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이탈리아) 비행기는 연착되었고, 도착했을때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상하이/중국) 공항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공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 맞다. 나 여행왔지'
'앞으로 1년동안 집에 못가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여행은 2일차를 맞이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밤에 없어진 물건이 없는지 짐을 살피는데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문득 지난밤이 떠올라 몸서리가 났다.
'그래도 멀쩡하게 하룻밤을 잘 보냈으니 됐지 뭐'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깨를 살피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살짝 내려 거울에 비춰보니
목덜미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 피멍이 들고 상처가 나있었다.
어제 배낭에 쓸렸나보다.
여행은 정말 예상치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로마에 가면, 약국에 먼저 들러야겠다'
그렇다. 로마. 무려 로마!
나는 오늘 상하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로마로 간다.
'로마에 도착하면 우선 숙소를 알아보고
저녁으로 맛있는 피자를 먹어야지'
로마에 취해 무슨 호르몬이라도 나왔던건지
어깨에서는 피가 나는데도 이상하게 아프지가 않았다.
'그래 나의 본격적인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는 다시 희망차게 호기롭게 씩씩하게
항공권에 적힌 탑승구로 향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여행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나를 로마로 데려다줄 비행기는
알수없는 이유로 오랜시간 연착되었고
예정된 시각보다 한참을 지나서 겨우 상하이를 출발했다.
'이대로라면 한밤중이 되어서나
이탈리아에 도착할텐데... 그럼 오늘은 어디서 자?'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설렘, 행복, 희망, 도전으로 가득차 있었던 나의 여행은
순식간에 불안, 초조, 긴장, 경계로 채워졌다.
상하이에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불안에 떨다 잠이 들었다.
(로마/이탈리아) 공항
이탈리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또다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뿔싸. 어제의 반복인가.
설상가상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공항철도열차도 연착이란다.
이쯤되자 불안과 초조를 넘어 뭐랄까.
해탈? 반포기 상태가 되었다.
'될대로 되겠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공항철도에 올라 로마 시내로 나가는 길
이미 캄캄한 밤이 되어버려서
창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을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where are you from?"
(이하 편의상 한국어로 표기)
아! 아까 상하이 공항에서 봤던 여자다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저 한국에서 왔어요"
우리는 시내로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1년동안 세계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어제는 상하이 공항에서 잠을 잤다고.
오늘 어디서 자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상하이에서 왔고, 회사를 다닌다고.
20대 젊은시절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결혼 후에 한번도 못갔다고.
이번이 결혼후 첫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그녀는
착잡한 심정의 나와는 달리
무척이나 설레는 표정이었다.
주저리 주저리 떠들다보니
기차는 목적지인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좋은 여행 하라' 인사를 나누며
나는 배낭을, 그녀는 캐리어를 챙겨 헤어졌다.
'하 이제 다시 시작인가'
죽상을 하고 배낭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찰나의 순간에
내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여행자 납치, 감금, 인신매매, 장기매매...
영화 테이큰의 한 장면도...
겁이 이렇게 많은데
세계여행을 떠날 용기는 대체 어디서 솟았는지
지금도 가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기차가 끊길 시각이라,
공항이라는 도피처로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깨가 쓰려서
배낭을 메고 오래 걷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나의 세계여행 두번째 밤이었다.
나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처음 만난 사람의 호텔방에서
한쪽에 간이침대를 펴고 누워있었다.
'내일 나 무사히 눈뜰 수 있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여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고서.
간밤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나는 무사히 눈을 떴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낯선이와 동침에 긴장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나가 새로운 숙소를 구해 짐부터 옮겼다.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로마 시내에 위치한 6인실 게스트하우스.
잘 가꿔진 마당이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그녀는 왜 처음보는 나를 재워주었을까?'
그녀와 함께 점심을 하며 물어보니
그날 기차안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자신이 보였단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로마에서 만난 나의 구세주에게
지금이라도 감사를 전해본다.
자유롭게 그녀답게
원하는 여행하면서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