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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Mar 02. 2022

뮤지컬 <스위니토드> 무대라는 종이 위 조명이라는 물감

앙상블과 조명 빛의 완벽한 조화 <스위니 토드>

작품의 일부 포인트에 집중해 작품을 리뷰합니다. 다른 요소를 고려한 종합적인 평은 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음악과 스토리가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무대 디자인에 치이고 마는 작품이 있다. 나는 특히 조명에 많이 휘둘리는 편이다. SM, YG, JYP 등 각각의 연예기획사 아티스트들의 특징이 있듯, 뮤지컬에도 제작사마다 작품의 특징이 있다. 다른 요소 다 차치하고 조명 연출이 내 취향인 작품을 대거 생산해내는 제작사는 OD 컴퍼니다. OD 컴퍼니의 작품 중 <지킬 앤 하이드>와 <스위니 토드>는 조명 맛집 중에 맛집이다.


샤론 머서(Tharon Musser)라는 유명한 조명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찾아와 조명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면 오늘 바깥 날씨가 어떠냐고 질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한다고 해도 대답을 못 합니다. 단순히 말해서 빛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이지요" 빛을 보는 눈이란 빛이 어떻게 사물을 비추고 사람과 사물에 변화를 주는지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능력입니다.

J. 마이클 질레트 <공연 디자인 실무>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 은 20세기 중후반 미국 극장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겸 음악가이자 뮤지컬 기획자로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스위니 토드>하면 무조건 언급되는 인물이다. 손드하임의 작품 중 <스위니 토드>는 음악이 난해하기로 유명해 첫 관람시 거부감이 클 수 있다. 스토리 자체도 매우 불쾌하다. 나도 처음에 불편한 지점 투성이라 보이콧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묘하게 헤어 나올 수 없는 듀엣 넘버, 엄청난 배우들의 캐스팅과 더불어 아름다운 무대 연출에 반해 재관람을 거듭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화려한 배우진이 재관람의 가장 큰 이유임은 부인할 수 없고 탁월한 조명 연출을 다시 보고 싶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음악이 어렵고 낯설어 <스위니 토드> 무대에 빠져들지 않는 관객이 있다면 조명과 음악의 조화를 열심히 관찰해보라 일러주고 싶다.


<스위니 토드>는 2007년 국내 초연 이후 2019년 삼연을 마쳤다. 올해(2022년) 사연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다. 나는 2019년에 6명의 주연배우를 모두 만나기 위해 총 3회 관람했다. 이 시즌에 무대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다. 그전까지 수직과 수평의 구조물로 차가움과 딱딱함이 특징이었던 무대 디자인은 퀴퀴한 19세기 유럽의 분위기로 다시 디자인되었다. 팀 버튼이 연출한 영화 <스위니 토드> 분위기와 유사하다. 바뀐 무대 디자인이 <스위니 토드> 특유의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더 잘 살린 듯 하나, 나름대로 독특했던 과거 무대 디자인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쉽다. 무대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더 뮤지컬' <스위니 토드> 무대디자인, 살인마 이발사가 사는 곳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2016년 무대 디자인
2019년 무대 디자인


무대를 살펴보자. 벽돌 건축물의 불규칙한 입면이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좌측엔 건물 3층 정도 높이까지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다. 배우는 무대 바닥면뿐 아니라 뒤쪽 계단과 배경 건물의 높은 개구부를 통해 등장하고 사라진다. 주요 배경인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는 무대 오른쪽에서 전면으로 노출되어 장소로 활용되다가 뒤로 물러나 배경이 되기를 반복한다. 이 파이 가게 2층은 토드의 이발소다. 무대 바닥면보다 약 2m쯤 높은 이발소에서 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작품은 이처럼 높은 무대 전체를 오가며 수직 동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소소한 장점 중의 하나가 앉은키가 큰 관객이 내 앞줄에 앉아도 시야 방해가 적다는 것이다.)




