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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샛별 Oct 11. 2023

4. 한 달째 별거 중

애정탐구

10월 한 달간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는 어쩔 수 없이 친정과 시댁에서 각자 머무르기로 했다.

16층이야 그까짓 거, 다리만 튼튼하다면야 오르내릴 수 있겠지만

시기가 하필, 연달아 두 번이나 유산을 경험한 내가 세 번째 임신을 했을 때라니.

성 안에 갇힌 고독한 라푼젤처럼 칩거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가혹한 형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 달간 밖에 못 나가는 건 너무하다 싶어

우린 주말 부부를 자처했다.


평일엔 각자의 본가에서 지내다가 주말에 만나 데이트를 한다.

우리가 안쓰러웠던 양가 부모님은 격주로 주말마다 집을 비워주셨고,

우린 양쪽 집을 에어비앤비처럼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웠던 엄마밥을 먹으니 괴로웠던 입덧도 사그라들었다.

곧잘 토했던 내가 엄마밥은 두 그릇씩 해치운다.


밤마다 남편과 통화를 할 때면 연애할 때가 떠오른다.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방 안에서 숨죽여 통화하고,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던 말투와 목소리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으로선 그런 말랑한 감정보다는, 가족과 생이별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보고 싶다’와 ‘그립다’의 차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


결혼을 하고, 각종 생리현상을 트면서 남녀 사이에서 가족이 되어버렸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남편과 정이 많이 들었다.

정이 든다는 건 뭘까.

함께 밥 먹은 횟수가 늘어날수록

싸우면서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할수록 정은 쌓이는 걸까.


확실한 건 고운 정으로 가득했던 연애 시절보다

미운 정까지 겹겹이 쌓인 지금이 나는 더 좋다.

고운 정과 미운 정이 번갈아 쌓여 높다란 성이 된 마음 때문인지

나는 남편이 그립고, 주말이 기다려진다.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도대체 왜 고치는 거냐고, 불만 가득했던 공사가

결혼 일 주년의 마음을 확인하게 해 준다.

이젠 다신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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