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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Feb 07. 2022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이머시브 : 우리 사이 거리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한국 초연작 <그레이트 코멧>

작품의 일부 포인트에 집중해 작품을 리뷰합니다. 다른 요소를 고려한 종합적인 평은 이와 다를 수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창궐 초반 모든 오프라인 공연은 대부분 중단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클래식 공연으로 분류되는 작품부터 공연이 가능해졌다. 현재까지 배우 또는 제작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좌석 밀집도를 조정하며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공연장 방역 수칙이 강화되고 관객 간 감염 사례가 적어 2020년 중후반에 비해 현재의 공연 업계는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거리두기 좌석제로 인해 실 판매 좌석수는 적고 다른 즐길거리가 사라져 새로운 문화생활을 찾는 사람들까지 합세, 인기극은 여전히 매진 행렬이다. 공연장 입장 시 문진표 작성, 발열 체크는 당연한 절차가 되었고 공연장 내부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바르게 착용해야 하며 함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가끔 배우가 객석을 지나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대사는 없고 대부분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나간다.

 

공연장에서 관객과 배우는 비언어적인 소통을 한다. 배우는 본인의 연기에 감탄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있고, 관객은 기립 박수 또는 함성으로 화답한다. 하지만 코로나19 관객의 표정과 목소리를 앗아갔다. 사실 뮤덕 입장에서  정도의 제한도 예전의 상황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오늘   밖으로 내뱉지 않은 환호성이 내일 공연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손을 최대한 높이 들어 최대한  소리로 박수를 친다. 하지만 세상에는 관객의 환호성  이상으로 참여가 가능한 이머시브 공연이 있다. 나는 이머시브 뮤지컬을 특히 애정 한다. 코로나19 시대의 이머시브 공연은 어떤 상황일까.


이머시브 시어터 :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하는 연극이나 공연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관객 참여형 공연 또는 관객 몰입형 공연이라고 부른다. (출처 : 네이버 시사 상식 사전)




내가 본 이머시브 공연은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헤드윅>, <로키 호러쇼>, 연극 <쉬어매드니스> 총 4 작품이다. 이 중에서 코로나19 이전에 본 공연은 <그레이트 코멧> 제외 3 작품이고, 코로나19 이후에도 올라온 작품은 <로키 호러쇼> 제외 3 작품이다. 그중 코로나19 이후 내가 관람했던 <그레이트 코멧>과 <헤드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레이트 코멧>은 우리나라 대극장 공연 중 관객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야심 차게 기획되었다. 20년 개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가 끝나길 기대하며 1년을 연기했고, 코로나 종식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머시브 방식을 축소하여 개막했다.

<그레이트 코멧> 브로드웨이 무대 사진

<그레이트 코멧>은 라이선스 논 레플리카 공연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객석이 테이블로 만들어져 있어 배우들이 테이블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고 한다. 무대의 생김새도 그만큼 다이내믹하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무대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뮤지컬 공연장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유니버설아트센터의 무대를 장기간 공사하여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 국내 초연 개막전 무대 사진은 공개되지 않아 무대 디자인에 대한 궁금증이 상당히 컸다. 모두들 기대한 공연이었던지, 첫 번째 티켓 오픈날 꽤나 치열하게 1층의 통로 바로 뒷블럭 제일 앞자리 좌석을 예매할 수 있었다. 한창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던 때,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겠다는 공연의 막이 올랐다.


브로드웨이의 무대와 유사한 모습으로, 국내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무대임은 분명했다. 유니버설아트센터 공연장 맨 앞열의 좌석 7열 정도를 철거하고 무대를 그만큼 확장했다. (내 자리는 16열이었는데, 일반 극장 8열 정도의 거리감에 꽤 만족했다.) 무대는 다양한 경사를 가진 원형 바닥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원형 안에 연주자들의 자리, 음악감독(지휘자)의 자리, 심지어 관객석까지 있었다.




이머시브에 대해 이야기할 듯하더니 무대 생김새에 대해 왜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냐면, 이 무대가 ‘이머시브’를 위해 제작사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노력이 매번 훌륭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무대 위에는 관객석이 있다. 무대 위 관객석의 대부분은 무대 전면 관객석과 마주 보도록 배치돼 있다. 무대 위 관객들은 나처럼 마스크를 쓰고 나란히 앉아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앞에서 신나게 춤추는 배우를 보고 있는 관객석의 관객들이 참으로 현실적이었다고 할까. 나는 뮤지컬을 보면서 현생을 잊고 무대 위 세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레이트 코멧>의 무대는 현생을 잊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나의 시야 안에서 배우들의 몸짓에 호응을 할 수도 없이 그저 배우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을 보는 마음이 씁쓸했다. 현생의 상황에 의해 우리 사이가 거리가 기어코 좁혀질 수 없다면 그냥 멀어지 기를 택하고 완벽한 내 판타지 속 세상을 만들어주지 그랬어, 원망스러웠다.


<그레이트 코멧> 국내 공연 사진


관객이 무대에 들어설 수 있듯이 배우도 관객석을 무대처럼 활용한다. 내 좌석 앞이 통로라 매우 가깝게 지나간 배우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캣츠> 내한공연에서 배우들이 통로를 지날 때 마스크를 착용했고, <헤드윅>에서도 헤드윅이 처음 등장할 때 입술이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다. 그런데 <그레이트 코멧>에서는 배우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객석을 누빈다. 물론 절대 말을 하진 않는다. 내 최애 배우가 내 앞을 지나가고 몇 미터 전방에서 춤을 추는 것은 굉장히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하다. 그때 나는 코로나19에 대해 염려하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나 뮤지컬을 보러다님에도 눈치 보며 사실을 숨기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연기간은 대부분의 배우와 관객 연령대의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한참 전이었다!) 불안감은 차치하고서 앙상블 배우가 앞에서 인사를 해도 내 최선의 리액션이 눈웃음과 손짓뿐이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그 상황 자체가 실로 웃펐다.


사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관객 참여 허용치가 높을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훨씬 더 ‘이머시브’했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는 상관 없다는 듯 수동적 관객이 되기에도 멋쩍고 내가 바로 작품의 일부라는 듯 적극적 관객이 되기엔 조심스러운 그 상황에서 내 스탠스를 찾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 스탠스를 함께 고민중인 관객이 신경쓰이고, 관객의 호응은 유도하면서 호응을 제한해야하는 배우들이 신경쓰여,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조금 떨어졌을 뿐이다. 코로나 시대의 이머시브 공연의 한계일까. 우리 사이 안전거리는 유지하면서 교감이 가능한 이머시브 공연은 어떤 방식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레이트 코멧>을 준비하고 막을 올려준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그때의 나는 집에서 각종 콘서트 영상을 섭렵하며 내적 흥을 억누르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작품의 스토리나 킬링넘버, 배우의 연기보다 나 대신 춤추고 흥겨워준 앙상블 배우들과 연주자들의 모습이 선명한 공연은 아마도 <그레이트 코멧>이 유일하다. 현실적인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기에 21년의 공연이 제작사가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물 었으리라. 코로나가 끝나는 날 무대 위 관객은 배우와 함께 얼큰하게 취하고 무대 앞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연주에 열렬히 환호를 보내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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