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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23. 2022

‘IMF’가 톰 크루즈가 활동하는 기관?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스페셜 2화

  

  2006년 11월의 어느 날, 모 회사의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스펙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류전형은 통과해서 면접장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면접에 임하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차피 또 떨어지겠지?’


  이곳 말고도 이미 몇 군데 회사에서 면접전형까지는 갔었다. 오늘처럼 말끔한 정장 차림에 갖은 언변을 다 동원해 날 뽑아달라고 부르짖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겨 정장 대신 평소 학교 오갈 때 입는 옷을 그대로 하고 가는 등 성의를 보이진 않았다.

  대기실에서 약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지원자가 우르르 함께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을 뽑아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자리했는지 다들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래서 나만 유독 튀었다. 하지만 면접관들이 나의 옷차림을 문제 삼지는 않아서 고마웠다. 설사 그걸 가지고 트집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정장 입고 오면 뽑아주실 건가요?”


  라고 대응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질문 내용은 다른 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 왜 여길 지원했느냐?

  - 자신의 특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자신이 회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엔 어떤 것이 있느냐?     


  그런데 안경을 쓴 좀 젊어 보이는 면접관 한 분이 대뜸 이런 질문을 하셨다.


  “IMF가 뭐하는 곳인지 혹시 아시나요?”


  교양수준을 파악하는 질문인가? 그래도 질문이 이거라면 너무 쉬웠다. IMF를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지원자들은 다들 다음과 같은 답변을 늘어놓았다.     


  - 국제통화기금입니다.

  - 워싱턴에 자리한 국제연합의 부속기구이지요. 

  -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입니다. 

  -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1946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모조리 끄집어 내었다. 물론 나도 위의 답변들 중 하나를 골라 대답했다.

그런데 내 옆의 남성 지원자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임파서블(Impossible) 미션(Mission) 포스(Force)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3>라는 영화 보니까 톰 크루즈가 거기서 일하던데요.”


* 2006년에 개봉해서 국내에서도 큰 흥행을 거두었던 <미션 임파서블3>. 근데 시리즈 중에서는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안 좋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이 사람은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면접관은 누구나 다 아는 IMF의 뜻풀이를 대라는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지원자처럼 기발하고 재치 있는 대답을 분명 원했을 텐데 이분을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해 너무 뻔한 대답만 늘어놓은 것이었다. 


  ‘난 떨어지고 이 사람은 붙겠구나!’


  이런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 공고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너무도 특이한 대답을 한 까닭에 이름을 기억해 놨던 그 남성 지원자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아, 명색이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왜 그리 창의적으로 대답하지 못했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에필로그)     


  2016년 3월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최지운씨와 면접을 보고 싶은데요.”

  “네?”


  예전에 ‘사람인’이라는 구직사이트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올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걸 보고 모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연락을 취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의 길을 포기하고 시간강사를 병행하며 소설가의 길을 걷던 나로서는 반갑다기보다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래도 먼저 내게 관심을 보이고 연락을 준 게 고마워 면접에 응했다. 대표를 비롯해 고위임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면접실에서 나를 마주보며 앉았다. 이들은 ‘사람인’ 사이트에 올려놓은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물었다. 답변하기 곤란한 것 없던 터라 술술 대답했다.


  “최지운씨, 연봉은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마 취업에 절실했던 때 같았으면 회사 내규를 따르겠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샐러리맨에 미련이 없던 나는 그런 가식적인 대답을 하기가 싫었다.


  “제 친구들 보니까 이 나이에 연봉 4천 이상씩은 받더라고요. 저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아까 말씀하시기로는 지금 두 군데 학교에 출강하신다고 하셨는데 만약 채용되시면 정리하실 수 있습니까?”

  “아, 그건 안 됩니다. 이미 6월말까지 학생들을 책임지기로 약속했는데 일방적으로 파기하다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제가 채용이 되지 않는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역시 이제 취업에 목을 매지 않기에 할 수 있는 패기 있는 답변이었다. 고작 한 달에 몇 십만 원 강사료 주는 학교를 위해 연봉 4천이 넘는 직장을 포기하다니. 나는 이런 대답을 늘어놓았으니 당연히 불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회사 인사담당자는 연봉도 원하는 대로 주고 6월말까지 출강을 하는 동안에는 스케줄을 조정해 줄 테니 함께 일해보자고 합격 통보를 전해주셨다. 

  이 정도까지 성의를 보이는데 도저히 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서 몇 달 못 가 그만두긴 했지만 그 회사에 입사했다. 아마 내가 소설가로서의 포부나 비전이 없었다면 그곳에 뼈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많은 월급을 준 회사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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