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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샹송 Aug 07. 2024

내가 살던 고향은

시골독립기

 길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핀 봉선화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는 너무 해서인지 예쁜 꽃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데 커서 보니 색깔이 참으로 곱고 예쁘다. 그리 예뻐 꽃이 지고도 보려고 손톱에다 물을 들였구나 싶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언니들과 머리 맞대고 돌로 꽃을 빻던 기억이 다. 추억은 렇게 자주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지만 금방 시들어버린다.


 많은 시골 마을이 그렇듯 큰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이곳에도 350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어릴 적에는 팽나무로 알고 있었는데 실은 느티나무였다. 작년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고 나무 아래 늠름한 머릿돌이 놓여 있어 알게 되었다. 나무가 크니 그늘도 커서 친구들과 자주 놀이터 삼아 놀던 곳이다.


 마을 뒷산으로 향하는 골목길의 회색 담벼락. 초록잎 가득한 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서있고 그 아래로는 키 작은 채송화가 피어나는 곳. 이 담벼락은 나와 친구들한테 발과 엉덩이로 많이 밟혔는데도 여전히 튼튼하게 세워져 있었다. 가끔 잘 있나 하고 괜스레 눈길이 가는 곳.


 다리는 너무 높아졌고 강은 너무 넓어졌다. 지금은 물놀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낯설다. 흐르는 물도 세월 따라 변해 전과 달리 위험하게만 보인다. 겉보기에는 같아도 늘 새로운 물이 흐르고 있었을 테니, 나는 그 물을 알면서도 잘 모르겠다. 마을의 어른들이 나를 보는 것도 비슷한 느낌일까.




꼬꼬마 시절 매일 헤집고 다녔던 동네의 모든 길을 지날 때마다 반갑지만 서글픈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사라진 동네는 텅 빈 것만 같아 어른들은 이 허전함을 어떻게 견뎌내었을까. 또 어째서 친구들은 다 떠나고 난 곳에 홀로 돌아온 것일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이 들었다. 초라하기도 한 고민이다. 이처럼 추억이 깃든 곳은 즐거움만을 가지지 못한다. 추억은 생각을 쫓아가는 것, 그러다 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런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일터, 어째서 나는 이렇게 눈물 많은 슬픈 어른이 된 걸까. 아니면 어린 시절에도 그랬던 걸까.

아이가 약간 패닉 상태인 것 같아 혜원은 짠해졌다. 고라니가 죽었을 때 모두들 놀랐지만 같은 장면을 목격해도 효진이는 이튿날 다시 명량해졌고 승호는 그날 이후로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아이들도 기질이 다르니까... 그렇게 그 모습으로 다들 어른이 되는 걸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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