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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유우 Jan 25. 2023

꽃다발

꽃다발을 받고 집에 오면, 포장을 뜯고 꽃을 모아 화병에 담는다. 어디서부터 잘려온 아름다움인지 생각한다. 꽃다발을 준 사람을 생각한다. 오래 눈에 담는다. 겨우 눈을 떼도 꽃의 향기가 방안 가득 퍼지면 또 한 번 쳐다본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가지고선 최고로 화려한 모습이다. 얼마 남지 않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원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왜 꽃다발을 받을 때마다 그 사실을 굳이 상기시키게 되는 걸까. 꽃다발을 받을 때 기분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그 생각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 그 생명은 어떻게 이토록 슬프게 아름다울까. 그 사실에 지배될 때는 꽃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기도 한다. 나로 인해 마지막을 보게 되는 걸까.


나는 꽃다발이 나와 깊은 대화라도 했던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꽃다발을 받는 게 좋다. 꽃의 헌신을 생각하면 너무 아름다워. 잘려버린 꽃들이 생생하던 모습을 뒤로하고 마지막까지 꽃잎을 후드득 떨어뜨린다. 마르고 말라서 형체가 변할 때까지. 아름다운 것만 좋아하는 나는, 꽃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기에 꽃다발을 받는 게 좋다. 꽃의 마지막 외침과 헌신을 경건하게 바라본다. 미안한데, 너무 아름답다.


꽃의 헌신,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경외심을 느낀다. 이토록 여려 보이는 꽃이 얼마나 용감하고 아름다운가. 이렇게 좋지만, 일시적임을 알기에 허무하기도 한 것이다. 끝이 있다는 걸 알려면, 죽음만큼 명확한 게 없다. 헌신의 끝에 죽음이 있다면, 이건 아름답기만 하다고는 할 수 없다.


꽃다발.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주는 꽃다발. 여전히 좋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신경 쓰이고, 여전히 눈을 감게 된다. 마지막이 있어도 보고 싶고, 마지막까지 눈에 담고 싶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던데, 내가 꽃다발을 사랑하기라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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