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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글 Dec 14. 2022

우리의 소중한 세금을 지켜주세요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

5년간 대한민국 공군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했다. 예산으로 따지면 관리한 금액이 6천 억 원에 달한다. 운이 좋게도 가는 부서마다 대형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덕분에 이른 나이에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금 지출의 어두운 면을 보기도 했다. 아래는 작고 큰 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경험한 우리나라 세금이 쓰이는 현실을 다룬 이야기이다.




군에서 신규사업을 시작하려면 5년 전부터 계획을 수립해야 예산을 편성받을 수 있다. 그걸 중기계획 수립이라 한다. 그러니까 당장 뭐가 필요하더라도 5년이 지나야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기계획에 올라가도 그중에 우선순위를 판별해 순서를 매년 조정하기 때문에 평생 5년 후로 잡혀있는 사업도 있다.


그렇다 보니 당해연도가 되어 일단 사업이 시작하면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5년간의 목마름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아반떼 살 예산받아 놓고 그렌저를 바라요?”

“당신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면 이렇게 쓸 거예요?”


건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화장실 2개 계획해놓고 갑자기 화장실 3개를 만들어 달라거나, 공사하는 김에 부대 전체를 아스팔트로 포장해 달라거나 하는 등 어처구니가 없는 요구를 하면 어김없이 말해줬다.


솔직히 세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렌저 하나 사는 것보다 아반떼 두 대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쓰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뭔가 번쩍번쩍한 무언가를 바란다. 문제는 그 돈이 우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군에서 건설사업관리를 하면서 느낀 건, 내 돈이 아니면 그 욕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것이다. 내 돈이면 조금이라도 아끼며 적은 지출 대비 높은 효용의 소비를 고민하지만, 나라에서 받은 예산으로 뭔가를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을 원하며 비용 대비 효용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살 때에도 스펙을 보고, 가격을 보고,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듯이 건설사업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스펙을 반영하여 도면을 완성하고, 공사하고, 사용자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건설사업의 경우 정할 수 있는 스펙이 일반 상품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3만 원짜리 허접한 문을 달수도 있지만 300만 원짜리 으리으리한 문을 달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방도 3개 만들어야 하고 화장실도 1개 만들어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적이다. 3만 원짜리 문으로 계획했는데, 갑자기 300만 원짜리 문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결국은 방 하나를 없애야 한다. 문제는 결국 이렇게 사업을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 할 수 있는데, 처음 사업을 계획할 때 사용하는 사람이 몇 명이 될 것을 가정하고 방을 3개 계획했던 것이다. 근데 방을 하나 없애서 2개가 되면 원래 그 방을 쓰려고 했던 사람은 방이 없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업무 중 차 2대가 필요해서 아반떼를 2대 사기로 했는데, 제네시스 1대를 뽑아버리는 바람에 업무 중 차 1대를 여럿이 돌려 써야 하는 불편함을 누군가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관 1년 차에 병영생활관 개선 사업을 담당했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모든 예산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무슨 말이냐면, A를 하라고 예산을 받았는데, 그걸 B로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병영생활관 개선 사업은 말 그대로 병영생활관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이다. 하지만 병영생활관을 개선해야 하는 사업에 지휘관실을 새로 짓는 사업이 반영되어 있었다. 기존의 낡은 지휘관실을 리모델링해서 병사들 공간을 만드는 대신, 새로운 지휘관실을 신축으로 짓는 사업으로 살짝 변경된 것이다.


이것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방 하나가 없어진 예시, 아반떼 2대가 제네시스 1대로 바뀐 예시를 이해해야 한다. 즉,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는 국군장병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병영생활관을 개선하라고 받은 예산을 사용해 지휘관실 신축 사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화가 올라온다.


