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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Aug 07. 2023

4. 죽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소설 - 가느다란 실

4.

‘띠리리리 띠리리리’

휴대폰 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머리를 세게 다쳤는지 왼쪽 귀 위쪽에 통증이 있고 멍한 느낌이 크다. 눈도 잘 안 떠진다. 아.. 이게 꿈이면 난 죽었거나 다쳤던 게 아닌데.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저기요. 휴대폰을 받던지 하세요. 너무 시끄럽네요.”

어디선가 불평스런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역시나 도서관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우뚝 섰다. 휴대폰 벨소리는 여전하고 거기에 의자 밀리는 소리까지 요란했는지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멈춰서 나를 쳐다본다.

“여기 있는 모든 인간들! 죽고 싶지 않으면 전부 나가!! 내가 여기 폭탄을 설치했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짐이건 뭐건 전부 두고 빨리 나가라고!”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여기 사람들도 나도 죽는 게 반복된다.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유리창 쪽으로 던져버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창밖으로 날아간다. 주변의 사람들이 멈칫하면서 몸을 움츠리는 모습들이다. ‘됐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앞에 있는 책상을 발로 찼다.

‘우당탕탕..’

책상이 넘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에라 모르겠다. 전부 죽든 살든 하나만 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앉았던 의자를 집어서 책이 꼽혀있는 서가쪽으로 집어 던졌다. 낮은 책장 하나가 넘어지면서 수십 권의 책이 우수수 쏟아진다.

“빨리 여기서 꺼지라고 이것들아!”

더욱 크게 소리쳤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열람실 밖으로 뛰기 시작한다. 나를 말리려는 사람보다는 이 또라이와 상대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인 거 같다. 달아나는 사람들 뒤편으로 걸어서 따라간다. 열람실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 벽 한편에 소화전이 보인다. 그 옆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원통형 쓰레기통도 하나 있다. 천천히 걸어가 쓰레기통을 번쩍 들어서 바닥 모서리로 소화전 버튼 뚜껑을 강하게 내리쳤다. 생각보다 쉽게 부서진다. 소화전의 버튼을 힘껏 눌렀다.

“에에에엥~~ 에에에엥~~~”

도서관이 떠나가라 사이렌 소리가 울려펴진다. 2층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거 같다. 1층으로 걸어 내려오니 이게 무슨 소동인가 싶어 밖으로 뛰어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빨리 도망치세요. 여기 있으면 다 죽어요. 진짜 모두 죽는 다고요!”

뛰어가는 사람들 등 뒤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은 모두 건물을 빠져나간 것 같다. 한숨을 돌렸다. 그제야 내게 다가오지는 못하고 저쪽에서 경계하며 나를 지켜보는 도서관 직원들이 보인다. 내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자 지난 꿈에서 봤던 건장한 남자 직원 둘이 내게 다가온다.

“저기요.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지금 선생님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세요? 경찰을 불렀으니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계세요.”

몇 걸음 내가 있는 쪽으로 왔지만, 나를 어쩌지는 못한다. 내가 도서관에 큰 사고를 친 게 맞다. 그런데 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도서관은 이토록 잠잠할까. 내가 반복되는 꿈이라도 꾼 건 아닐까. 차라리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인 걸까.
도서관 앞으로 경찰차가 도착하더니 바로 세 명이 내려서 내게 달려왔다. 그 중 가장 덩치가 큰 젊은 경찰이 나를 저지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큰 소리로 진정시킨다.

“신고하신 분이 누구시죠? 저 분이 소란을 피우신 건가요? 거기 선생님 흥분 가라앉히시고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벽으로 가서 돌아서세요.”

지금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차에 왜인지 그가 고마웠다. 뒤편에 있는 흰 벽으로 걸어가 등을 돌려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경찰들이 달려와 나를 제지한다. 들었던 손을 양쪽에서 강하게 잡아서 내리고 뒤로 향하게 한 뒤 수갑을 채운다.

“당신을 공공기물 파손과 위협, 상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양손을 결박한 경찰 중 한 명이 준비라도 한 듯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다. 내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머리가 하얗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전혀 모르겠다. 양쪽에서 팔을 잡은 경찰들이 힘껏 들어올리 듯 나를 붙잡고 간다. 도서관 현관문을 나서는데 밖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이 웅성대며 나를 지켜본다. 너무 부끄럽고, 무섭다. 누군가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머리를 푹 숙였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보며 내 옆을 지나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다.

“저기 이거 이 아저씨 전화기예요. 이걸 2층에서 유리창 밖으로 던지면서 다 나가라고 소리질렀어요.”

내가 던진 휴대폰을 주워왔는지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내민다. 뒤편에 서서 따라오던 여경이 폰을 건네받는 거 같다. 그리고는 내게 가져와서 보여준다.

“이거 선생님 폰이 맞나요? 확인되면 증거물로 사용해야 하니 맞는지 봐주세요.”

떨어지면서 깨졌는지 모서리와 액정이 전부 깨진 전화기. 내 것이 맞다.

“네. 제 꺼예요. 제가 유리창에 던져서 깬 것도 맞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갑자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거 같아 눈물이 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자꾸만 한숨이 나고 어이가 없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여경이 들고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이 깨져서 화면은 번쩍 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는다. 순간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이두용씨 휴대폰입니다. 혹시 어디신가요. 지금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액정도 깨져서 볼 수 없습니다. 번호를 확인하면 다시 전화하라고 하겠습니다.”

여경이 전화를 받더니 액정이 깨져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나중에 걸겠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처음 본 이 경찰이 난 말한 적 없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응? 저기요. 경찰관님. 내 이름은 어떻게 아셨죠? 내가 이두용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전화기 잠깐 바꿔주세요.”

그때 내 양팔을 잡고 있던 경찰들의 팔에 힘이 들어가더니 경찰차 쪽으로 급히 이동시킨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언제 선생님 이름을 알았다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하면 알게 되겠죠.”

“아니. 내 전화를 잠깐만 줘보세요. 아니면 끊지 말고 내 귀에라도 대줘보세요.”

경찰차 문이 열리고 양팔과 뒤에서 힘껏 나를 밀어 차 안쪽으로 넣는다. 버틸 겨를도 없이 나는 차 뒤 칸에 앉게 됐다.

“저기요. 전화기를 잠깐 줘보세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고요!”

내가 다시 소란을 부리자 도서관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한다. 휴대폰을 들어서 내 모습을 찍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에게 찍지 말라며 손사레를 치고 경찰 한 명이 경찰차에 올라 내 옆에 앉는다.

“그냥 조용히 같이 갔으면 되잖아. 이두용씨”

경찰이 왼손을 들어 내 목을 탁탁 치며 나지막이 한 마디 한다. 바늘 같은 걸로 찔렀는지 목 옆이 따끔한 것 같더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혈관이 타들어가는 것 같더니 이내 피가 굳는 것 같은 통증이다.

“내 이름을 어떠..케.. 알..”

“이두용 당신 때문에 이게 몇 번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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