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추구하는 본질인가 보통의 반대인가
장교로 임관한 후 첫 근무지에서 전입신고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첫 근무를 시작한다는 설렘 때문이 아니라, 그날 군 검찰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모든 컴퓨터를 털어 갔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를 하고 사무실에 갔는데 직원들은 없고 책상에 키보드와 마우스만 덩그러니 있었다. 본체는 이미 검찰에서 가지고 간 후였다.
넷플릭스의 D.P.가 인기를 끌었다. 출연 배우도 워낙 훌륭했지만, 군대 문제를 너무나 잘 다룬 드라마였다. 나라는 지킬 생각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지휘관부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욕만 먹고 진급도 못 하는 수사관, 무슨 일을 하든 의무복무만 채우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병사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다행히 D.P.가 방영되었을 때는 전역 후 이미 민간인의 삶을 살고 있어서 같이 욕을 하며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만약 군인의 신분이었다면 단순히 욕을 하는 영화 시청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군 생활을 하며 D.P.에서 다룰 법한 부정부패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INFJ이다. I가 100%에 가깝고, N이 70%, F가 75%, 그리고 J가 90%인 INFJ다. INFJ는 이상주의적이고 원칙주의적이며 삶에 순응하는 대신 삶에 맞서 변화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성격이다. 군 생활 내내 그 성격이 문제였다. 규정이 있으면 무조건 따르는 게 순리라 생각했고, 잘못을 발견하면 바로 고치려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첫 근무지에서 전입신고를 한 날, 선배 장교가 업체로부터 로비와 술접대를 받는다는 의혹으로 군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지만, 그 선배는 바로 전역 신청했다. 부서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된 업체에서 술집에 돈을 미리 내고, 그 선배는 필요할 때마다 그 돈으로 술을 마신 사실을 말이다. 즉 부서원 중 누군가가 신고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선배랑 함께 군 생활했다면 그 모습을 보고 신고했을까 묵인했을까?
이민이라는 선택지가 내 눈앞에 보이게 된 데에는 군 생활이 크게 한몫했다. 군대는 바른 소리 대신 맞장구를 원했고 규정 대신 자신들의 이익과 지시를 따르기 원했다. 그런 사람들은 옳은 소리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아마도 본인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군대에서 바른 소리를 내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깨닫고 전역날까지 조용히 살았다. 내 신념을 판도라의 상자 속에 넣어 자물쇠로 꼭꼭 잠가놨다. 그리고 전역 후에 바로 한국을 떠났다.
나의 군 생활 1년 차 때, 관용차 사용 관련한 강력한 지침이 새로 만들어졌다. 일부 초임간부가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업무 시간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다가 헌병에게 잡힌 사례부터 관용차를 몰고 근무지를 이탈해 여행을 다녔다는 사례까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할 정도의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후 관용차의 운전석과 조수석 문쪽에 관용차임을 나타내는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는 대왕 스티커가 붙여졌다. 그런데 부서장은 자신의 차에는 스티커를 붙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나의 군 생활 2년 차 때, 부서장들이 자신의 차에 스티커 붙이기를 왜 꺼려하는지 알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실 초임 간부의 사적 이용은 별거 아닌 일탈 정도였다. 부대 지휘관이 출장을 목적으로 출장증을 발급받아 본인의 사적 목적을 위해 관용차를 사용하고 있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전역 후 펜션을 운영한다고 근무시간에 관용차를 타고 그곳에 가는가 하면, 주말에 자격증 시험 보러 출장증을 발급하고 관용차를 타고 시험 보러 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휘관의 운전병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 관용차의 기름은 세금으로 구매하고, 출장을 가면 출장비도 세금으로 지급된다
더 웃긴 건, 내가 이 운전병과 친하다는 사실을 지휘관이 알게 되었고, 나에게 운전병 실 출입을 금지시키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신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고하려면 지휘관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지휘관을 신고하는 데 어떻게 지휘관 결재를 받을 수 있을까?
한때 모 참모총장의 관용차 사적 이용이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운전병에게 자기 아들을 클럽에 데려다주라고 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별을 네 개나 달 수 있었을까?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문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은 초임간부나 햇병아리가 아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지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데, 비리를 조사하는 감사팀이 어떻게 지휘관을 고발하고 처벌할 수 있을까? 지휘관을 처벌하는 대신 규정과 지침을 만들어 지휘관에게 암묵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용차로 펜션에 가고 시험을 보러 다닌 그 지휘관도 결국 별을 달았다. 위 사실을 몰랐다면 그 사람이 별을 달던 달을 달던 상관없었겠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군대라는 조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변화를 만들어 내는 대신 이민을 통해 내 삶을 바꾸기로 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의 연금을 위해 내가 낸 세금이 쓰인다는 것이 아까웠다.
캐나다라고 비리의 청정구역일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군 생활할 때보다 어른이 되었고 세상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마냥 이상적이고 원리 원칙적일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캐나다에서 나의 이상과 충돌하는 상황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의 이상을 그대로 실현하는 국가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이상주의자에 원칙주의자라 하더라도 결국 판단은 내 기준이다. 기준이 문제면 그 또한 이상이라 부를 수 없다. 한국이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단지 내 이상과 원칙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캐나다의 이상과 원칙이 이상해도 내게 잘 맞는 것일 수 있다.
세상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상(理想)이 과연 있을까? 생명이 위독한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장기를 가지고 살릴 수 있는 다섯 명의 생명이 있다. 어떤 판단을 한 의사가 이상적일까? 나는 더 이상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 바꾸기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와 같이 판단하는 사람들 속에 어울려 살기로 했다. 이상(理想)인지 이상(異常)인지는 대중이 판단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 개인의 일부 경험담이지 군대의 모든 이가 저렇게 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장병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현재 군 생활 중이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