 빨콩을 검지손가락으로 밀거나 당기는 식으로 커서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빨콩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마우스를 추가적으로 휴대할 필요가 없이 노트북만으로도 마우스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동이 잦은 컨설턴트의 업무 패턴 상, 마우스를 별도로 챙기는 일은 번거롭습니다. 요즘과 같이 무선 마우스가 보급된 시절이 아니었기에 기다른 줄을 달고 있는 유선 마우스는 보관하기도, 책상 위에 두고 쓰기도 불편했는데, 빨콩을 사용하면 마우스를 챙기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마우스를 사용하지 않으니 키보드 위에서 손을 뺄 필요 없기에 작업 속도도 빠릅니다.


빨콩의 단점도 분명합니다. 마우스를 쓰던 분이 빨콩을 처음부터 능숙하게 사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작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비교적 초반에 빨콩을 접한 덕분에 지금까지 마우스 없이 빨콩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 사무실에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에도 빨콩만 써서 이기곤  했으니 말이죠. 빨콩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지라 빨콩이 없는 노트북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 도구 4. 구글 검색엔진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구글은 충격이었습니다. 검색 키워드의 입력만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한 자리에서 조회할 수 있다니! 업무의 상당 시간을 자료 조사에 사용해야 하는 컨설턴트로서 구글은 단순한 검색 엔진이 아니라 믿을만한 리서치 애널리스트입니다. 회사의 KMS에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합니다만 그런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 행운입니다. 결국 인터넷 검색, 오프라인 문헌 조사, 외부 인터뷰에 의존해야 하는데, 구글의 강력한 검색 기능은 이러한 자료 조사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구글의 등장이 장점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고객도 컨설팅사의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검색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구글의 등장으로 컨설팅사가 내세우던 '다양하고 풍부한 베스트 프랙티스'는 빛이 바랬고, 누구나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풍부한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부지런한 고객은 많지 않았기에, 구글에서 찾은 풍성한 자료로 보고서를 꾸밀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 도구 5. 씽크셀


씽크셀은 파워포인트의 애드온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형식의 도표를 쉽고, 뽀대 나게 작성하는 도구입니다. 지금은 파워포인트의 도표 기능도 상당히 쓸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었지만 2010년대 까지 파워포인트의 도표 기능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다양한 차트로 장식된 보고서를 써내야 하는 컨설턴트에게 파워포인트의 빈약한 도표 기능은 저주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파워포인트로 도표를 그릴 때, 상당 시간이 색상 조절, 폰트 조절, 칸 조절에 소요되었고, 정작 내용에 신경 쓰기보다는 예쁘게 꾸미는데 터무니없는 시간을 써서 작업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파워포인트를 예쁘게 꾸미는 프로덕션팀에 의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는 항상 바쁘기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디자이너가 작업한 결과물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다시 작업을 의뢰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씽크셀을 사용한 이후에는 이러한 고민들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멋진 도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씽크셀은 저의 최애 프로그램입니다. 도표를 많이 작성하는 프로젝트라면 주니어 컨설턴트 1명보다 씽크셀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도구 6. 번역기


1990년대에 처음 등장한 번역기의 성능은 형편없었습니다. 한글에서 영문으로 바꾸던, 그 반대로 하던지 골고루 처참한 결과물을 내뱉는 쓰레기였습니다. 호기심에 한번 써보고 그 이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글과 일어간 번역은 그나마 나았다지만 업무에서 일어가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후 2010년 중반까지도 형편없던 번역기는 구글이 신경망 기반의 번역기인 구글 트랜슬레이터를 출시하면서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이 됩니다. 물론 구글 트랜슬레이터도 초창기 버전은 겨우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으며 비문 투성이인지라 결코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번역기는 꽤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번역기로 만들어진 문장은 약간 다듬으면 쓸만한 정도입니다. 물론 아직도 번역 품질은 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번역 속도는 사람과의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빠릅니다. 대량의 산출물의 초벌 번역할 때, 번역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도구가 되었습니다.


# 도구 7. Chat GPT


2022년 11월 chat gpt가 출시되었습니다. 호기심에 사용해 본 초창기 chat gpt는 신기하긴 했지만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냈지만 실제 내용은 오류 투성이었습니다. chat gpt가 만든 내용에서 오류를 찾아서 일일이 수정하느니, 그냥 chat gpt를 쓰지 않는 편이 나았습니다. 약간 발전된 형태의 심심이라서 장난감 정도의 쓸모는 있을지언정 결코 업무에 쓸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전에 출시된 최신 chat gpt 4o의 압도적인 성능은 저의 생각을 180도 바꿨습니다. 작년의 chat gpt가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현재의 chat gpt는 대학생입니다. 사례 조사를 시켜보면 압도적으로 빠른 시간에 상당히 쓸만한 결과를 알려줍니다. 게으르고 일머리 부족한 ‘일부’ 주니어 컨설턴트보다 훨씬 낫습니다.


게다가 아무 때나 작업을 시켜도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세부 사항을 조금씩 바꾸며 유사한 조사를 반복적으로 시켜도 충실하게 답을 해줍니다. 컨설턴트에게 지시했다가는 갑질 혹은 괴롭힘이라고 신고당할 반복적인 조사 의뢰도 군소리하지 않고 해 주니 시키는 입장에서 너무나 편안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틈만 나면 chat gpt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간혹 다소 엉뚱한 답변을 하지만 괜찮습니다. 질문을 좀 더 명확하게 수정해서 물어보면 되니까요. 부담 없이 일을 시키고 괜찮은 결과만 사용하면 됩니다.


물론 아직 chat gpt의 답변이 컨설턴트를 대체할 수준은 아닙니다. 더구나 컨설턴트의 역량은 답변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질문을 고안하는 능력이 답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답없는 질문은 있어도 질문 없는 답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chat gpt는 한참 부족합니다.


하지만 chat gpt가 등장한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2년만에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런 성장 속도라면 앞으로 몇년 내에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이야 고분고분하게 답변만 하고 있지만 몇달 뒤에는 ‘혹시 알고 싶은게 이거 아닌가요?’ 라며 질문 자체를 수정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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