수직면 활용이 특징인 만큼 입면에 드러나는 조명도 다채롭다. 배경에 색을 입히는 건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스위니 토드는> 앙상블 배우들을 피사체로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앙상블 배우는 주조연 배우보다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며 바닥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조명은 무대 위아래로 움직이는 앙상블 배우를 부지런히 따른다. 이때 조명의 색상도 다채롭다. 원색의 조명을 남발하면 무대가 촌스러워 보이곤 하지만 <스위니 토드>는 기본적으로 배경이 음침해 그 위로 맺히는 색은 어둠과 대비되어 촌스럽지 않게 이목을 끈다. 또 이 작품은 앙상블 배우에게 조명을 입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보여주려는 듯 배우 뒤에서도, 앞에서도, 심지어 턱밑에서도 조명을 비추는데, 이를 보면 배우들이 어딘가에 전시된 움직이는 조각 작품 같다.


보통 다른 작품에서 앙상블은 다인원을 활용해 규모로 무대를 압도한다. <스위티 토드> 속 앙상블 무대는 두세 명의 배우가 나와도 관객을 완전히 집중시킨다. 난간 위에 5명의 앙상블 배우가 등장해 'The Ballad of Sweeney Todd를 부르는 장면은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다. 음악도 스산한데 난간도 아슬하고 조명 빛은 꼭 마르지 않은 물감처럼 흘러내릴 것 같다.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배경을 죽이고 배우만 환히 비춰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앙상블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대라는 캔버스에 배우라는 붓으로 빨간색, 초록색을 칠한다. 주연 배우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무대 위로 도드라지지만, 앙상블은 거대한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섞여 움직인다.


자칫 앙상블 배우의 무대는 주연 배우의 무대를 보조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는 앙상블 무대에서 배우의 위치와 조명 연출을 정교하게 디자인하여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만큼 존재감이 크다. 뮤지컬 덕후라면 망원경이나 오페라글라스가 필수품이지만 나는 중간중간 배우의 표정 연기가 궁금할 때를 제외하고 가급적 망원경을 내려놓고 작품을 감상한다.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무대는 작품의 지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종합 예술이다. <스위니 토드>는 거친 붓터치로 그려진 커다란 유화 작품을 보듯 위 아래 좌 우 전체를 두루 감상해야 그 맛을 완전히 느낄 수 있다.




<스위니 토드>의 조명 디자이너는 마선영 조명 디자이너다. 내가 본 공연 중 <그리스>, <미드나잇>, <리지>도 이 분의 작품이었다. 밝은 뮤지컬도 많이 디자인하셨는데 내가 본 건 어두운 작품이 많네. 오히려 어두운 작품 속에서 조명이 유독 도드라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마선영 조명 디자이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우란문화재단' 마음이 있는 빛, 마선영 조명 디자이너 인터뷰를 읽어보길.



뮤지컬은 시각예술과 청각 예술의 집합체다.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뿐 아니라 시공간을 단숨에 이동시키는 무대 장치, 장면의 계절과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 디자인, 풍경화 속 인물처럼 제 위치를 정확히 아는 배우들의 움직임 또한 뮤지컬의 큰 매력이다. 나는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한다. 청음 감각보다 공간이 주는 감각에 예민한 편이다. 뮤지컬을 관람할 때도 내 눈은 귀보다 훨씬 바쁘다. 귀는 엄청난 존재감이 있는 소리만 좇지만 눈은 사소한 포인트까지 포착하고 혼자 감탄하는 편. <스위니 토드> 무대의 화려함에 감탄을 많이 했는데, 본지가 너무 오래돼 많이 잊혀졌다. 슬프다. 기록이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아마도 다음편은 <지킬 앤 하이드> 속 조명 디자인 리뷰. 2022년 2차 캐스트로 한 번 더 보고 리뷰하고 싶은데, 언제 보고 언제 써서 올릴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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