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GARDEN. BOYS ARE BACK IN THE EAST
중학생 나는 두 가지 취향을 갖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 주책 떨 수 있는 아이돌을 한 팀쯤 좋아하면서도, 좀 특별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인디 밴드나 해외 밴드를 탐구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음악 스트리밍 어플도 없고 알고리즘도 발달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음반 가게에 가서 음악을 듣는 건 대학생 언니들이 하는 행동 같아 스스로 조금 어색했고, 중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 CD를 사서 듣는 것은 더 어려웠다. 내게 TV광고는 가장 쉽게 괜찮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광고 화면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가수와 제목이 표시돼 있었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적어두었다가 소리바다에서 찾아보곤 했다. 청량미 넘치던 광고 화면 속 배경음악이 엘르가든의 노래였다.
엘르가든 섭렵이 시작되었다. 엘르가든의 노래로 MP3를 가득 채웠다. 2008 펜타포트 라이브 영상을 전자사전에 다운로드하여 쉬는 시간마다 돌려봤다. (내 기억에 그때는 SBS에서 펜타포트를 방영했었다.) 깔린 음원 위에 목소리를 내거나 춤을 추는 무대만 알다가, 모든 소리를 무대에서 직접 만드는 밴드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드럼이랑 기타랑 베이스랑 합쳐져서 멜로디를 만드는 거잖아. 둥타다닥하는 둔한 소리가 베이스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그랑 티셔츠를 입고 노래 부르는 호소미의 목소리와 드럼, 기타, 베이스, 밴드의 음악을 실제로 듣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지만, 경상북도 성주군에 사는 고1 학생은 감히 서울(정확히 인천이지만)에 갈 생각은 절대 하지 못했다. 응답하라 1994의 성시원처럼 적극적이고 겁 없는 캐릭터는 아니었던지라 성인이 되면 꼭 펜타포트에 가야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해 엘르가든이 활동을 중단할 줄은 몰랐지. 펜타포트도 일본도 혼자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밴드가 없어졌다.
* 호소미는 솔로로 또는 새로 결성한 밴드로 한국에 종종 왔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드디어 호소미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약간 다크 해진 하이에이터스(Hiatus)와 모노아이즈(Monoeyes) 음악은 그 시절 펑키한 사춘기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활동 중단 10년 만에 엘르가든이 재결합을 발표하고 2022년 정규 앨범을 냈다. 16년 만에 2023 펜타포트 헤드라이너로 섰다. 요즘은 아시아 투어중이다. 나는 지금 한국 콘서트 2회 차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HOT가 무한도전에서 토토가로 재결합했을 때, 팬들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섬머소닉에서 블러의 공연을 보던 할머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색한 한국말로) 활동 중단 기간 동안 우리들은 아저씨가 되었지만…” 어제 공연에서 호소미가 한 말, 그 옛날 CM송으로 엘르가든에 입문해 공백기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내가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흐뭇하다. 씁쓸하다거나 슬프기보다는, 기분이 썩 시원해. 중학교 때 좋아했다던 아이돌 중에 여전히 무사한 그룹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17살에서 32살이 될 동안 무탈한 아저씨로 자라난 것이 매우 기특하군요. 나는 록페스티벌 가는 할머니가 되기로 했으니 “우리들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공연을 올려 주십시오.
엘르가든 내한 공연 MD부스 오픈을 두 시간 반 전부터 기다리며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