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레코드에 다녀와서
출근길에 이어폰을 꽂고 애플뮤직을 열어 전날 멈춘 곡을 재생한다. 30분 남짓 출근길에 10개가량의 곡이 내 귓가를 지나쳐간다. 아주 가끔 마음에 드는 곡이 들려와 화면을 켜고 어떤 아티스트의 노래인지 확인하고 찜한다. 알고리즘 옛다 먹어라. 충성스런 나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장르의 다음 곡, 다다음곡을 끝없이 재생 목록에 추가한다. 인상적이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는 열의 아홉 곡은 출퇴근길 지하철의 소음 혹은 적막을 적당히 막아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지난 8월 휴가 때 도쿄의 타워레코드에 들렀다. 이곳에 알고리즘은 없다.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 그리고 히라가나 순서로 정직하게 정리된 앨범만 가득하다. 발로 걷고 손으로 꺼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내 취향을 발견해 내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꽂히는 앨범이 있으면 몇 분이고 뒤적뒤적 만지작만지작 내리 서서 이걸 사? 말어? 오로지 손에 든 앨범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스트리밍 앱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지만, 괜히 그렇다. 왠지 격하게 소장하고 싶다.
이탈리아 밴드 모네스킨의 사인이 선반 위에 올려져 있다. 가까이서 보려고 까치발을 든다. LP층에서 내 옆에 있던 아저씨는 모든 LP를 한 장 한 장 넘긴다. 그가 찾는 바로 그 목적지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OST가 어디 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모르는 눈치다. 아, 그는 아마 이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을 때 태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1층부터 7층까지 구경했더니 아니 벌써 해가졌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걷고 만지고 보고 듣는 과정의 반복이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근데 잡아 먹힌 시간이 기분 나쁘지 않다. 이곳에서 음원이라는 디지털 파일은 부피를 가진 것으로 존재한다. 부피를 가지니 주변이 생겨난다. 그 안에서 상황을 만난다.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기후정의행진에 갔다가 디지털교과서 반대 서명을 하고 왔다. 처음 뉴스로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그냥 ‘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자연스러운 거부감의 원인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편리한 3D 모델링 프로그램이 많지만 꼭 손으로 모형을 만들어야 했던 학과 시절도 떠오른다. 교수님은 모형은 제자리에 두거나 위아래로 조금 들어 올리기만 하고, 오히려 얼굴을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모형을 살폈었다. 미팅 직전에 일어나도 지각없이 참여 가능한 온라인 미팅은 정말 편리하지만, 회의실에 드나들며 이러쿵저러쿵 근황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도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굳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알려줬다. 애플뮤직으로 검색 한 번이면 들을 수 있는 것을 굳이 시부야까지 가서 찾아야 되냐고, 태블릿 하나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데 굳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녀야 하냐고,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쓰면 종이며 폼보드며 재료를 아낄 수 있는데 굳이 실물 모형을 만들어야 되냐고, 출퇴근 시간 잡아먹을 필요 없이 집에서 컴퓨터만 켜면 되는데 굳이 사무실에서 만나야 하냐고. 전부 평소의 내가 할 법한 말이다. 근데 그냥 굳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도 있잖아.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해서 좋았던 경우도 꽤 자주 있고. 그러니까 지금 나의 ‘굳이’들은 조금 대중 없이 뱉어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비효율과 불필요를 되묻는 ‘굳이?’와 그럼에도 더 나을 것을 확신하는 ‘굳이!’ 물음표와 느낌표를 잘 선택하며 살고 싶다. 과연.
그리 옛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처럼 소장에 의의를 두는 앨범(혹은 추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앨범)이 아니라 진짜 듣기 위해 앨범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한 장에 만삼천 원 정도 하는 앨범은 내게 너어무 비싸서 사고 싶은 대로 다 살 수 없었다. 가장 사고 싶은 것을 골라야 했고, 용돈을 모으는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게 손에 넣은 앨범은 무척 소중했다. 커버나 내지 종이 모서리가 뭉개질까. 지문이 묻을까. 조심조심. 케이스 가운데 볼록한 고정장치를 눌러 CD를 꺼내 꼭 맞는 플레이어에 착 올려놓을 때의 손맛까지. 그때 산 앨범들은 여전히 종종 생각나서 찾아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