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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Jun 15. 2023

장발(長髮)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주체의식 확립과 건전사회 기풍 조성'에 반했다. 

  거리에 나서면 개성이 넘친다. 

  꽁지머리도 있고, 백고머리도 있다. 너덜너덜 찢어지고 총 맞은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탱크톱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맵시를 뽐낸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이런 모습은 흔하다. 칠십 년대 초반엔 어림없던 일이다.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를 미국산 다이얼 비누로 감고 두세 번 헹군다. 거꾸로 숙인 채 앞뒤로 털며 정성스레 말린다. 머릿결 나빠질까 봐 자연건조 시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윤기 자르르 머리칼이 어깨 너머 등줄기에 살랑댔다. 약한 바람에도 머리칼이 귀 볼을 건드린다. 삼 년 넘게 공들인 머리칼의 애교다. 단발령에 손발을 자를지언정 머리를 자를 순 없다. 는 조선 시대 선비의 각오만큼이나 굳은 결의로 애지중지 길러온 보답이다. 


  종로에 나갈 채비를 한다. 구제품 시장에서 구입한 통이 큰 멜빵 청바지에 흰색셔츠를 입으면 끝이다. 집을 나서기 전 운동화 끈을 단단히 쪼여 매는 것이 중요하다. 여차하면 줄행랑칠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장발이나 미니스커트는 단속대상이다. 군사정부 하에서 ‘주체의식 확립과 건전사회 기풍 조성’에 반한다는 이유다. 인권이나 개성은 국가정책 앞에 용납되지 않았다. 

  보통 시민들은 불만이 없었다. 잘 살기 위한 나라의 정책이라 믿고 따랐다. 단속은 이곳저곳에서 불시에 이루어졌다. 강력한 제재에도 팝 음악과 장발, 미니스커트 열풍은 젊은이들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려 했다. 젊은 가슴엔 자유를 향한 욕구가 응축되고 있었다. 무교동 쎄시봉 음악 감상실에선 자유를 향한 욕구가 음악을 통해 발산되었다.    

  

  단속에 걸리는 순간 공들여 기른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추풍낙엽이 된다. 장발족의 도주는 백골단에 쫓기듯 절박했다. 붙잡힌 몇몇은 경찰 바리깡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이마에서 목덜미까지 고속도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들은 자유를 쟁취한 영웅처럼 그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미니스커트 여대생과 경찰 사이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스커트 끝을 잡아당기고 무릎을 굽혀 조금이라도 길게 보이려 기이한 자세를 취하고, 애교작전으로 앙탈도 부려본다. 경찰은 넘어가지 않으려 억지 위엄을 부린다. 위아래를 훑으며 “똑바로 서”라며 괜한 큰소리를 친다. 여성 허벅지에 줄자를 들이대는 성추행 오해보다 사회 기풍 조성이라는 단속이 중요했다.

  미니스커트는 무릎 위 이십 센티장발은 머리가 귀를 덮거나 뒤 머리카락이 옷깃을 덮는 경우파마 또는 단발머리 형태가 단속대상이다.   

  


  방심하다 결정적 실수를 했다. 동생과 창동 스케이트장에 가던 길에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공교롭게 버스 정류장이 파출소 정문 앞에 있었다. 내리는 순간 경찰이 불렀다. 장발 단속을 직감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찰도 호루라기를 불며 노상강도 추격하듯 빠르게 쫓아왔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뛰는 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경찰을 따돌리고 나서야 파출소 앞에 동생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진퇴양난이란 이런 경우인 것 같다. 동생을 찾으러 가자니 바리깡이 문제고, 도망치자니 동생이 걱정이다. 동생은 집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경찰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계속 쫓아왔다. 그가 뛰면 나도 뛰고, 그가 쉬면 나도 쉬었다. 혼자 도망치면 그만이지만 동생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경찰과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달아났다.      


  “야! 너 계속 도망가면 공무집행 방해로 집어넣는다. 거기 서지 못해.” 

  “아저씨, 왜 끈질기게 쫓아와요?” 

  “학생 놈이 약을 올려?” 

  “누가 약을 올려요? 계속 쫓아온 게 누군데요?” 

  “야 쫓아온 경찰이 잘못이냐? 도망가는 네 놈이 잘 못이지.” 

  “장발이 무슨 큰 죄라고 끝까지 쫓아와요? 강도도 아닌데!”     


  비닐하우스 사이로 빠져나가고, 살얼음 덮인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며 달아났다. 쫓고 쫓기길 한 시간이 훨씬 지났다. 창동에서 성북역까지 4킬로를 도망쳤다. 경찰도 흙투성이가 된 채 끝을 볼 요량으로 쫓아온다. 장발이 큰 죄로 둔갑된 듯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경찰을 따돌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왔는지 동생은 지친 듯 자고 있었다. 울고 있는 동생에게 파출소장이 차비를 주었단다. 또 하루 장발을 지켰다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은 ‘그때 그 시절’ 토크쇼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장발이든 빡빡 깎든 각자 개성이다. 남성이 화장하고 미장원에서 파마도 한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개성이다. 여성이 선장을 하고 군대도 간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운다고 뭐랄 사람이 없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런데도 ‘헬조선(hell朝鮮)’을 외친다. 변화를 따라가기에 나이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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