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사이사이 해가 뜨면 다시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밤새 요란한 비가 내린 아침이면 새하얀 볕이 이불 위로 드리웠고 그것만은 여름의 것이 아닌 듯 뽀송뽀송 따스하기만 했다. 유독 선선한 아침이라 창문으로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기도 했다. 여름의 존재하에 가질 수 있는 순간들.짧게 지나가버리는 이 순간들은 힘을 잔뜩 모았다가 써버리는 햇살에 의해 완전히 장악될 것이다.
덥고 자주 기분이 처지기도 하지만 조금 뒤로 항상 좋음이 따라온다. 마른 목을 축여주는 물 한잔,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뜨거운 태양을 덮은 세찬 소나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 여름 다음에 오는 가을까지. 그런 좋음이 있어 또 기다리게 되고 기억 곳곳마다 진한 여름이 물든다. 물들지 않고 배기지 못하는 계절에 우리도 모르게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없이 보내는 것을 알까. 그렇게 휘둘리다 결국에는 잊지 못하게 되는, 마치 사랑처럼. 그것도 치명적인 사랑일 것이다.
지치면 한 박자 쉬었다가 기다리고 있던 순간을 만났다 가면 된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여름이 나는 어딘가 안심이 되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