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각 상황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시야는 이 '생존'이라는 것에 치중되어서 적자생존의 개념은 어느새 이기주의로 이어져버렸다. 그건 나도 그렇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하고, 그런 사고관이 문제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남을 돕더라도 우선 내가 잘 살고 봐야 하지 않겠어? TV에서 전재산을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헌신적인 척해봐도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선뜻 내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무엇이 되든 간에.
방과 후 시간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와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읽었다. 학교 수업 때처럼 시에 쓰인 표현 기법을 분석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독서토론 방과 후였기 때문에 그날의 책이었던 <라틴어 수업>과 연관 지어 대화했다.
타인을 위한 준비. 내 17년 인생에서 한 번도 타인을 위해본 적 없는 건 거짓말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집에 올 손님을 위해 청소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있을 흔한 기억. 추억도 되지 못할 수많은 기억일 텐데. 그 사이의 차이점은 '연탄만큼 뜨거웠냐'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연탄이 될 수 없다. 연탄의 온도만큼 체온이 상승하면 이미 죽고 없을 테지. 200도가 넘는 온도이니 말이다. 방과 후 시간 재미 삼아 말했다. 모두 웃었고 나도 그랬다. 그것이 물리적 온도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랑의 온도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의 온도. 소위 말하는 훈훈함 비슷한 것.
그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가 하고 있었다는 후원. 후원받은 아이의 소식을 담은 월간지가 왔을 때 꽤나 뿌듯했다. 내 도움의 결과이니까,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뜨거웠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따뜻하네,라고 할 수는 있어도 뜨겁다, 라는 건 아니었다. 그건 딱 거기까지인 거다. 훈훈하고 따뜻하지만 뜨겁지는 않은. 딱 거기까지.
누군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게 무엇을 문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부러졌다 붙은 다리뼈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간이 누군가를 돕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문명이 탄생했다, 는 말이다. 나는 이 두 사람, 어쩌면 내게 피가 조금은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둘이 매우 뜨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담처럼 말하는 뜨거운 관계가 아니다. 정말, 뜨거웠을 것이다. 자신의 안전 하나 보장할 수 없는 원시 시대에 타인을 돌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냥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라 해도 될 것이다. 식량을 평소보다 더 많이 구해야 하고 내 시간을 쪼개서 그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그 시대 타인을 위한다는 건 내 생존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다 포식자의 눈에 뜨이거나 자신마저 다치는 순간이 죽음의 위로겠지.
이것은 그저 다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따스한 다정으로 될 것이었으면 이미 세상은 평화로운 천국일 것이다. 하루가 하루일 뿐인 원시 시대에 다정으로 헌신이 가능했을까. 하루에 내 과거도, 내 미래도 생각할 수 있는 현대마저 비정하다. 현대인이 과거의 둘을 만난다면 저도 모르게 "아, 뜨거!"하고 외칠지도 모른다.
그 둘을 이은 것은 애정이고 사랑이다. 아니. 어쩌면 사랑 너머의 무언가. 어쩌면 하루가 하루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어쩌면 마음만이 아니라 몸마저 뜨거웠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
다리가 부러진 그를 부축해 데려가 돌보는 동안, 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를 공격하진 않을까. 당장 내일이라도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진 않을까. 지금이라도 위협 덩어리인 저 자를 죽여야 할까. 생존을 위한 이성이 속삭이는 모든 목소리를 잊고 서로는 서로를 살렸다. 문명을 만들었다. 끝은 시작으로 변모했다.
이 이야기를 읽자마자 헌신적인 삶을 살 거야! 란 다짐을 하는 것은 무리다. 오랫동안 깊게 뿌리내린 생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평생을 걸쳐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 것이고 타인보다 나를 우선시하겠지. 마음뿐 아니라 몸마저 달궈지는 일이 찾아오지 않고 오더라도 내가 피해 갈지도 모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 자신에게 다가오는 헌신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각각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은 생존을 목표로 한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특성이 있다. 하지만 생존을 넘어 기록의, 이어짐의 비밀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몸마저 용광로처럼 달궈지는 사랑이 있다. 다정을 뛰어넘는 사랑이 있다. 우리의 기록은 사랑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