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때문에 겪은 황당한 사건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매년 흔하게 일어나는 자연재해로는 참 여러가지가 있다. 한국도 장마철이면 항상 뭐가 떠내려간다던가 일본의 경우 쓰나미로 고생을 한다던가 산사태가 난다던가 하는 일들이 있는데, 독일은 눈사태가 심심치않게 일어난다.
독일에서 눈과 관련된 기억은 사실 참 많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독일 국립공원이 있는 하르츠(Harz)에 위치한 곳인데, 독일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덕분에 주변은 마치 야쿠츠크(Yakutsk: 러시아의 추운 지역)만큼이나 춥고, 눈덮인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래는 러시아의 한 지방인 야쿠츠크의 모습이다. (위 그림출처 | 아래 그림 출처)
독일의 하르츠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모자만 쓰지 않았을뿐이지 야쿠츠크의 저 모습과 굉장히 비슷했다. 매 년 폭설이 내릴 뿐 아니라 사계절 기온이 독일 평균 기온에서 늘 최소 -5도 더 낮았다. 겨울에는 매우 추웠지만 여름에는 매우 쾌적했다.
나는 하르츠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며 평생 볼 눈을 한 번에 다 봤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정도로 많은 눈을 봤다. 아무도 가지 않은 폭설이 내린 장면은 마치 딘의 뮤직비디오 what2do의 한 장면 같았다.
광활한 눈 덮인 배경에 단 한 사람의 발자국은 내가 하르츠에서 많이 만들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요즘의 독일은 많이 더워진 바람에 최근 10년 사이 독일에서도 날씨를 비롯한 많은 것이 변했다. 독일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눈이 많이 오는 독일도 아니고, 정말로 추운 국가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우 따뜻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년 한 가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겨울에 폭설이라도 한 번 내리면 마치 눈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 마냥 마비되는 교통 시스템이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나는 뜬금없이 아침부터 버블티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한창 코로나 땜에 홈오피스 중이었기에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얼른 버블티를 하나 사오려고 중앙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나갔는데, 한 마디 사전 예고도 없이 폭설로 인해 모든 지하철이 끊겨 버렸다.
그러니까 오후 미팅들이 줄지어 예약이 되어있는데 집에를 못가게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일단 핸드폰으로 미팅 링크에 접속한 후, 동료들에게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독일은 워낙에 기차 연착이나 기차가 사라짐(?) 또는 각종 공공수단의 문제점이 흔하게 있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나 소식을 듣는 사람이나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어떻게보면 참 어이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독일의 느린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 모두가 이상할 정도로 여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 그냥 편안히 앉아있었다. 미팅은 그냥 카페에 앉아 전화통화로 참석을 했다. 한 세 시간쯤 뒤부터 지하철이 다시 생겨서 그것을 타고 집에 왔을 땐 이미 퇴근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지하철의 경우는 단 구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왜 장거리를 다니는 기차는 매번 폭설/태풍/장마 등등의 자연재해로 운행이 정지되거나 취소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처럼 독일에서 살면 이런 문제들은 정말 너무 흔한 일이다보니 독일 사람들은 문제로조차 인식을 안하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