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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Oct 17. 2022

[잡담] 뮤테기(뮤지컬+권태기)를 겪는 중

뮤테기다. 뮤지컬 권태기.


티켓팅도 귀찮고, 공연장까지 가는 것도 귀찮다. 예매표 3개는 기본으로 기다리고 있어야 마음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어느 날 티켓팅이 귀찮아졌다. 티켓팅을 한 게 언제였더라. 까마득하다. 뮤테기에 접어든 지 몇 달 째이나, 사실 마지막 공연을 본 지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 지지난달의 내가 예매한 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날, 귀찮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리진 못할 망정 귀찮다고 생각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최근에 일이 조금 바쁘긴 했다. 하지만 내가 바쁘다고 취미를 소홀히 한 적이 있던가. 오히려 바쁠 때 공연을 더 열심히 봤다. 그만큼 해소할 곳이 더 필요했으니까. 고로 지금의 문제는 외부 요인에서 찾을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냥 뮤지컬에 대한 내 관심이 사그라든 게 맞다.


뮤지컬 입덕 초반엔 모든 게 새로웠다. 공연마다 연출, 음악, 배우 모두 첫 경험이었고, 그 새로움을 수집하는 재미가 있었다. 규모도 장르도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며 꽤나 지성인이 된 것 같았고, 제작사마다의 연출 특징을 잡아내면서 스스로의 전문가 다움에 뿌듯했다. A라는 배우를 보러 갔다가 B라는 배우에게 덕통 사고당하는 일이 허다했고, A부터 Z까지의 배우를 알고 나니 세상에 봐야 할 뮤지컬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연출과 오케스트라로 인한 소름도 덕통 사고의 빈도도 현저히 줄었다. 대부분의 장르, 연출, 배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똑같이 좋은 공연일 텐데도 ‘안 본 눈’이 아니게 된 이상 처음만큼 감동이 덜할 수밖에.


훌륭한 뮤지컬을 보는 건 즐겁지만, 내 취향의 공연을 찾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이 예전만큼 설레지 않는다. 새로운 공연 소식을 알아보고, 캐스트를 파악하고, 티켓팅 일정을 지키는 게 버겁다. 모든 절차를 거쳐 예매한 공연이 그다지 큰 감흥이 없을 때는 더욱 김이 샌다. 이전엔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한 전후 과정 모두가 내 취미의 일부였다. 지금의 나는 결과 중심적이다. 누군가 완벽한 공연의 가장 좋은 자리를 예매해 나를 공연장까지 무사히 이동시켜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굴러온 취미가 박힌 취미를 빼낸 게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박힌 돌이 빠졌다. 공허하다. 공연을 보는 게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방전 상태다. 근데 새로운 충전기를 찾는 것도 귀찮다. 맞다. 나는 나태하다. 한심한데 계속 나태하다. 당분간 이 나태함을 내버려 둘 작정이다. 취미 생활에 의무감을 가지지 않으련다.


다시 공연을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질 날이 올 것을 알고 있다. 간절할 때 드물게 경험하던 여가가 언젠가부터 너무 익숙해져서 권태기가 온 것이리라. 거리를 두면 언젠가 다시 공연을 보고 싶어질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지금의 내가 흘려보낸 무수한 공연을 아쉬워하겠지. 지금의 내 멱살을 잡고 싶겠지.


미래의 나에게…


지금 흘려보낸 뮤지컬에 대한 아쉬움이 다시 너의 열정을 불타게 할 것이니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지어다. 흘려보낸 표 대신 통장을 지켰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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