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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Nov 02. 2024

그래도 해야지, 붓질

처음 수채화를 배울 때, 붓을 마구 문지르며 나무의 초록색을 채우기 바쁜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다 표현되어야 한다고, 이 나뭇잎이 어느 나뭇가지에서 자랐는지 생각하면서 그리라고, 그러니까 같은 방향 같은 크기로 자라는 나뭇잎은 하나도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붓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잎 하나하나에 존재 이유를 새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더 생기 있는 나무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생각을 다르게 하는 것 만으로 움직임이 바뀌고 표현이 달라지고 실력이 느는 게 신기했다.


원기둥 정물화를 그릴 때 선생님은 "진짜 그렇게 생겼어?"라며 내게 물었다. 동그라미에는 직선이 없다고 했다. 옆에서 보면 원이 납작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넓은 면에 직선이 생기는 게 아니고 좁은 면에 뾰족한 각이 생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원기둥의 위에도 동그라미가 있고 아래에도 동그라미가 있으니까 밑에 숨어있는 동그라미에도 뾰족이는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는 보는 대로 생각한 게 아니고 생각하는 대로 보고 있었나 보다. 사실대로 보고 사물 너머까지 관찰하는 감각을 얻었다. 보이는 모든 걸 그대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고 첫 1~2년은 마구 성장하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3년 정도 배우니 성장 속도는 처음만큼 빠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묘사를 넘어 나만의 표현을 해내지 못했다. 그림 그리는데 흥미를 점점 잃었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그림을 완전히 그만뒀다. (다행히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수업이 듣기 싫을 때 연습장에 끄적이며 그나마 유지된 실력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연필 드로잉 한 장쯤 겨우 완성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 문화센터에서 몇 년째 수채화를 배우며 즐거워하는 엄마를 보고 자극받아 갑자기 화실에 등록했다. 수채화는 (20년 전에) 배워봤으니 유화를 배우기로 했다. 투명한 깨끗함이 살아있는 수채화보다 꾸덕꾸덕 두꺼운 유화는 좀 더 과감하게 그려도 실수가 용납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러하다. 다만, 끝까지 그러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마지막 터치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럼에도 컨트롤 Z를 누르고 싶은 순간이 수채화만큼 많지는 않은 건 확실하다.


유화 붓의 종류, 물감 조색 방법, 캔버스의 전처리 방법, 색을 올리는 방법은 새롭게 배우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재료로 그림을 그리던 같다. 화실에서 배우는 게 예전 미술학원에서 배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캔버스 위에서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는 부분을 선생님한테 꼭 들키고 똑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여기도 채우세요." 표현에 자신이 없으니까 딴 곳만 계속 건드리고 있다가 선생님의 한마디에 뜨끔한다. 계속 그리길 주저하고 있으면 결국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신다. 어렵다고 쭝얼거리면, 선생님은 "그래도 해야죠. 어떡해요."라고 한다. 어릴 땐 이 소리를 들으면 속상했는데, 묘하게 속 시원한 건 어른이 되어서인가.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면 화실 회원들은 대게 비슷한 반응이다. "저는 이렇게 저렇게 그려서 무언가 잘 안 됐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저렇게 하시니 그림이 확실히 달라지네요!" 선생님이 다녀간 자리마다 깨달음의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것을 엿듣는 게 재미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나보다 나은 사람의 말을 새겨듣고 본받는 걸 안 하게 된다. 내가 못 하는 걸 끝까지 안 보려 하거나,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거나, 뭔가 찝찝하긴 한데 자존심 때문에 괜한 고집을 부리게 된다. 화실에서도 그랬다간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다. 어찌저찌 완성해도 회피와 고집으로 그린 그림은 결국 마음에 안들걸.


그리는 행위를 통해 단순히 묘사하는 기술 이상의 것을 배운다고 믿는다. 선생님이 없이 혼자 그릴 때도 다르지 않다. 결국 내 눈에는 안 보이고 선생님 눈에는 잘 보이는 개선점을 혼자서도 발견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그림은 끝없이 반복되는 회고다. 내가 보는 게 정말 맞는지, 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머릿속 상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묘사를 할 때 실수를 하는지, 붓질 한번 한번 할 때마다 되묻는다. 그리고 이 되물음이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한다.


그림 한 번 피곤하게 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로지 눈앞에 있는 캔버스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하니 세상사 다른 고민은 끼어들 틈이 없다. 심지어 세상사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시간은 빨리 가고, 결과물을 내 눈앞에 바로바로 보인다. 참 성취롭고 평화롭다. 요즘 화실 가는 목요일이 가장 즐겁다. 성장곡선의 정체기가 와서 다시 흥미를 잃을 때까지는 유화를 계속 배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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