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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20. 2022

자매 일기3: 동생이 집에 개구리를 들여왔다

동생은 개구리를 사랑했을까

동생이 몰래 개구리를 들여왔다.

살면서 개구리를 직접 볼 기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동생 방을 슥- 여는데

동생 배 위에 개구리가 떡하니 누워 있었다.

동생이 개구리인지 개구리가 동생인지 헷갈릴 정도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동생에게 개구리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성은 개씨요, 이름은 비얀.

개비얀이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다.

그래서 굴개라고 내가 지어줬다.


왜 굴개냐면 보통 개구리는 개굴 개굴 운다고 생각하지만 

얘는 암컷이어서 잘 울지도 않고 울어도 '꽥'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그래서 보통 개구리와는 다르구나 싶어 '굴개'라고 지어줬다.

물론 동생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쨋든 이 굴개는 가만히 집 안에 있으면 될텐데 꼭 탈출을 한다.

탈출한 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들어갈 정도로 개구리가 싫었다.

그렇게 대탈출이 3번 정도 있었고 항상 화장실 안에서 발견 되었다.

나중에는 탈출을 하든 다른 사고를 치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나에게 굴개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생명체였다.


그러나 동생은 달랐다.

굴개를 너무나도 아꼈고 굴개가 밥을 안 먹는다며 계속 걱정 했었다.

그렇게 동생은 내 전기매트를 굴개 집위에 깔아줬고

그날 나한테 혼났다.


전기 매트 사용을 금지시키니까 내 방이 햇볕이 잘 들어 따뜻하다며 내 방에 굴개의 집을 놔두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기에 그냥 그러려니했다.


그런데 최근에 굴개가 목숨을 거두었다.

동생이 "굴개 피부가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가야 될 것 같다. 곧 죽을 것 같다"라며 

엄마한테 인터넷으로 굴개 약을 사달라고 조르던 당일 저녁, 굴개는 죽었다.

동생은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굴개를 확인했고

"얘 죽은거 아니야?" 라고 하면서도 다시 확인해보며 "괜찮네?" 라고 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 동생이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개구리가 죽었다고 동생이 저렇게 슬퍼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이때까지 많은 애완동물을 키웠지만 동생이 끝까지 애착을 가지고 키운 동물은 몇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개구리가 동생에게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동생에 의하면, 개구리에게 사랑을 주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했었다.

사실 사랑이라기 보단 그저 개구리 옆에 있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람을 안을 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딱 그정도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수준을 동생은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개구리가 건강하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사랑에 대해서 좀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동생이 많은 사랑을 겪을 텐데, 그것이 사랑인지 집착인지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고, 자기 자신도 해하지 않으니까.

동생이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싶어 동생과 더 얘기를 나눠보았다.


굴개가 죽기 에 동생이 말했다.

"굴개와 똑같은 개구리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 개구리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주인공이 여자 친구 대신에 여자 친구와 동일한 모습을 한 기계와 사랑하는 내용의 만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무슨 인간이 기계한테 끌릴 수가 있냐며 너무 비현실적이고 와닿지 않는 얘기라며 넘겼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만화가 이해가 갔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기계가 있다면

그 기계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임을 알 수 있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고인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소유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생은 개구리를 마음속에서 놓아주었다. 받아들인 것이다.


동생이 굴개의 죽음 이후로 성숙하게 변한 건 맞지만,

동생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이 옥시토신에 의한 것이란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상대방과의 신체적 접촉은 분명 고차원적인 사랑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께서 love is understanding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인가 싶고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이해만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너의 모든 것 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진정한 사랑이니까.


동생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길 바라며 동생의 얘기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진정한 사랑은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눈물)


제가 동생에게 잘 전한건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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