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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늠 Jul 23. 2022

문제의식이 문제다

생활의 달인을 이야기하다 떠오른 혐오의 피라미드

 지식노동자인 지인 A를 만났다. 생활의 달인 단골 소재인 시장 골목 상인들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요리에 온 마음을 다하는 그들의 노력과 한 가지를 끝까지 해내는 이들의 끈질김을 높이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얘기를 듣던 A는 그 프로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무 열심히 사는데 사는 모습이 늘 똑같고 어렵고 궁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안쓰럽다고 했다. 쏟아붓는 정성 대비 수익이 크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미화하여 보여주는 게 불편하다고 말이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시장의 작은 음식점에서 평생 먹거리를 만들고, 살림에 보태고자 집에서 부업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하다 고수가 된 이들. 내 주변에서 각자의 삶에 충실한 소박한 서민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모습을 보면서 난 신기하고 때론 감동했다. A는 지식과 취향을 이야기하다 보면 날 늘 백전백패로 만드는,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생활의 달인 속 등장인물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A에게 난 굉장한 거리감을 느꼈다. 


 혐오의 피라미드라는 게 있다. 이는 편견과 혐오가 어떻게 진화하여 인간을 괴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1단계는 차별하려는 마음과 태도이다. 2단계는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는 혐오 표현이다. 3단계 차별, 4단계 증오범죄, 그다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집단학살이 있다. (『헤이트』 마로니에북스 54쪽 참조) 홀로코스트, 한국전쟁 이후 좌우 이념 갈등이 이 피라미드의 정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의 끝을 집단학살로까지 확대해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지식 제공 노동자인 A가 생활 편의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느끼는 안타까움에 깔린 감정을 나는 상대적 우월감으로 보았다. A가 보기에 사람과 노동에는 급이 있었다. 2016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고위 공직자가 국민을 개돼지로 칭하며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발언했던 수준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다.


 차별과 편견을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좋은 공동체인지 아닌지를 나눈다. 대다수가 가난했던 시대를 지나 한국은 가계 소득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통계청이 2021년 12월 배포한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보면, 2021년 3월 말 기준 순자산 보유액 1억 원 미만 가구가 30.3%이며 1억~2억 미만이 15.9%, 3억 원 미만 가구가 전체 가구의 58.7%, 10억 원 이상 가구가 9.4%였다. 국민의 대략 절반 정도의 소득 수준이 고루 상승한 셈이다. 교육 수준의 향상이 소득 수준의 향상을 이끌었다. 


 소득이 올라가는 수준과 인식의 개선은 함께 가지 않는다. 공용 구간에서의 흡연,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동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사회성의 좋고 나쁨으로 보았던 시대가 있었다. 이 문제가 해결해야 하는 쟁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때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변화는 조금씩 이루어진다. 문제인 줄도 몰랐던 우리 안의 편견 또한 이런 식으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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