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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Mar 03. 2022

다리 다친 동료와 외출하기

회사에서 점심 외출한 시덥잖은 이야기

한 달 만에 출근한 회사 동료와 인사한다. 두꺼운 무언가가 그의 다리를 감싸고 있고 그의 옆에는 목발이 세워져 있다. 한 달 전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술을 한 김은 풋살을 하다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나는 그의 느린 걸음을 기다리며 뒤돌아 서 있느라 그와 우리의 주변을 평소보다 많이 의식했다.


코로나가 기승이니 회사에서 점심을 시켜먹는 경우가 많다. 김은 메신저로 오토김밥 시켜먹을 사람을 모집했다. 나를 포함 세명이 손을 들었다. 일하는 사이 배달이 도착했는지 다른 동료 한 명이 김밥이 담긴 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김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연희동에서 성수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하던 김은 오늘 택시를 타고 출근했단다. 다리를 제대로 굽히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깨 높이만 한 목발 두 개를 들고 택시에 타고 내리기가 굉장히 고됐겠군. 거기다 아직 아물지 않은 다리에 통증까지 있다면 출근길 정말 서러웠겠다. 안 그래도 출근은 서러운데.


밥 먹고 커피 콜? 우리는 그의 거동이 불편해 무리일까 염려했지만 김은 운동이 필요하다며 함께 사무실을 나서기로 했다. 사무실 문은 슬라이딩 도어다. 발을 지지대 삼아 팔에 무게를 실어 옆으로 당긴다. 나는 문을 열고 먼저 나와 서있고 김은 뒤에서 걸어 나온다. 아 문을 안 닫으시네. 문 닫는 게 힘든가보다. 제 무게가 제대로 실리지 발은 문의 무게를 이길 수 없고 손은 목발과 문 손잡이를 동시에 잡을 수 없다. 새삼 사무실 문의 크기와 무게를 실감한다. 누가 문을 이렇게 만들었냐. (나다.) 다행히 사무실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가기 전엔 자동문이 있다. 자동문도 열림 시간이 지나 김의 다리가 다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닫혀버릴까 봐 조마했지만 다행히 자동문은 너그러웠다. 혼자 알아서 열리고 닫히니 참 편리하다. 물건이란 자고로 전기가 통하고 봐야 한다.  


회사 건물 1층 로비 바닥 타일은 건물이 지어진 20년 전에 이곳에 자리 잡아 한 번도 제 자리를 비켜준 적이 없어 보인다. 임대인은 이 바닥을 소중히 여겨 미화 관리인이 매일 아침마다 긁히고 패인 타일에 기름칠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부지런히 일을 하셨다. 기름을 머금은 타일 바닥이 마찰력에 미련이 없다. 김이 속도를 내 걸으니 미끌한 바닥 위에서 목발 끝이 미끄러진다. 환부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바닥과의 거리를 조절하며 걷는 김의 다리가 미끄러진 목발로 인해 바닥과 갑작스러운 접촉 사고가 날까 봐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건물 출입구에 서면 건너야 할 횡단보도가 보인다. 이제 막 초록불로 바뀌었지만 이번 신호에 건너긴 시간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신호가 이렇게 짧았냐고.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건너기 시작했는데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초록 인간이 빨리 움직이라고 제 몸을 깜빡이며 눈치를 준다. 6차선인데 시간 줄어드는 속도 너무 빠른 거 아이오! 거의 다 건넜을 즘 신호등의 초록 인간이 빨간 인간으로 바뀌었다. 네 명을 한꺼번에 차로 칠 사람은 없겠지. 빨간 불에도 당당하게 횡단을 마쳤다. 다음은 우회전 차로의 짧은 건널목, 여긴 신호등이 없다. 차와 사람 간의 적당한 사인으로 누가 먼저 건너갈지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곳. 다행히 고급 승용차를 탄 인품이 훌륭한 운전자분이 우리 앞에서 차를 멈춰 주셨다. 찬찬히 길을 건너 카페가 있는 골목으로 진입했다.


이상하게 골목은 평소보다 좁고 차는 평소보다 크고 빠르다. 길 중간으로 널찍하게 걷고 싶은데 저 큰 차가 왜 굳이 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와 우릴 불편하게 하는지 까칠해진다. 카페에 도착했다. 성수동에서 커피맛으로 유명한 카페들의 특징은 매장이 협소하다는 것. 좁은 공간 내 이미 사람들이 복작복작하다. 주문하려면 일단 매장에 들어가 계산대 앞 머리 들이밀기 스킬이 필요한 곳이라 김의 현재 상태로는 스킬을 발휘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주문과 픽업을 한다. 평소에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던 회사와 카페와의 거리를 목발과 함께 걸었던 김은 조금 지쳐 보였다. 우리는 카페 앞 의자에 앉아 쓸데없는 주제로 떠들며 조금 쉬다가, 걸었던 길을 다시 반대로 걸어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로 돌아와 김과 함께 한 차례 미팅을 하고 내 일하느라 바쁜 오후를 보내는 사이 김은 집에 갔다. 사실 관찰 일기라 해놓고 별로 관찰하지도 않았다. ‘관찰’보다 좀 더 대충 살펴보는 느낌의 단어를 찾고 싶은데 착 붙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관찰기의 거창한 목적은 없다. 잠깐의 경험으로 갑자기 장애인, 노인, 아이의 삶을 다 이해하는 척 이동권 보장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고발하며 글을 마무리할 생각도 아니다. 그런 중요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어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이 없다. 그저 다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과 동행한 점심시간, 세상의 속도는 조금 빠르고 세상의 크기는 조금 비좁았다는, 내가 무리 없다고 모두가 무리 없는 건 아니더라는, 사실을 적고 싶었다.


김에게 당신의 하루 관찰기를 써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본인 집 계단 기어서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면 더 짠할 거라고 했다. 굳이 그것까지 보러 가진 않겠소. 간만에 출근해 녹록지 않은 하루를 보낸 김은 웬만하면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서울스마트불편신고 앱으로 뚝섬역 사거리 횡단보도 시간 늘려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서울시에서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시정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신 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민님께서 금일 서울스마트불편신고를 통해 신고하신 신호등 보행 신호시간 관련 민원은 경찰 심의를 거쳐야 하는 업무로 서울시에서 접수가 어려운점 양해바랍니다. 경찰 소관 민원 신고는 경찰청 콜센터(국번없이 182)를 이용하여 신고를 부탁드립니다.”경찰 심의를 거친다니, 긴장돼서 전화를 조금 미루고 있다.




김은 아킬래스건 파열+재활기를 기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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