게다가, 기존 예산에는 반영되어 있지도 않은 건물 외부 치장을 병사들의 침상 사이즈, 비품 등을 줄여가며 예산을 조정해 사업에 반영하였다. 공군 부대를 가면 병사들이 침대 생활을 한다. 이불도 따뜻하고 공기도 아늑하니 근무 환경이 정말 좋다. 하지만 내가 육군 부대 병영생활관 개선 사업을 마친 후에도 육군 병사들은 딱딱한 콘크리트 침상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원래 병사들 침대를 구매해야 하는 돈으로 지휘관실을 지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예산을 몰래 전용한 사람만 알 것이다.


참고로 세금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침대와 콘크리트 침상의 차이는 이렇다. 침대는 부대를 이전하거나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옮기고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침상은 부대가 이전하면 버려진 쓰레기가 되는 것이고, 리모델링을 하면 철거의 대상이 되고 투자 비용은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병영생활관 개선 사업에 침대가 아닌 콘크리트 침상을 설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병사들 침대가 없어지고 지휘관실이 생겨난 사건이 거짓말 같은가? 구글에서 검색해보길 바란다. 더 심각한 현실은 위 사건의 문제를 제기하고 국방부 내부적으로 조사를 실시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의 중심에는 강원도 부대가 많았는데, 조사 대상에서 강원도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당시 임관 1년 차 소위였기 때문에 아무 의사 결정권이 없었다. 이미 사업은 그렇게 바뀌어 나에게 내려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네! 알겠습니다.”뿐이었다.




우리 세금의 낭비 사례는 군대뿐 아니라 밖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관에서 세금을 집행하는 일을 해보니 매년 말이면 왜 멀쩡한 도로를 다 갈아엎고 새로 포장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군대나 관공서나 똑같은 법의 영향권 안에 있다. 즉, 두 곳의 건설사업 프로세스는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우선, 건설사업 예산에는 건설사업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외에도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노무비와 재료비처럼 사업에 직접 사용되는 돈을 직접비라고 하며,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한 보험료 등은 간접비라고 한다.


이걸 공사가 끝나면 다 주는가? 그렇지 않다. 실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용하지 않은 예산은 모두 국가로 반납한다. 대부분 간접비에서 예산 반납이 발생하며, 군 건설사업의 경우 10%~20% 정도가 국가로 반납된다. 10억 공사를 하면 2억이 회수되는 것이다. 그걸 그냥 잘 보관하고 있다가 진짜 필요한데 사용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산을 이월(내년으로 옮기는)하거나 불용(예산이 더 이상 필요 없어서 완전히 반납)하면 다음 연도에 예산이 줄어들 것 같기 때문에, 이걸 억지로 억지로 사업을 만들어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면서 탄생한 사업이 연말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거나 멀쩡해 보이는걸 쓸데없이 갈아엎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국민연금이고 건강보험이고 아주 난리다.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다시 한번 걱정거리를 만들어줬다. 나야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왔지만, 내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살고 있어서 나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세금을 사용할 때 저런 짓거리만 안 해도 돈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올라온다.


복지국가라 불리는 캐나다는 어떨까? 정말 재미있는 건, 내가 캐나다에 와서도 국가 건설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 내 어느 시청의 인프라 개선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직접 본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예산을 사용할까? 솔직하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예산이 이월되거나 불용될 것을 생각해 억지로 돈을 내보내거나 불필요한 곳에 쓰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 회의를 주로 내가 참석했기에, 느낌 아니까. 현재 캐나다에서 1년 안에 끝나기로 한 내 담당 프로젝트는 2년으로 기간이 연장되었지만, 예산 집행 관련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캐나다는 낡은 아스팔트 바닥이라도 교통사고나 인명피해 위험이 없다면 억지로 공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남은 세금을 복지 비용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존의 잘못된 세금 사용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은 복지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고 할당하는지도 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렇게 할당된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집행하는 수많은 사업들이 있다. 그걸 따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소위 ‘먹거리’라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먹거리일까? 결국 그 사업들은 다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우리의 세금으로 집행하는 사업들이다. 그리고 먹거리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도 똑같이 세금은 낸다.


국가는 우리의 세금을 적절한 곳에 편성하고 제대로 집행할 책임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우리의 소중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이 글을 통해 이 점을 꼭 세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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