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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심리사 김종운 Sep 26. 2022

ISTJ도 공감이 필요해요.

나라는 인간으로 말하자면, 나이는 50 초반에 체중은 100kg에 육박하는 체구의 남성이다. 첫인상만 본다면 남 눈치 안 보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꼰대질이나 할 법한 그런 이미지 일 게다. 그러나 실상은 MMPI-2의 0번 척도 Si 수치가 60을 넘어가고, MBTI는 ISTJ가 나오는데 그중 I 수치는 30을 꽉 채운다. 한마디로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극소심 내향성 인간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번 할라치면, 너무 이른 시간은 아닌지 늦은 시간은 아닌지 혹시 방해되는 건 아닌지 너댓 번은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간신히 한다. 회식 자리에 끌려가면 눈에 안 띄는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서 조용히 있다 오는 게 편하다.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재미있고, 밥도 역시 혼자 먹는 게 맛있다.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부류가 밥 혼자 못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운 관계는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여기고, 말을 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람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누군가를 알게 되어도 적당히 얼굴을 기억하는 정도에서 크게 진전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친해지기도 어렵고, 따로 만나 밥이나 술을 함께 하는 것도 번거롭다. 


그래도 그냥 이게 내 자연스러운 성격이며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 생각했는데, 40 중후반을 넘어서 인생 행로가 여러 면에서 크게 바뀌었다. 늦은 나이에 상담심리 대학원에 진학해서 새로 공부를 시작하고, 안 돌아가는 머리로 여러 해를 준비해서 상담심리사 2급과 청소년상담사 2급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러나 첫 도전의 결과는 애석하게도 불합격이었다. 그때 느꼈던 좌절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어달 동안을 멍하니 무기력한 상태에서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느낌으로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면서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절절하게 느꼈다.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들려면, 우선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가까워져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왕 상담심리를 공부했으니 상담심리의 관점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방법을 찾아보자 결심을 했다. 


그때 내 마음을 분석하면서 내린 결론은, 너무 나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도외시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왼손을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척추가 틀어지고 허리에 통증이 생기는 것처럼, 사고 위주로만 뇌를 사용하고 감정을 무시 혹은 억압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의 형성에 지장이 생김은 물론이고, 내 안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허리가 아플 때 자세를 교정해서 통증을 치료하듯이 마음에도 교정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고, MBTI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ISTJ이니 직관N과 감정F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마음 자세의 교정을 위해, 우선 지인들과 연락을 좀 더 자주 하기 시작했다. 꼭 용무가 없더라도 이따금 간단한 인사말을 이모티콘과 함께 카톡 문자들을 보냈다. 몇 달을 그리하다 보니 나한테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가끔은 별 용건도 없이 그냥 심심하다고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특별한 내용도 없이 전화로 잡담을 떠들고 대화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참 곤혹스러웠는데 지금은 어느새 적응돼서 그럭저럭 자연스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런 실없는 대화가 조금은 즐거운 느낌도 든다. 물론 여전히 성가신 느낌이 적지 않다. 성가심과 즐거움의 비율이 대충 6:4 정도 되려나. 


지난 여름에는 성당 성가대에 들어갔다. NF를 키우는 정신재활훈련(?)으로서 이보다 좋은 활동이 없지 않을까 많이 고민하고 결정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막상 성가대 연습을 하면서, 아름답게 소리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맞춰가며 노래를 부르기보다, 어떻게든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짚어서 소리를 내려고 집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역시나 나는 어쩔 수 없는 ST구나 싶긴 했다. 그래도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여기면서 꾸준히 연습에 참여하고는 있다. 


다음 주에는 성가대 MT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불편하다. 원래 많은 사람과 어울려 노는 것도 안 좋아하고, 술 마시는 것도 싫고, 집 아닌 다른 곳에서 자는 것도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다. 그런데도 이 또한 N과 F를 키우기 위한 정신재활훈련의 일환이려니 생각하며 일단은 가겠다고 승낙했다. 단, 1박은 못하고 밤늦게 집에 오기로 했다. 거기까지가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선인 것 같다. 


이런 짓들을 하다보면 가끔은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새로 배우는 느낌이다. 그냥 익숙한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면 금방 끝날 것을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이게 내 마음 자세를 바로 잡아가는 과정일 거라 믿으며 변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NF스럽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주변 사람들에 더 가까워지고 깊은 속내를 나누고 공감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서툴지만 이렇게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 가다보면 감정도 그에 맞춰 성장하고 내 삶도 더 풍요로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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