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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글 Dec 02. 2022

나의 해외 취업이 특별한 이유

지방대에 영어 포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지방대에 영어 포기자다. 수능 외국어 영역 5등급에 토익은 600점대였다. 영어 성적이야 노력을 통해 어떻게든 올릴 순 있겠지만, 지방대라는 학벌은 어떻게도 바꾸지 못한다. 편입한다고 해도 나이에 맞지 않는 학번에 표시가 난다. 대학원을 가도 마찬가지다. “학부는 어디예요?”라는 질문을 결국은 받게 된다. 취업이나 인생에서 한국의 학벌은 큰 의미로 작용하고, 그걸 아는 수많은 젊은이가 재수, 삼수, N 수를 통해 학벌을 높이려 그들의 황금 같은 젊음을 쏟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16일, 대한민국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나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오래전에 봤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수능이 끝나면 개운한 사람과 찝찝한 사람으로 나뉘는데, 나는 찝찝한 쪽에 속했다. 재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시 공부한다고 수능을 잘 볼 것 같지도 않았고, 솔직히 ‘대학 간판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라는 생각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지방대로 향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선배가 대기업 서류에서 줄줄이 탈락하는 모습을 보니 남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선배는 과탑이었고 남들 하나만 가지고 있는 기사 자격증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는데도, 지방대라는 학벌이 걸림돌이 되었다. 요즘에야 블라인드 채용이니 지역 인재 채용이니 해서 지방대생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지방대와 인 서울 졸업생의 자소서를 보면 티가 난다.


나도 지방대 졸업생이다. 지방대라는 타이틀이 문제가 아니다. 인 서울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스펙과 능력을 지방대 졸업생인 나는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어 성적이며 대외 활동 경력, 각종 공모전에서 받은 상장 등,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당연히 취업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대한민국 공군에서 학사장교로 생활하며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펙 화려한 인재들을 많이 만났고 같이 일도 많이 했다. 그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니까 좋은 대학에 간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서 놀았겠는가? 열심히 사는 친구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지방대생과의 수준 격차를 더 벌려놓는다. 그런 경험이 계속 축적되다 보니 지방대를 졸업한 나 마저도 지방대를 졸업한 친구와 일할 때는 선입견이 있었다. ‘과연 얘가 일을 잘할까?’


지방대 졸업생이라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졸업한 동기는 졸업과 동시에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은행 두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중 한 곳에서 나이 30이 되기 전에 과장을 달았다. 옆에서 그 사람의 노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를 여러 번 느꼈다. 그래야 지방대라는 간판을 뛰어넘는 커리어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의 저자는 대표적인 지방대생의 성공 모델이다. 근데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는 보통의 지방대생이 아니다. 여기저기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덕분에 유학도 다녀왔다. 지방대라는 간판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지방대 졸업생은 ‘나는 지방대라서 안돼’가 아니라 왜 지방대에 왔는가부터 곰곰이 고민하고 근본부터 바로 잡아야 ‘어떤’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군대를 이용해 스펙을 만들었다. 외국에 나가면 군 경력을 좋게 본다고 해서 군 경력을 커리어 경력으로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2년을 더 근무해 총 5년의 장교 경력을 채우고 대위(Captain)로 전역했다.


군 생활이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두가 기피하는 부대를 자원해서 갔다. 덕분에 골치 아픈 사건들도 많이 마주했지만, 결과론적으론 그 덕에 영어가 부족함에도 캐나다 로컬 기업 관리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 오니 한국의 군 경력을 굉장히 좋게 봐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캐네디언이 북한과 남한을 구분하지는 못하더라도 김정은은 알고 있어서 함께 이야기 나눌 소재도 많다.


사실 나의 군 생활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 공군 장교 선배나 후배 모두 나와 같은 일을 했고 같은 경험을 했다. 단지 나는 나의 경험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부서를 옮기게 된 것은 내가 일을 잘해서 프로모션이 된 것처럼 보이도록 했고, 계급에 따라 직급도 달리 표기하면서 점점 더 많은 책임과 업무를 한 것처럼 표현했다. 영문 이력서(Resume)를 봤을 때는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들 다 가지고 있는 평범한 경험과 경력들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스토리텔링’, 그게 캐나다에서도 먹혔다.

  *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있는 사실에 표현을 달리 표기한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지방대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좋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동기들을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가 제 시기에 승진하고 프로젝트 도맡아 하면서 좋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뭔가 공허함이 느껴졌다.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거라고 했다. 게다가 대기업의 연봉이라는 족쇄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상당히 꺼렸다.


과거에는 지방대밖에 못 간 나에게 굉장히 실망하고 자책하며 살았다. 함께 생활한 고등학교 동창들은 모두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고, 나만 지방에서 대학생활을 했기에 더 외로웠다. 근데 그 외로움은 내게 인생을 공부하도록 만들어줬고, 뒤를 돌아볼 기회를 줬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줬다. 지방대 졸업생이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은 줄에 서지 않고, 나만의 특별함을 만드려고 독자노선을 택했다.


그리고 영어 포기자였기에 많은 시간 들여 공인 영어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그냥 해외로 나와버렸다. 캐나다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내게 “영어로 말할 수 있냐?”라고 물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진짜로 영어를 못했으니까. 그러자 제정신이냐고 되물었지만 나는 상당히 제정신이었다. 누구나가 비슷할 것이다. 안정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의 그 두려움 말이다. 참 고맙게도 나에게는 안정된 그 어떤 것도 없었고, 그 현실이 도전을 주저하지 않을 힘을 실어 주었다.




지방대였기 때문에, 영포자였기 때문에 해외 취업이 가능했다. 이것들이 오히려 나에게 특별함을 만들어줬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스펙을 만들어줬고, 특별한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애초에 없애주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은 대학 간판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영어 점수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자격증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의 과거와 어떻게 살아갈지의 계획이 나의 특별함을 만들어준다. 똑같은 잣대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사람을 평가하면 결국은 등수가 생기고 일등과 꼴등이 생긴다. 하지만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벗어나 나만의 기준을 만들면 나는 언제나 일등이 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해!” 보다는 왜 좋은 대학 간판이 필요한지를 먼저 고민해보라.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보다는 무엇을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를 먼저 고민해보라.

“성공하는 인생을 살겠어!” 보다는 어떻게 사는 게 성공하는 인생인지를 먼저 고민해보라.


생각보다 인생은 꽤 단순한데, 세상이 그 단순한 인생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가 가진 것을 평가하고 자책할 시간에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다면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모두가 같은 문으로 나가려 서로 밀치며 뛰어간다면, 누구는 그 문을 통과하겠지만 누구는 낙오를 경험한다.


모두가 똑같이 하나의 좁은 문으로 향해 달려갈 때, 또 다른 나만의 문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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