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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샹송 Aug 04. 2024

여름방학

새끼 제비들이 쑥쑥 자라나자 집이 좁아졌다. 집 마당도 덩달아 좁아졌다. 새끼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기 시작할 무렵 조카 둘이 잠자리채와 곤충집통을 챙겨 들고 외갓집에 왔다. 아이들 온 김에 나도 같이 여름방학을 보낸다.


외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빨간 고무 대야로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줬다. 동그랗고 상대적으로 높이가 높은 대야는 첫째 조카의 것이고 타원 모양의 높이가 낮은 대야는 둘째 조카의 것이다. 아이들은 오후면 적당히 데워진 대야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좁다는 불평도 없이 신이 나서 물놀이를 한다. 마당에 수시로 잠자리와 벌이 날아다녀 나는 아이들에게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그늘 아래 앉아 곁을 지킨다.  


더워서 다리라도 고무대야 안에 담그고 있다 보면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그럴 때는 저절로 하늘을 바라다볼 마음이 생겨난다.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 지붕 너머로 하얀 구름이 피어났다. 마당 빨랫줄에 아이들 옷이 아주 바짝바짝 말라가고 매미 소리가 저 멀리서 쉬지 않고 들려오는데, 그래 덥긴 해도 이래야 여름이다 싶다.


아이들처럼 대야 안에 몸을 푹 담그고 아무런 근심도 없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는 생각에, 어릴 적 여름이면 날마다 강가에 가서 수영하던 때가 떠올라 그립다. 지금도 마음먹으면 가서 할 수 있을 텐데 아마 그 시절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없어 그런가 보다.


마당에서 새끼 청개구리가 운 없게 아이들에게 잡혀 며칠 곤충채집통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파리와 이끼를 놓아주고 물도 채워주고는 이름도 지어준다. 온통 초록색 틈에서 청개구리 찾기도 하고 뚜껑을 열어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더니 삼, 사일이 지나자 시들해진다.


잘 놀다가도 잠이 들 무렵이면 둘째 조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바탕 울음을 터트린다. 외할머니는 손주를 등에 업고 마당을 서성이며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나면 엄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다. 몇 밤 자고 나야 엄마가 올까 아이는 매번 고사리 손을 접어 본다.  


나중에 크면 기억이나 할까. 엄마 보고 싶어서 운 기억보다 오빠랑 재미나게 물놀이하던 기억이 더 크게 남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들리는 매미소리에,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난 것을 볼 때에, 잠자리 떼나 청개구리를 보고 외갓집에서 보냈던 여름방학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원히 소진되지 않을 재산 같은 추억이다. 내게도 내년이 되면 벌써 일 년이 지나 있을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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