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는 콘텐츠와 연구는 넘친다. 다 맞는 말일 거야. 그걸 알면서도 인스타그램을 끊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좋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다른 말로는 합리화다.
방송인 홍진경은 딸의 사진을 꼭 인화해서 사진첩으로 소장한다고 한다. 휴대폰 안에 있으면 들춰보지 않는데 인화해 두면 가끔씩 꺼내보게 된다고. 나한테는 인스타그램이 그렇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인 400개 이상의 게시물 중에는 지금 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고 오직 인스타그램에만 남아 있는 사진도 많아서 섣불리 삭제할 수가 없다. 과시욕 자극은 인스타그램의 대표적인 폐해다. 음 나도 내가 재미있게 사는 거 과시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겠지. 근데 평일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가 가끔 재미있었던 거 남들에게 보여주고 기뻐하는 게 뭐 그리 나쁜가. 시작엔 자랑이 섞여 있을지라도 나중에는 쌓여있는 좋은 기억들을 꺼내보는 재미가 훨씬 크다. 해의 끝엔 한 해 동안 무엇에 행복해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기도.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만 올리지 않고 몇 줄이라도 글을 꼭 남기려고 한다. 사진이 찍힌 또는 찍은 순간에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사진을 올리는 순간이 되니 무슨 기억과 연결되는지, 짧게라도 곱씹어 볼 수 있다. 동료이자 유튜버인 지인이 어딘가에서 자신이 콘텐츠를 만들면서부터 좋아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나도 짧은 글을 같이 올리면서 좋았던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브런치 글처럼 장문이 아닌 비교적 부담 없는 3-4줄의 짧은 문장에 내 생각을 담는 연습도 되는 듯. 내 피드에 충분히 기록될 자격이 있는 기억을 선별하고, 썼다 지웠다 생각을 몇 자로 정리하고, 업로드를 누르면 뭔가 한 가지 행복한 일을 잘 끝냈다는 쾌감이 든다.
무엇보다 매우 만족하는 기능은 DM이다. 좋아하는 작가님과 좋아하는 뮤지컬 감독님께 DM을 보낸 적이 있는데 회신이 온 것이다! 연락처도 없고 우연한 마주침도 없이 존경하는 사람과 1:1로 대화할 영광을 어디서 누릴 수 있겠는가. 설사 연락처가 있다한들 전화나 메시지로 당신을 왜 좋아하는지 말하는 건 상상만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연히 만나도 내향인인 나는 절대 말 못 붙여. 종종 길을 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을 마주칠 때가 있지만 '팬이에요.'라는 말도 해본 적 없다. 인스타그램 DM만의 가벼움이 있다. 그 가벼움 때문에 넉살이 부족한 나도 주책맞은 팬심을 전할 용기가 생긴다.
평상시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부지런히 챙기는 성격이 아닌데도, 스토리에 올라온 소식을 보고 축하를 남기거나 농담을 건네는 건 어렵지 않다. 관심 갖고 있던 뉴스를 지인이 올리면 같이 분노하기도 하고,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지인에게 반가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학과 선배가 목격한 서울대공원 얼룰말 탈출 목격 스토리를 보고 "대박, 직접 찍은 거예요?" DM을 보내서 확인했다는 내 말에 친구가 조금 놀란 적이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인간적인 호감의 두께와 친분의 두께가 일치하지 않는다. 친분이 두텁지 않은 사람이어도 좋은 사람이라면 말을 던지고 보는 뻔뻔함이 생겼다. 인스타그램 자아라는 핑계로 조금 더 외향적인 인물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동료는 숏츠를 보다가 훅훅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서 앱을 지웠다고 한다. 나도 돋보기와 숏츠의 무한궤도에 갇힐 때가 있다. 확실히 돋보기와 추천게시물을 인스타그램의 효능에 포함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편향된 여론이나 혐오 정서를 유발하는 콘텐츠는 매우 불쾌하다. 또 다른 분야를 탐구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 취향에 맞는 게시물로 도배되는 것도 불편하다. 인스타그램을 효능 위주로 건강하게 사용하려면 이 불쾌와 불편을 인식해야한다.
알고리즘에 매몰되지 않으려 주변 사람들의 추천 콘텐츠도 즐긴다. 주변이 아닌 내가 잘 모르는 곳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에도 귀 기울인다. 좋은 영화, 드라마, 책 같은 긴 호흡을 가진 콘텐츠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놀아나지 않을 거야, 혼자 다짐해도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의 연출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그들의 또 다른 전략에 먹힌 사람1로 남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적당히 주도권을 갖고 적당히 의존하며 균형을 잃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내 한 몸 먹여 살릴만하고 다양한 인간상을 경험하며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된 나같은 인간이 아니어도,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정보에 심리적, 정서적 공격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적인 안전망이 더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글은 아직 인스타그램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의 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